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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행하는 공부법의 유효성과 의의

20150430_084528_1d81ee321fc80ac45a15932f01db68e1혼자 행하는 공부법의 유효성과 의의

‘동경대 교수가 가르쳐 주는 독학 공부법’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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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8월 31일 새벽, 멕시코 캘리포니아 반도의 엔세나다(ENSENADA)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샌디에이고를 향해서 드라이브를 하던 중 라디오에서 ‘어제 새벽 캄차카 근해에서 KAL 007기가 소련 미사일에 맞고 격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윽고 샌디에이고에서 13인승 프로펠러 소형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 일본 나리타 행 비행기에 탑승하여서 일본에서는 예전 시간 보다 3시간 연착한 KAL기를 타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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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태평양 연안을 운항하던 M/V PLUTO호에서 약 10개월을 근무하고 귀가하니 다시 공부를 하려고 매달 80만원씩 송금했던 월급은 모두 부친께서 신용사기를 당해서 모두 날리고 없어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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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말 다시 카리브에서 운향하던 M/V PACIFIC HUNTER에 근무하기 위하여 출국을 하는 가방에는 ‘적중 340’이라는 학력고사 수험서 10여권이 들어 있었다. 5년간의 외항선 기관사로 근무한 이후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다시 재수생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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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독학을 하게 된 계기였고 1984년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미국 루이지애나 Lake Chatrles에서 하선하여 귀국한 후 1년을 꼬박 집에서 공부하고 그 성적으로 서울 대성학원 종합반에 들어가서 지금 내가 재직하고 있는 본교 의예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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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의학과 4학년이 되어서 졸업을 앞두고 여름 방학이 가까워졌을 때 교수님의 권유로 의사고시를 치르고 졸업을 한 후 약리학교실의 조교로 남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20여년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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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5년 전부터 의학과 1학년 약리학 강의를 미리 교재와 범위를 정해주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해서 발표를 하고 그 내용을 질문과 토론으로 정리하는 수행평가를 실행하고 있다. 이유는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가장 좋은 학습방법은 스스로 공부해서 타인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험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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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게 된 야나가와 노리유끼 교수님의 이 책은 그동안 겪어오면서 느꼈던 많은 점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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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에 유럽에 가서 책 몇 권 들고 와서 번역하면 평생 먹고 산다는 글을 읽으며 불과 20년 전만해도 책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 자가 되던 시절이 생각나 실소를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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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가공업이어서 반드시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리하여 다른 분야와 연관 짓기나 학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응용력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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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부란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수단이라는 주장도 경험에 비추어보면 진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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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자기 안에서 숙성 가공하여 배움의 성과를 도출해 낸다.’는 부분에서 ‘남에게 전해주려 할 때 배움은 보다 깊어진다.’, ‘자신의 말로 쓴다.’, ‘쉽게 쓴다.’, ‘독학 자체가 논문을 쓰기 위한 훌륭한 훈련이 된다.’라는 내용들은 학문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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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논문 지도를 하면서 이해하는 속도와 이해하는 깊이는 다르다는 견해나 논문을 쓸 주제를 스스로 정하라고 가르치는 모습은 아주 공감이 가는 훌륭한 지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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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항상 의문과 의심 또는 반론을 하면서 읽고 배우라고 가르치는데 저자의 주장중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다소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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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메모하지 말라.’ ‘내용을 요약하지 말라.’ ‘줄을 긋지 말라.’고 하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마도 경제학에서는 전체적인 흐름과 논리적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마치 화두 참선을 할 때처럼 오래 동안 이론들을 천작해서 조립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의학은 하나의 단어나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진척을 기대하기 어렵고 암기하고 이해해야할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요약해서 정리하지 않고서는 전체를 개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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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원서를 읽다가 보면 색깔별로 색인을 해두지 않으면 이전에 본 것을 다시 찾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 분량이 많아서 밑줄이라도 긋지 않고서는 구분하거나 복습하기가 너무 힘든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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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얄팍한 인스턴트 지식으로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독학의 즐거움과 학문의 묘미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감사합니다.

 

 

 

 

 

 

 

2015년 4월 27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솔잎 끝에 맺힌 별빛이 찹니다.

 

솔잎 끝에 맺힌 별빛이 찹니다.

