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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III

 

11월 14일

본선이 대마도를 지나서부터 자정 무렵에는 Higashi Suido(東 水道)의 영역에 접어들면서 쓰시마 해류의 영향으로 밤새도록 rolling때문에 침상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4시부터 당직을 섰으나 해류와 바람의 변화가 극심해서 침로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본선의 표류(drifting)도 심했다. 9시 25분 Lower Topsail, Upper Topsail, Top Gallent를 접고 9시 30분 주기관을 사용해서 시모노세키(下關)의 Kanmon Kaikyo(關門 海峽)을 향해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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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시간에는 messroom의 평평한 지붕 위에 앉아서 간단한 일본어와 한국어를 서로 가르쳐 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원래 어학에 소질이 없는지라 따라 하기가 어려웠다. 이윽고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에 대해 서로 한 사람씩 소개할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한 소개는 내가 영어로 하고 다시 Masa가 일본어로 통역을 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fore mast와 main mast의 square sails와 staysails를 지지하고 조절하는 많은 로프들과 yards, 그리고 shrouds의 미적이고 역학적인 조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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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asia 대륙과 America 대륙을 약 5년에 걸쳐 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중 Turkey의 Istanbul이나 Kusadasi 그리고 Cappadocia 지방에서 만났던 많은 Turkey 인들에게서 그들의 문화나 음식을 접하면서 그렇게 이질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의 선조가 바로 우리 이웃에서 살았던 ‘돌궐(突厥, Turkut)’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Uzbekistan을 약 2주에 걸쳐 여행을 하면서 그들과도 매우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꼈었다. 그것은 아마 고대 시대부터 이미 Silk Road나 초원의 길(Steppe Road) 또는 해상을 통한 왕래와 교류가 있었고 그로 인한 혈연적인 연결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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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Greece의 여러 섬들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Hong Kong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서도 그렇게 다르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미국 Los Angeles 공항의 한 여객기에서 열 십자로 끈이 묶여진 전형적인 인디언 샌들을 신고 있던 Indian 여인을 보면서 나는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서로 미소 지으며 많은 교감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Mexico의 Manzanillo나 Mazatlan 또는 Acapulco에서 거리를 거닐다가 인디언 아이들이 자기들이 손수 만든 다소 주술적인 모양의 토속적인 인형을 사라고 갑자기 뛰어들어서 놀라면서도 언제나 그들의 모습이 친근했고 또 한편으로는 측은했다. 그것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상당히 두터운 인연이나 혈연의 끈이 묶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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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내가 일본어를 모르기는 하지만 약 1만 년 전 뷔름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100 m 정도 낮았으므로 중국의 산동 반도에서부터 대마도를 거쳐 일본까지 한국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왕래를 하였을 것이다. 사실 나는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본선에서의 모든 생활이 전혀 낯설지 않다. Uzbekistan을 여행하던 중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의과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Bukhara 의과대학 학생에게 선물로 연화문(蓮花紋) 타이스 링(tightening ring)을 주다가 백제(百濟)의 와당(瓦當)에서 나온 연꽃을 보고 문득 일본의 Munsing제품 중 open 조끼(open vest)에 나오는 일본의 전통 문양과 너무 흡사해서 내가 상품을 잘못 고른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은 그 원류가 백제(百濟)의 문양이 기원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고대 민화를 보면 한국의 버선과 닮은 모자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무한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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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기사 시절, 야마오까 쇼하찌(山剛 莊八) 씨가 쓴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를 번역한 ‘대망(大望)’을 두 번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소설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으며 그렇게 이질적인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한국의 특징은 아이들이 컴퓨터나 전자 오락 등의 사이버 문화에 매우 익숙해 있으며 부모들은 아직까지 자식들의 교육에 막무가내 일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비교적 사고가 유연하고 개인적인 삶과 자유를 중요시하는데 비해서 일본 사람들은 개인적 삶을 즐기는데 다소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Masa는 다소 통역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서 결국은 논지를 다 펼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마무리가 되었고 Kai에게서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명절 때 신사에 잘 가며 새해에는 달마상과 비슷한 목각인형에 눈동자를 그려 넣고 소원을 비는 관습이 있다.”고 했다. 어느덧 계획된 시간이 지나서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본선은 13시 30분에 Kanmon Kaikyo(關門 海峽) Traffic Line에 들어가서 15시 15분에 관문해협(關門 海峽)을 완전히 지나갔다. 16시부터 18시까지 항해당직을 서고 자정부터의 midwatch를 위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본선은 21시 30분에 Hime Shima(姬 島)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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