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엽기적인 김혜수의 차이나타운

죽지 못해 사는 게 인생이다.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야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엇이고 얻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진 게 없다면 더 그렇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재산도 없다이 오직 몽둥이 하나 뿐이라면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 싸워서 이겨야 얻을 수 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게 세상이다.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진 여자 아이. 10번 보관함(코인라커)에서 발견되었기에 일영이라는 이름이 주어졌을뿐 부모도 혈육도 없다. 그렇게 세상에 홀로 버려진 아이가 흘러들어간 곳은 차이나타운. 쓸 데 있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나뉘는 비정한 곳이다. 쓸모있는 아이는 남겨지지만 쓸모없는 아이는 버려지고 만다. 그렇기에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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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은 이처럼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이 모인 곳이다. 가진 것이 없기에 더욱 치열하게, 더욱 처절하게 싸워야만 하는 곳이다. 밟지 못하면 밟혀야 하고, 밟히지 않으려면 밟아야 하는 곳이다.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하는 곳이다. 값싼 동정은 사치에 불과하고 오로지 주먹만이 정의로 통하는 곳이다. 밥이라도 얻어 먹고 살려면 일(?)이라는 것을 해야만 하는 곳이다.

김혜수 주연의 영화 ‘차이나타운’은 상당히 어두운 영화다. 이방인들의 세계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제목부터 그렇지만 내용도 상당하 자극적이다. 아이들을 유괴해서 앵벌이로 쓰다 버린다는 설정부터 시작해서 고리대금으로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하면 장기로 대신해야 한다는 엽기적인 설정까지 더해졌다. 아무리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지만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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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다른 영화들이 있다. 먼저 ‘신세계'(New World, 2012). 황정민, 이정재 주연의 영화 ‘신세계’는 개인적으로 한국 느와르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하는 영화다. ‘무간도'(無間道: Infernal Affairs, 2002)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스토리, 연기, 배경음악 등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영화였다.

그 다음은 ‘공모자들'(2012). 임창정, 최다니엘 주연의 ‘공모자들’은 납치에 의한 불법 장기밀매를 소재하고 하는 영화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인지라 보고나서도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 기분 나쁜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화이'(2013). 괴물을 삼킨 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김윤석, 여진구 주연의 이 영화 역시 보고 나서 개운치 않은 기분을 남기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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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 세 영화가 떠오른 것은 영화의 폭력성과 잔악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하면 신체포기각서대로 살해 후 장기를 밀매한다는 설정은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장기밀매단에 대한 영화 ‘공모자들’을 떠올리게 만들고,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살인병기로 길러진다는 설정은 ‘화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느와르 풍은 ‘신세계’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영화들과는 다른 차별 포인트가 있어야 할 터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저 니네 맘대로 생각하라는 식이다. 어차피 세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무슨 상관이냐 싶은 심뽀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스토리는 거의 막 나가자는 수준이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나 싶은 생각도 들게 만든다. 막장이라는 표현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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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영화의 소득이라고 한다면 영화 ‘은교'(Eungyo, 2012)를 통해서 데뷔했던 김고은이라는 배우에 대한 재발견이다. 수많았던 신인여배우들처럼 노출로 잠깐 알려진 뒤 잊혀져갈 줄 알았던 김고은의 거친 연기 변신은 나름대로 파격적이었고 신선했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이미 지난해 개봉한 영화 ‘몬스터'(Monster, 2014)에서 비슷한 배역을 소화하기는 했던데, 아무튼 배우로서의 김고은의 앞날을 기대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가족에 대한 관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영이(김고은)가 엄마(김혜수)를 떠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면서 엄마 곁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도 계속 가족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낳았다고 모두 엄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듯, 엄마라는 호칭을 듣는다고 모두 엄마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무리한 획대 해석은 이 영화의 최대 맹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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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일영이에게 버려지기 싫으면 끊임없이 쓸모를 증명하라고 한다. 일영도 그런 엄마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거친 사내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아귀다툼도 서슴지 않는다. 생모에게도 버림받고 대모에게도 버림받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런 생활이 몸에 밴 탓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 영화는 자신의 쓸모를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을까? 그런 김혜수의 관점이라면 이 영화는 진작에 버려졌을 영화다.

차이나타운(Coinlocker Girl, 2014)
범죄, 드라마 / 한국 / 110분 / 2015.04.29 개봉 / 감독 : 한준희
출연 : 김혜수(엄마), 김고은(일영), 엄태구(우곤), 박보검(석현), 고경표(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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