 

 

 

해질녘, 뱃전에 기대어 지나온 항적을 바라보면서

 

번민 속에 보낸 나날들은 지루하였고

 

어쩌다 갈매기와 날치 그리고 선수에서 경주하는 돌고래들을 만날 뿐,

 

계절을 넘나드는 고독한 항해와 항해는 참으로 길기도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그 젊은 날의 고뇌와 번민들이 삶을 풍요롭게 채웠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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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航前夜(출항전야)

 

出航前夜

Romance의 감미로운 선율은 수은등의 불빛에 부서져 새하얗고

나는 뿌우연 담배 연기 속에 부질없는 상념을 묻어버린다.

꿈결에서 너를 만나면 good-night kiss를 하고

또 허망하게 돌아서야 할테지만

아침이면 침실을 찾아들어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싸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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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의 무사함과, 함께 모인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나눔에 대하여 감사드립시다.

 

항해의 무사함과,

 

함께 모인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나눔에 대하여 감사드립시다.

 

빛이여, 항해를 마칠 때까지 우리들을 인도하소서.

 

 

 

Let us give thanks for safety from the sea

 

and for this bread with these our gathered friends.

 

May the light guide us till our sailing ends.

 

 

– John Masefield (1878-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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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은은한 고인들의 지혜.

묵향 은은한 고인들의 지혜.

‘군서치요(群書治要)’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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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을 맞아 달빛이 봄비 속에 고요하여 뜰을 보는 마음이 편안하다. 이번에 읽게 된 군서치요(群書治要)는 십여 년간 군진에서의 삶을 보냈던 당 태종이 치세에 뜻을 두고 명하여 편찬된 책이며 당 말기의 전란 속에 사라졌다가 일본으로 전해진 한 질이 남게 되어 다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1616년 활자본 인쇄를 명하였으나 이미 50권중 제4권, 제 13권, 제20권이 유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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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치요의 장자(莊子)’에 성현의 정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인이 시행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교화이다. ‘도’는 말로 전해서는 얻을 수가 없다. ‘도’를 잃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덕’을 잃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인’으로 천하를 다스린다. ‘인’을 잃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의’로 천하를 다스리며, ‘의’를 잃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예’로 천하를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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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 대하여서는 중용(中庸)에서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 하여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고 수도를 행하는 것을 교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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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장자에서 인용한 구절은 군서치요의 전체의 내용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으며 이는 이 책의 편찬 순서와도 일치하고 있다. 그리하여 삼황(三皇)시대를 도(道)로 교화한 시기로 보고 요(堯), 순(舜), 우(禹)의 오제시대를 덕치(德治)의 시대로, 하(夏), 상(商), 주(周)의 세 왕조 시대를 인치(仁治)를 시행한 시기로 보고 있다. 또한 인(仁)을 잃은 후에는 의(義)를 중시하게 되는데 동주(東周) 및 춘추 전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의(義)로서 천하를 다스리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청왕조가 멸망하기 까지 예(禮)로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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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책의 구성도 초기에는 글들이 매우 아취가 있고 고졸한 맛이 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치졸하고 불필요한 부연 설명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제자백가를 비롯한 동양의 고전에서 익히 보아왔던 묵향 그윽한 명문들을 원문으로 읽어가는 맛은 아주 담박하고 고아한 운치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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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의 노자(老子)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가장 뛰어난 군주는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한다(太上 下知有之).”

참으로 깔끔한 기술이다. 그렇다. 각자 자기 본업만 충실히 하면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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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의 상서(尙書)의 한 구절이다.

“하늘은 공정무사하여 오직 덕이 있는 이를 도울 뿐이다(皇天無親 惟德是輔).”

또한 노자의 한 구절이다.

“하늘은 누군가를 사사로이 편애하지 않고 다만 덕행이 있는 자를 도울 뿐이다(天道無親 常與善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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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인용구이다.

