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로 떠나기 전에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기후였다. 출발하는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일주일 내내 일기예보에 표시된 기호가 우산 밖에 없었던 탓이다. 몇 년 전 피렌체에서도 피를 맞으며 골목을 걸어 다녔던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라면 몰라도 며칠씩 심지어는 방문 기간 내내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면 낭만하고는 거리가 멀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이스탄불은 비에 젖어있었고 카파도키아는 폭설에 잠겨있었으니 그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듯싶었다. 정녕 터키의 파란 하늘은 구경하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될 것인가. 첫날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하루 종일 눈 속을 걸어 다닌 탓인지 일찍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부터 강행군을 한데다가 카파도키아에서 머물렀던 무스타파 호텔이 시내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유흥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저녁 시간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는 이유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문득 눈을 떠보니 새벽 3시였다. 하늘은 깜깜했지만 호텔 앞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기에 어둡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불빛 사이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발이 보였다. 밤새도록 내린 모양이다. 어쩌면 이 눈은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친다고 해도 하늘은 잿빛 구름에 가려 파란 하늘을 보고자 하는 작은 소망은 부질없는 바램이 될 수도 있었다.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난 덕에 터키에서의 첫 번째 글을 올릴 수가 있었다. 무스타파 호텔에서는 느린 속도일망정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찍어놓은 사진도 많았고 할 말은 더 많았지만 인터넷 사정상 3장의 사진으로만 첫 번째 포스트를 작성하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날이 밝아질수록 한 가닥 희망이 보이는듯했다. 눈발이 점점 가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보다 분명해지리라.
유럽의 아침식사는 다소 조촐하다. 우리가 한국에서 간식으로 먹는 수준이다. 빵이 있고 계란이 있으며 샐러드와 콘푸레이트가 있다. 디저트로 과일도 준비되어 있다. 거나하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저 간단하게 요기하는 수준이다. 조식 뷔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앞 마당으로 나서니 눈은 완전히 그쳐있었다. 어쩌면 파란 하늘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눈이 그친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아침이었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폭설을 만난 것은 행운과 불행이 겹치는 사건이었다. 눈 때문에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반면 눈이 만들어놓은 장관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양면성이 있는 일인 것이다. 터키에서의 둘째 날은 첫날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로 하루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無頂
2017년 2월 21일 at 7:57 오후
몸을 고달퍼도
눈꽃을 보신것은 행운입니다 ^&^
journeyman
2017년 2월 22일 at 5:48 오후
힘들게 다니면서 눈구경은 실컷 했는데 눈에 덮힌 모습만 보니 거기가 거기라는 점은 아쉽더군요.
초아
2017년 2월 21일 at 10:17 오후
눈 때문에 여행지를 마음놓고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눈때문에 흰눈이 펼쳐놓은 눈부신 경치를 마음껏 하셨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닌듯…남은 일정은 분명 더 아름다우실거세요.
journeyman
2017년 2월 22일 at 5:49 오후
눈에 덮힌 모습이 분명 장관이기는 하더군요.
다음 번에는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