가을 여행의 목적은 단풍 구경이었다. 기왕에 떠나려거든 단풍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휴가를 내고 속초로 향했던 것이다. 물론 목적지는 속초가 아니라 설악산이었지만 첫날을 속초에서 보내고 다음날 설악산을 오르기로 하고 속초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고맙게도(?) 미시령을 지날 즈음 날이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첫날을 속초에서 보내고 둘째 날 설악산으로 향하려던 계획이 보기 좋게 들어맞은 셈이다.
속초에 가면 갯배부터 타야 한다. 불과 몇 분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드라마 ‘가을 동화’의 배경이 되었었고 ‘해피선데이’의 인기 코너 ‘1박2일’로 인해서 뜬 명소 중의 하나다. 단돈 200원이면 사람 손에 의해 움직이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정말 저렴한 체험기회가 아닐 수 없다.
갯배를 사이에 두고 이쪽에서는 아바이 순대를 맛볼 수 있고 바다 건너편 저쪽에서는 생선구이를 먹어볼 수 있다. 사실 ‘1박2일’ 때문에 유명해진 건 생선구이였다. 싸고 푸짐하다는 이유에서다. 갯배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생선구이집이 있는데 이 집이 바로 ‘1박2일’의 이승기가 다녀간 집이다. 다른 집은 비교적 한산한데 비해서 이 집은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넘쳐난다.
생선구이의 가격은 1인분에 1만2천 원이다. 다른 집과 비교해보질 못했으니 이 가격이 싼 건지 비싼 건지 판단이 서질 않고 양도 적당한 건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여행지이고 TV에 나왔던 곳이니 그냥 믿고 먹을 뿐이다. 생선구이는 그냥 생선 구이다. 특별한 양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숯불에 여러 가지 생선을 구워 먹을 수 있는 곳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듯싶었다.
생선구이를 먹고 나오니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그래도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를 보러 가자는 생각에 동명항으로 핸들을 꺾었다. 동명항에는 등대 박물관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을 듯 생각되었다. 하지만 파도가 높아서 등대로 향해있는 길은 폐쇄되어 있었고 방파제에서 춤추는 파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방파제를 위협할 정도로 높았던 파도는 또 다른 재미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바다 구경을 한다고 비를 맞고 걸어 다닌 탓에 몸이 무거웠다. 그 길로 바로 콘도로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녹여야만 했다. 속초에서의 첫날은 다소 아쉬움이 남기는 했어도 여러 가지를 접해볼 수 있었기에 비교적 만족할만한 여행이었다. 그나저나 단풍 구경을 떠나야 하는 다음날에는 날이 맑아야 할 텐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게 개어있었다. 아니 전날 비가 내려서인지 오히려 하늘은 더 맑고 푸르기만 했다. 어제 내린 비가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느지막이 식사를 하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평일이니 인파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다소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은 단풍 구경을 떠나온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차도 아래쪽에 있는 제2주차장에 주차시켜야 했기에 입구까지 걸어서 30여 분을 올라가야 했다. 케이블카는 1시간을 대기해야 하기에 울산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이곳도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려면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울산바위를 오르려면 설악산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흔들바위를 지나야 한다. 그리고 흔들바위 앞에는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가파르고 808개의 철계단으로 체력 소모가 많은 지역으로 물이 꼭 필요합니다. 물을 준비해 가시고 안전한 산행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손글씨로 쓰여 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808계단 정상에 오르시면 검푸른 동해와 금강산 신성봉 설악의 절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설악의 주봉 대청봉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힘내세요”라는 문구도 있었다.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그 댓가를 얻게 되리라는 말이리라.
이번 여행의 목적은 등산이 아니라 단풍 구경이었다. 울산바위를 오르려고 했던 것은 기왕에 설악까지 왔으니 울산바위 정상을 밟아보자는 생각보다는 ‘1박2일’에서 은지원이 힘겹게 오르던 모습 때문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감기로 고생하는 아내를 핑계로 울산바위 바로 아래에서 돌아내려왔다.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 단풍 구경을 왔노라고 합리화하면서. 이번 가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속초를 추천한다. 비록 단풍은 없을지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