“정치의 도는 사람을 얻는데 있다. 사람을 얻는 방법은 위정자가 자신을 수양하여 덕행으로서 남을 감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몸을 닦는 것은 반드시 ‘도’에 의거해야 하며, 도를 닦는 것은 ‘인’에 의거해야 한다. 인은 인성, 즉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육친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의라 하는 것은 하는 일마다 적절하며, 현명하고 덕이 있는 이를 존경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故爲政在於得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修道以仁. 仁者, 人也, 親親爲大; 義者, 宜也, 尊賢爲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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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의, 역경에서 “군자는 일을 시작할 때 특별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약 시작할 때 터럭만큼의 하찮은 실수라도 생기면 그 결과는 천리에 달하는 엄청난 큰 잘못이 된다(君子愼始, 差若毫厘, 謬以千里) .”라고 언급한 구절이 있는데, 선인들은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는데 ‘예’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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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 편저자는 쑨중산(孫中山) 선생의 ‘대아시아주의’라는 주제의 강연을 인용하여 왕도(王道)정치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유럽의 최근 백년은 어떤 문화인가? 과학의 문화이고 공리를 중시하는 문화이다. 이런 문화는 인류사회에서 응용되어 물질문명만 알고 비행기와 폭탄, 총과 대포만 있는, 일종의 무력문화인 것이다. 오로지 이런 무력에만 의존하여 사람을 압박하는 문화는 중국의 옛말로 하면 바로 패도(覇道)를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문화는 패도의 문화이다. 그러나 우리 동양은 줄곧 패도의 문화를 경시하였다. 패도의 문화보다 훨씬 우수한 문화가 있으니 이 문화의 본질은 인·의·도·덕이다. 인·의·도·덕을 사용하는 이런 문화는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이지 사람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덕을 품게 하는 것이지 두려워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덕을 품게 하는 문화를 중국의 옛말로 ‘왕도(王道)를 행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시아의 문화는 바로 왕도의 문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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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장에서는 교육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서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종교교육’으로 구분하면서 가정교육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는 현재 한국사회에 있어서 가정교육의 부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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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부론(潛夫論)의 인용문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데 가장 아름답기로는 교육을 뛰어넘는 것이 없으며, 가장 신묘하기로는 인심을 선량하게 바꾸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 없다. 교육은 사람에게 이치를 알도록 하는데 쓰이며, 인심을 선량하게 바꾸는 것은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는 데 쓰인다(入君之治, 莫美于敎, 莫神于化, 敎者所以知之也, 化者所以致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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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상서의 인용문이다.

“현명한 인재를 임용하되 끝까지 믿고 맡길 것이며 간사한 이를 제거함에 머뭇거려서는 안된다(任賢勿貳, 去邪勿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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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염철론(鹽鐵論)의 인용문이다.

“법률은 사람을 징벌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청렴하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을 사형시킬 수는 있지만 사람을 어질게 할 수는 없다(法能刑人, 而不能使人廉; 能殺人, 而不能使人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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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8년 9월 4일 장안성 주작대가 대리시 관청의 정문 앞에는 아홉 달 전에 잠시 풀어준 390명의 사형수에 대한 죽음의 약속을 지키는 장면이 나온다. ‘서복림’이라는 마지막 한 사람의 사형수가 중병이 걸려서 수레에 실려 오는 광경이 쓰여 있다. 후에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는 시로써 노래한 바 있다.

“억울한 여인 삼천을 궁 밖으로 놓아주고 사형수 사백이 감옥으로 돌아오네(怨女三千放出宮, 死囚四百來歸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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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에 당태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경고가 있다.

“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고 가라앉게도 한다(夫君者 舟也; 民者, 水也. 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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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제자규(弟子規)에서 인용된 문장이다.

“권세로 사람을 굴복시키면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으며 이치로 사람을 설복시켜야 비로소 원망의 말이 없다(勢服人, 心不然, 理服人, 方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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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에서, 당태종은 “매번 한가하게 조용히 앉아 있을 때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늘 위로는 천심에 부합하지 않을지, 아래로는 백성이 원망하지 않을지를 두려워하였다(每居靜坐, 則自內省, 恒恐上不稱天心, 下爲百姓所怨).”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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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한서(漢書)의 인용문이다.

“덕행이 지위와 어울리지 않고 능력이 관직과 맞지 않으며, 포상이 공적에 어울리지 않고 형벌이 죄에 합당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 큰 불상사는 없다(德不稱位, 能不稱官, 賞不當功, 刑不當罪, 不祥莫大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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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주역(周易)에서는

“덕행은 천박한데 몸은 존귀한 지위에 있고, 지혜는 협소한데 큰일을 도모하고, 역량은 취약하데 중대한 임무를 담당한다면, 재앙이 없는 경우가 드물다(德薄而位尊, 知小而謀大, 力少而任重, 鮮不及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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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주자치가격언(朱子治家格言)의 인용문이다.

