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자고로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는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돌아보면 자업자득이기는 해도 그때는 정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독일에서의 8박 9일은 꿈같은 날들이었다. 하고많은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서 독일을 선택했던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마지막에 공항에서 굴욕을 당하기는 했어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못 말리는 아내 따라서 다녀온 독일에서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된다.
1. 어느덧 현금은 똑 떨어지고
출발할 때 수중의 현금은 모두 1,000유로였다. 우리 돈 150만 원어치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 현금을 가지고 여행을 다닌 적이 없기에 무척 많은 돈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는 현금이 똑떨어지고야 말았다. 독일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 많아 현금이 없다는 말은 곧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심지어 물까지도.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프랑크푸르트 역 앞에 있는 도이치뱅크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급한 대로 50유로만 받았는데 며칠 후 돌아와서 바로 갚으면 되니 급전으로 쓰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으로 보인다. 그 50유로가 없었더라면 라인강 유람선에서 와인을 맛보지도 못했으리.
2. 커피를 사러 간 사이 기차는 떠나고
마지막 날까지 강행군은 계속됐다. 독일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푸른 융단같이 펼쳐져 있다는 포도밭과 라인강 유람선 투어였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에 서둘러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만 아내가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눈앞에서 기차를 놓치는 불상사가 생겼다. 시간 맞춰 플랫폼에 서 있는 기차를 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 대가 연속으로 정차해 있었고 그중에서 맨 앞차를 타야 하는 모양이었다. 뛴다고 뛰어보았지만 그런 우리를 비웃듯 기차는 떠났고 피 같은 1시간은 그렇게 버려졌다.
3. 유람선에서 보니 더욱 아쉬운 포도밭 니더발트
그 1시간의 여파는 포도밭 포기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시간도 촉박한데 포도밭과 라인강을 모두 돌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아내의 결정에 따라 곤돌라를 타고 언덕 위 전망대까지 올라 라인강과 푸른 융단 같은 포도밭을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기로 했는데 나중에 유람선을 타고 보니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라인강 유람선 시간도 빠듯해서 뤼데스하임 역에서 유람선 승선장까지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만 했으니 마지막까지 고난은 계속되고 있었다.
4. 모처럼 여유 있는 라인강 투어가 시작되고
독일철도패스로는 라인강의 KD유람선이 무료였다. 아내가 마지막 날 무리하면서까지 일정을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라인강 유람선은 마인즈에서 출발하여 퀼른까지 약 185km를 달리는데 여행 안내서에서 추천하는 코스는 진정한 라인강의 경치를 볼 수 있어 ‘로만티크 라인’이라 불린다는 뤼데스하임에서 코블렌츠까지의 약 70km 구간이었다. 예상 소요시간이 약 4시간이었으나 무리할 수 없기에 뤼데스하임에서 장크트 고아스하우젠까지의 약 두 시간 반 코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5. 라인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라인강 투어는 그간의 고생(?)스러웠던 모든 기억들을 추억으로 돌려주기에 충분했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언덕 위의 고성들은 마치 미술관에서 풍경화를 바라보는 느낌이었고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은 천국에서 불어오는 듯했다. 와인 생각이 간절했으니 마시지 않고 버틸 수가 있으랴. 와인의 가격은 4.9유로였는데 한 잔이 아니라 작은 병에 따라주고 와인잔을 별도로 주었다. 두 잔이 나오니 잔을 하나 더 얻어오면 둘이서 건배까지 할 수 있는 양이었다. 그 맛은? 직접 마셔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으리.
6. 또다시 간이역에서 연착 때문에 속을 끓이고
원래 예정했던 하선지는 장크트 고아스하우젠이었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조금씩 연착이 생기면서 기차 시간과 묘하게 어긋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아내는 장크트 고아스하우젠 바로 앞에 있는 장크트 고아르에서 내리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달려간 고아르 역은 작은 간이역처럼 운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마인츠행 열차가 연착하면서 또다시 속을 끓여야 했는데…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7. 도대체 왜 짜장면이 먹고 싶은 것이냐
민박집에서 그래도 두어끼 한식을 얻 먹었다고 한 보다 느닷없이 짜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뭐 중식이라고는 해도 중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메뉴라고 하니 그 정도면 한식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크푸르트 역 앞에 있는 건물에 중식뷔페(1인 6.9유로)라는 말이 보이길래 짜장면 생각도 나고 해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짜장면은 없고 온통 느끼한 요리들만 가득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 했다.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8.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당한 굴욕
이제 독일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인천을 향해 출발하는 일만 남았다. 무사히 여행을 끝마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들어섰는데 공항이 인천공항과는 다르게 생겼다. 인천은 입국장 검색대를 지나서야 면세점이 있는데 여기는 면세점이 먼저 있다. 시간이 남기에 면세점을 구경하기로 하고 검색대에 들어섰는데 그만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다른 선물을 가방에 넣느라 화장품을 휴대용 가방에 넣었던 것인데 액체이므로 반입불가로 판명 난 것. 그중에는 새로 산 화장품도 있었다. 검색대에서 모두 압수당했다는 슬픈 이야기.
9. 인천 공항에서 또다시 당한 굴욕
공항에서 당한 굴욕은 프랑크푸르트뿐만이 아니었다. 인천에서도 계속되었다. 짐을 찾아보니 가방에 노란색 태그가 붙어있고 세관으로 오라는 안내가 적혀있었다. 무슨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다가 아마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산 식칼이 문제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방을 열어보니 식칼은 없고 로텐부르크 중세기념품점에서 산 칼이 들어있었다.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이 정도면 흉기라고 하니 그저 실없는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하긴 비비탄 총도 걸린다고 하니 빠져나갈 구멍은 없겠다 싶다. 무식해서 생긴 두 번의 굴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