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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V

 

11월 17일

새벽 2시경에 잠에서 깨어나 나는 chart room에서 Log-book을 messroom 테이블에 가져와서 GP-03 항차의 일지를 옮겨 적고 있었다. 정박 당직 중인 Zaza가 갑자기 컵 라면 5개를 들고 와서는 당직 중인 Nae와 messroom에 있던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나도 한 개를 받아서 오랜만에 별미를 즐길 요량으로 물을 받아서 익혔다. 내가 Nae에게 KAISEI에 근무하느냐고 묻자 volunteer로 왔으며 육상에서는 yacht의 판매와 정비에 관련된 일을 한다고 했다. Yumie도 당직이었는데 job이 뭐냐고 묻자 jobless라고 대답했다. 의외로 일본에도 구직난이 심한 듯했다.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다시 정박 당직을 서고 침실로 내려가서 새벽잠을 청했다. 오전 9시에 갑판에 집합해서 Phil이 등현례(manning the yards)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는데 범선 시대에 해적선들이 많았으므로 입항하는 범선이 기항한 항구에 대한 우의와 우정의 표시로 그리고 본선은 해적선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항에 필요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yard 위에 올라가는 것이 범선 입항의 전통적인 관례라고 했다. 우리들도 그러한 전통에 따라 모두 yard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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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5분 engine stand-by를 해서 9시 30분에 anchor를 올렸고 Kobe 항을 상징하는 Port Tower 옆의 부두로 접안을 시작했다. 부두는 관광객과 시민들을 위한 친수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어서 일요일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본선이 접안하는 광경을 신기해하며 쳐다보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시 후 본선에 승선할 일군의 trainee와 volunteer들이 본선을 보고 환호했다. 약 20년 전 San Juan에서의 그 범선이 생각났다. 10시에 접안이 완료되었고 10시 15분에 주기관의 사용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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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room에서 입국수속과 세관 검사가 있었으며 상륙증을 받았다. 선실에 내려와서 Kobe의 관광지에 대한 자료를 읽고 있는데 Gundam이 와서 Mango와 Seo-chae 그리고 Sunny가 모두 일본은 초행이라며 나와 같이 가고 싶다고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카메라 와 캠코더를 챙겨서 같이 상륙을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우리는 먼저 식사부터 하기로 하고 Motomachi(元町)의 상가를 둘러보다가 西元町의 어느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나는 정식을 주문하고 각각 600엔 정도 하는 식사를 했다. 생각과 달리 달러나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 Sunny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승선 전 월요일에 환전을 하려다가 일요일날 갑자기 여권을 맡기느라고 이전에 여행하고 남은 일부의 달러와 카드만 들고 나온 것이 낭패였다. Mango와 Seo-chae는 시립 박물관을 보고 싶다고 해서 부두와 세 볼록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므로 자유롭게 보도록 남겨 두고 우리는 Kobe의 명물로 소개되어 있던 Kitano(北野)의 이진칸(異人館)을 둘러보기 위해서 Daimaru(大丸) 백화점을 돌아 Sannomiya(三宮)의 쇼핑가를 지나갔다. 거리의 가로수는 붉게 물들어 흘러내리고 곳곳에서 때 이른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볼 수 있어서 비로소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분주한 일상 때문인지 가을을 잊고 지내다가 지난 10월 15일 청주에서 열린 대한약리학회 추계학술대회를 마치고 대진(大晋) 고속도로를 내려오다가 생초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달궁 계곡을 지나 노고단을 돌아 하동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달궁 계곡의 고즈넉한 노란 물 빛과는 또 다른 도시 속의 갈색과 붉은 단풍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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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Kobe항 개항에 맞춰 외국인 주택지로 탄생된 Kitanomachi(北野町)는 언덕길과 항구의 도시로 유명한 Kobe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작고 높은 구릉이 계속되는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이진칸을 이용한 부띠끄나 레스토랑, 연회장, 재즈바 등이 많아 분위기가 매우 화려했고 꽃과 수목의 단풍과 낙엽으로 매우 아름다운 거리였다. Sunny는 조그만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어린 나이에 비해서 삶에 대한 고뇌와 번민의 무게가 꽤 있는 듯했다. 일본의 신사(神社)를 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Kitano의 고지를 걸어 내려와 Kobe Muslim Mosque를 둘러보고 Ikuta Jinja(生田 神社)를 찾아갔다. 한국의 솟대에서 유래한 오토리이가 있었고 복을 기원하는 종(鐘)이 대웅전 앞에 있어서 기도를 하면서 한 번씩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신사에 와서 하트 모양의 나무판에 이름을 써서 걸어두거나 천이나 종이에 소원을 적어서 묶어 두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Sunny가 설명해주었는데 그러한 모습은 Osaka의 Asia and Pacific Trade Center에 있는 바닷가의 철골 구조물에서도 자물쇠에 소원이나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적어서 철 구조물에 채워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풍습은 멀리 Turkey의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Pergamon의 아크로폴리스에 갔을 때에도 천에 소원을 적어서 나무 가지나 오래된 석주 주변의 쇠 난간에 묶어 둔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 안내인은 이것이 고대인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빌던 하나의 민속 형태라고 설명해주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중국인 거리에서 저녁을 먹고 Okura 호텔에서 달러를 환전한 후에 ‘Prime’이라는 카페에서 밤늦게 wine 잔을 기울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심양(瀋陽)에서 유학온 조선족 학생을 보내 주었다. ‘이 경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그곳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일본에 온 지 이제 6개월 정도 되었다는 그녀는 여러 가지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매우 강인해 보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는 웨이터는 매우 인상이 좋았고 취향에 맞는 와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귀선하는 길에 부두 근처 고가도로 아래에서 개와 같이 사는 homeless를 만났다. 편안하게 잠을 청하고 있던 그는 Kobe의 화려한 시내를 배경으로 묘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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