“먹는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살해하면 안 된다(勿貪口腹而恣殺生禽).”

또한 원운선사(愿雲禪師)의 시 한수를 소개하고 있다.

“오랜 세월 그릇에는 국이 담겨 있으니,

원한은 바다처럼 깊어 그 한을 메우기 어렵구나.

세상의 전쟁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다면,

한밤중에 도살장의 소리를 들어 보시게.

(千百年來盌里羹, 怨深似海恨難平; 欲知世上刀兵劫, 但听屠門夜半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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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주역의 인용문은 주변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구절이다.

“착한 일을 하는 집안은 반드시 복이 자손까지 미친다(積善之家 必有餘慶).”

그리고 선인들의 말을 옮겨 놓았다.

“선악의 보응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라 다니는 것과 같다(善惡之報 如影隨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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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만청(晩淸)의 명신 좌종당(左宗棠)은 자신을 잡는 대련(對聯)을 지었다.

“몸은 반무(畝)의 땅도 없으나 마음은 천하를 걱정하네, 만권의 책을 읽어 선인과 교감하네(身無半畝, 心憂天下; 讀書萬卷, 神交古人).”

북송의 학자 장재(張載)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백성을 위해 명을 세운다. 앞서간 성현들을 위해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연다(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爲往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

참으로 두고두고 되새겨 볼 지혜요 명문의 보고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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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4일 입춘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역경 속에서 죽지 않는다면 더 강해진다.

역경 속에서 죽지 않는다면 더 강해진다.

‘초인수업,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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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만난 것은 부모님 슬하를 떠나 대구로 고교를 진학하여 도서관을 찾고 부터이다. 그때가 17살이었으므로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의 일이었다. 처음으로 대한 쇼펜하우어의 명민함과 예리한 논리의 전개는 곧 그에 대한 흠모와 경탄을 자아내게 되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한 구절은 ‘인간은 고뇌와 권태 사이를 오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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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접하게 된 니체는 그 당시 처음으로 시작한 객지 생활에서 겪은 갖가지의 갈등과 번민, 생활의 애로에 지치고 좌절하던 나에게 무한한 투지와 분투의 용기를 주었던 것 같고 그 이후의 약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고난과 역경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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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게 된 박찬국 교수님의‘초인수업,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를 읽으면서 참으로 오랫동안 의식세계에서는 잊고 지내던 니체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그 동안 미진했던 부분을 좀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고 이전과는 달리 새로운 시각에서 니체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기쁘고 또한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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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체 10개의 질문을 명제로 제시하고 그 질문에 대하여 니체와 저자의 생각을 기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주지하시는 것처럼 니체의 표현과 기술은 매우 공격적이면서 독설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매우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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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저자는 얼마 전 작고하신 장영희 교수님이 번역하신 ‘노인과 바다’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이와 관련하여 니체는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안락과 길고 긴 연명이 아니라 자신이 고양되고 강화되었다는 느낌”이라고 보았으며 “가혹한 운명과의 대결을 통해 소수의 인간은 보다 강하고 심원하며 아름다운 존재로 고양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고통과 험난한 운명을 자신의 고양과 힘의 강화 즉 권력의지를 위해 사랑하는 자를 초인(Űbermensch, 超人)이라고 일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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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에서는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을 경멸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 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철학은 우리가 이미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개념화해서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니체는 행복을 “힘이 증가되고 있다는 느낌, 저항을 초극했다는 느낌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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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에서,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그리고 아이의 정신으로 발전해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때 낙타의 정신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정신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삶에 대한 허무를 느끼게 되는 사자의 정신으로 발전하며 이윽고 의미에 대한 방황이 끝나면 ‘지금 여기’에 충실한 아이의 삶을 살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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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철학의 실천성에 대하여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소위 철학자들이란 사상적으로는 커다란 궁궐을 지어 놓으면서도 실제 인간으로서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조그만 집에서 살고 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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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질문에서,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때 운명애는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을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로 이용하고 승화시키라는 철학이다.

