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시대에 DVD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급격한 변화는 아니지만 이미 권력의 중심이 DVD에서 블루레이로 옮겨가고 있는 마당에 기회만 되면 DVD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명품을 찾는 것도 아니다. 품질은 조악하고 화질도 비디오 화면과 같은 VHS급에 불과한데도 지갑을 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서 뒤처져 추억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인터넷 서점이나 쇼핑몰에서 2~3천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DVD를 보면 거의 땡처리 수준에 가깝다. 그중의 대부분은 온라인 영화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렇다고 DVD의 화질이 온라인 영화관보다 확실히 더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악한 품질의 저가 DVD를 수집하는 것은 앞으로는 더욱더 그런 작품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요즘처럼 새것만 찾는 시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벤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명작들은 시대가 변해도 꾸준히 출시되기도 하겠지만 그런 명작의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작품들은 그야말로 조용히 사라질 게 분명하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논리 때문이다. 이는 블루레이 시대로 넘어가면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블루레이는 CD나 DVD와 비교해서 직경 12cm의 크기는 같다. 하지만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은 CD에 비해 38배 차이가 나고 DVD에 비해서는 5~10배나 크다. CD의 경우 약 700MB의 용량을 가지고 있고 DVD가 4.6GB를 저장할 수 있지만 블루레이는 25GB를 기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듀얼 레이어 디스크(BD-50)의 경우에는 그 두 배인 50GB까지 저장할 수 있다. 이러한 저장용량 덕분에 fullHD 급의 고화질의 구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블루레이로 선호하는 영화는 화려한 영상을 자랑하거나 현란한 액션이 있는 영화들이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서 추억의 명작들은 VHS 비디오로 보나 V-CD 혹은 DVD로 보나 화질은 엇비슷할 때가 많다. 소스 자체가 오래전에 촬영되고 조악하게 디지털라이징 된 탓이다. 그러므로 블루레이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리마스터링 과정이 필수적이나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필요 이상의 비용을 들인다는 게 사실 여의치 만은 않다. 판매자도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가이자 장사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지금 팔고 있는 DVD가 절판되고 나면 앞으로는 영영 그 작품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조악한 품질이라고 해도 저가 DVD를 수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는 토요섹션 WHY “DVD 사라지나?… ‘추억의 명화’ 보고 싶으면 어떻게”라는 기사를 통해서 영화칼럼니스트 오재영씨의 견해를 전했다. 그는 추억의 영화들을 위해서는 “①돈이나 시간을 좀 더 들이거나 ②발품을 파는”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방식으로 추억의 영화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①번으로는 ▲아직도 조금씩 나오는 DVD나 블루레이의 출시작을 체크해서 그때그때 구입하는 방법 ▲ EBS나 케이블에서 방영해 주는 영화들을 챙겨 보거나 녹화하는 방법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방법 ▲벅스, KMDb 등 합법 다운로드 사이트에 일부 올라와 있는 작품을 검색하는 방법 등을 들었고 ②번은 ▲서울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에 가서 영화를 보는 방법 ▲독일·프랑스 등 해외 문화원에서 찾아보는 방법 ▲각종 영화제나 특별전에 가는 방법 ▲몇몇 지역에 ‘거점 점포’의 형태로 남아 있는 큰 비디오 대여점을 이용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인 것은 “원할 때 볼 수 있을 것인가”하는 점이다. 경제논리에서 추억의 명화들은 언제나 약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제일 안전한 것은 기회가 있을 때 장만해 놓는 것이다. 조악의 품질이라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