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길에 만나는 비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마음껏 거리를 누비고픈 욕심에 제동이 걸리는 탓이다. 국내에서야 맑은 날과 흐린 날 그리고 좋은 날과 궂은 날에 따라 그 정취도 다를 테니 이런저런 경험도 해볼만하지만 일생에 있어서 단 한번 올까 말까 한 해외여행은 다르다. 그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맑은 날의 기억과 비 오던 날의 기억을 같이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럴 수는 없다. 대가가 너무 큰 탓이다.
몇 년 전에도 그랬다. 날씨가 흐리다던 런던은 오히려 쾌청했고 파리로 넘어오니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밀라노에서는 본격적으로 비를 맞으며 다녀야 했다. 물론 그 경험이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밤에 밀라노 거리를 한 시간 정도 걸었었다. 그다지 많은 비는 아니었기에 맞을만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었다. 비가 오니 카메라를 꺼내기도 쉽지 않았고 찍었던 사진들도 모두 초점이 흐렸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밀라노 도우모의 자태도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남았다. 그래서 밀라노는 안타까운 이름으로 남겨야 했다.
다음날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우산을 쓰고 다녀야 했다. 피렌체 도우모에도 비에 젖었고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잠들어 있다는 단테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피렌체 시청 앞에 있는 다비드상도 비를 비할 수 없었다. 도시가 모두 비에 젖었다. 물론 피렌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도시는 구름으로 인해 또 다른 장관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 유명한 피렌체 야외 카페를 경험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그래도 맑은 날 다녀간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의 분위기를 보지는 못했으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부로 내려올수록 날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밀라노와 피렌체에서는 그치지 않던 비가 폼페이와 나폴리에서는 화창하게 개었던 것이다. 로마에 있는 바티칸시국을 방문했을 때도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맑다는 것은 사진이 제대로 나올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어디든지 셔터만 누르면 그림이 되는 그곳에서 평생토록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터키는 더했다. 여행 기간 내내 현지의 일기는 비를 예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의 경우 체류 기간 내내 빗방울만이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단 하루도 맑은 날이 없단다. 기온이 우리나라 초겨울 정도에 해당하니 비 대신 눈이라도 내려준다면 고맙겠지만 영상의 기온이니 그 또한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모처럼의 여행길이 갑자기 우울해진다. 더구나 이번 여행은 출사라는 미션이 주어져 있기에 더더욱 안타까운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은 쉽게 떠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멀리 가려면 큰 맘먹고 움직여야 하는데 해외여행이야 어떻겠는가. 그렇게 힘들게 떠난 길이니 모두들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하나라도 더 남겨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비는 활동에 제약을 주는 탓에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 소풍을 기다릴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야 하늘을 볼 수 있으므로 그나마 기대반 걱정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세상이 좋아져 일주일치 일기를 파악할 수 있으니 가끔은 너무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몰랐다면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 채 떠날 수도 있으련만 미리 알아버린 탓에 심란하고 우울해지니 말이다.
無頂
2017년 2월 7일 at 7:50 오후
큰 맘 먹고 이태리 여행을 갔는데 비가 연이어 3일동안 오는데
우산 쓰고 비옷입고 운동화 젖어 발 시럽고….. 애 먹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루 오면 그 이튿날 비가 그치는데 서유럽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
journeyman
2017년 2월 8일 at 2:07 오후
그래서 다들 여행에 대한 기억이 다른가 봅니다.
저도 이태리는 비 때문에 아쉬움이 많은 곳이었는데
지인이 갔을 때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태리 최고를 외치더군요.
초아
2017년 2월 7일 at 11:34 오후
그렇죠. 모처럼의 여행인데..
그것도 외국여행길에 비가 내리면 더 낭패지요.
저도 아주 오래전 어느 무덥던 여름날 강릉 경포대 여행갔다가
소낙비가 주룩주룩 연이틀… 하루는 그냥 지냈구요.
다음날은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수영복입고 해수욕하였답니다.ㅎ
그랬더니, 저랑 같은 여행객들이 많았나봅니다.
너도 나도 들어와서 소낙비와 바닷물로 해수욕 잘하고 왔지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납니다.
journeyman
2017년 2월 8일 at 2:09 오후
저도 예전에 장마비처럼 쏟아지던 날 과천서울대공원 캠핑장에서 하룻밤 자던 때가 생각나네요.
야외 활동은 못했어도 빗소리를 들으며 자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