“나약한 천성을 가진 자들을 사멸시키는 독은 강한 자들에게는 강장제이다. 강한 자는 그것을 또한 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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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질문에서, ‘당신의 적을 경외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쟁과 투쟁을 승화시키는 방법으로서 ‘경쟁과 투쟁은 내가 겨루어야 할 상대가 나와 비등한 자거나 나보다 더 우월한 존재여서 나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 때에만 정당화 되며 이 경우에만 경쟁과 투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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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니체는 자연을 거스르고 억압하는 문명과 문화를 비판하면서 거세라든가 근절과 같은 방법은 사실은 자신의 정념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의지가 약하고 퇴락한 자들이 자신의 정념과 싸울 때 본능적으로 택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관능에 대한 가장 심한 독설은 성적으로 무능력한 자들이나 금욕주의자들로부터 나오지 않고, 금욕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었지만 금욕주의자가 될 수 없었던 자들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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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질문에서,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신을 죽인 자는 바로 우리다!”라고 외치고 있다. 니체는 종교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죄책감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힘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키는 종교와 바울이 만들어낸 그리스도교처럼 지상의 힘이나 쾌락을 죄악시하고 끊임없는 회개를 강요하는 종교로 구분하고 있다. 니체는 종교란 결국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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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질문에서, ‘확신은 거짓말보다 위험한 진리의 적’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니체는 특정 종교든 정치적 이데올로기든 어떤 확신에 독단적으로 사로잡히는 것이 일종의 자기소외이고, 심지어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바라는 태도의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니체는 모든 종류의 독단적 확신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 감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정한 종교적인 이념이나 정치적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의 군중을 형성하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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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질문에서, 니체에 따르면 우리들은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는데, 삶의 예술가란 매 순간 도취라는 고양된 기분 속에서 삶과 세계를 아름답고 충만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며 생을 긍정할 수 있는 길을 궁극적으로 예술에서 발견할 수 있고 우리들 각자가 예술가적인 정신 상태로 삶을 사는데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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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질문에서, 니체는 ‘거리의 파토스’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데 거리의 파토스란 기존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탁월한 인간이 됨으로써 기존의 자신이나 저열한 다른 인간들로부터의 거리를 넓히려는 열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니체는 이러한 열망이야말로 바로 인간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연민은 이렇게 우리를 보다 강해지고 보다 탁월한 인간이 되도록 채찍질하는 거리의 파토스를 제거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이 아니라 채찍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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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질문에서, 니체는 전통적인 서양 철학과 종교가 인간을 하나의 획일적인 인간형으로 주조하려 했다고 본다. 그리스도교와 더불어 플라톤 이래의 이원론적인 철학은 세계를 피안과 차안으로 나누면서 차안을 가상적인 세계, 피안을 참된 세계로 보고 있으면서,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철저히 부정하는 금욕주의자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니체는 이러한 처사야말로 인간들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인간을 획일화하려는 지극히 순진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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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우리가 보통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는 의식의 이면에 진정한 자기가 있으며 이것을 ‘힘에의 의지(권력의지)’라고 한다.

“감각과 정신은 도구이며 장난감이다. 그것들 뒤에는 여전히 자기가 있다. 자기는 감각의 눈으로 찾고, 정신의 귀로도 듣는다. 자기는 항상 들으며 찾는다. 그것은 비교하고, 강요하고, 정복하고, 파괴한다. 그것은 지배하며, 또한 자아의 지배자다. 그대의 사상과 감정 뒤에, 나의 형제여, 강한 명령자,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있다. 그것이 자기(自性)라고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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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질문에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 몸을 다스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흔히 니체는 기존의 모든 관습과 도덕을 파괴하고 본능과 욕망의 자유로운 발산을 요구하는 사상가로 오해되곤 하지만, 정작 그는 ‘모든 위대한 것과 충일한 힘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을 통해서 형성된다’라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인간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성취한 위대한 인간이 되고 충일한 힘을 갖는 것이지 본능과 욕망을 무분별하게 멋대로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고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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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서 신체를 다스려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단순히 감정과 사상을 훈련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가장 먼저 설득시켜야만 하는 것은 바로 신체다. 중요하고 선택된 품행을 엄격하게 견지하는 것, ‘자신을 되는대로 방치하지’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키는 것, 이것들만으로 중요하고 선택된 인물이 되기에 완전히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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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니체는 우주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고 저자는 해설하고 있다. 참으로 니체의 철학에 대한 정치한 해설과 탁월한 동양적인 지혜가 어우러진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책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그 일체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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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자신이 젊은 시절 외도로 매독에 걸려서 죽기까지 병고에 시달렸고 개개인의 정서와 가치관에 따라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현대인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지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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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15년 1월 3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