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돼도 걱정인 제19대 대통령선거

대통령선거

 

지역적으로 온도가 다르기 마련인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대통령 선거는 전국적인 행사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신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기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도 있으나 누가 되더라도 될 터이니 기권은 정당하지 않다. 최선은 아니더래도 차선 혹은 차악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축제의 한 마당이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좋겠지만 만약 이번에 안 되더래도 5년 후를 기약할 수 있었다. 단 한 표라도 더 받는 후보가 모든 권리를 갖는 다수결 제도가 우리 사회에게 최선은 아니더래도 최소한 차선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축제의 장이 아니라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되어야 하는 이유’보다는 ‘상대가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난무하고 있고 그로 인해 분열이 극심한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 한쪽에서는 부패한 세력을 단죄하려 들고 다른 쪽에서는 좌파세력 척결을 내세운다. 내가 되면 나라가 살지만 상대방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문제는 대선일인 5월 9일 이후다. 예전에는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가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를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누가 되더래도 광화문은 다시금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이는 이유에서다. 이쪽의 당선을 저쪽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저쪽의 당선을 이쪽에서 보고만 있지는 않으리니 누가 돼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