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갈라서면 남이다. 살을 섞었을망정 피까지 섞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부부 사이를 무촌이라고 한다. 촌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말이 아니라 헤어지면 남이므로 촌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네 못사네 하며 아웅다웅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돌아서는 것도 방법이다. 돌이키려 하면 할수록 자신만 비참해질 뿐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죽음으로써 모든 비극은 끝나고, 결혼으로써 모든 희극은 끝난다”고 했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겠으나 몇 년 동안 한 이불을 덮고 살아본 부부 또는 오래된 커플들은 이 말을 절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리히텐베르크도 “연애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지만, 결혼은 시력을 되돌려 준다”고 했다.
벤 애플렉 주연의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4)는 사랑해서 결혼한 남녀와 사랑이 식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 부부의 갈등을 그린 영화로는 1989년 작 ‘장미의 전쟁'(The War Of The Roses, 1989)이 있고, ‘미스터&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2005)도 있다. ‘장미의 전쟁’은 코미디이고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는 액션인 데 비해서 ‘나를 찾아줘’는 스릴러다.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렇다. 어느 날 이웃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닉(벤 애플렉)은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의 실종과 마주하게 된다. 짐을 챙겨 떠난 것이 아니므로 가출이라 할 수 없었고, 거실이 난장판인 것으로 보아 납치로 판단되는 상황이었다. 이 영화는 닉의 아내 에이미가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거나 아니면 닉에 의해 살해되었거나 둘 중의 하나를 암시하며 시작된다.
일단 에이미가 살아있을 확률은 지극히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방에서 다량의 혈흔이 발견되면서 닉이 에이미 살해의 제1 용의자로 떠오르기도 한다. 아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젊은 여자와 함께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던 남편이 아내를 죽이기 위해 킬러까지 고용하는 영화 ‘마누라 죽이기'(How To Top My Wife, 1994)라는 영화의 제목이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하지만 상당히 긴박한 추리극일 것만 같던 영화는 갑자기 에이미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막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에이미가 꾸민 극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단 하나. 남편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의 불륜을 숨기기 위해 아내를 죽인 천하의 몹쓸 놈으로 만들어 종내에는 교수형틀에 매달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만큼 배신의 아픔이 컸고 남편에 대한 미움이 컸다.
남편을 파멸로 몰고 갈 에이미의 극본은 상당히 치밀했다. 모든 증거들이 닉에게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새파랗게 어린 여대생과 바람 핀 것도 모자라 임신한 아내를 폭행했다. 돈은 벌어오지도 못하는 주제이면서 카드만 긁어댔다. 아무도 없는 아버지 집에서는 태우다 만 에이미의 일기장까지 발견됐다. 닉으로서는 에이미가 만들어 놓은 올가미에 꼼짝없이 걸린 셈이었다.
에이미의 생존 사실과 함께 이 영화는 스릴러에서 갑자기 진실게임으로 분위기가 확 바뀐다. 아내를 죽이고도 무죄를 주장하는 남편의 주장과 남편을 파멸시키기 위한 아내의 계략 사이에서 위태로운 곡예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에이미의 생존 사실은 더 늦게 밝혔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반전의 효과도 있었을 텐데 에이미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갑자기 맥이 쑥 빠지고 만다.
149분이라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의 영화지만 좀처럼 의문들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끝맺는 부분도 불만이다. 먼저 둘 사이의 부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관객들은 대부분 에이미가 남긴 기록에 의존해서 유추해야 하는데 사실 그 내용은 에이미의 소설에 불과하므로 둘의 사이가 어떠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진실게임과 마주하게 된다.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없이 닉은 졸지에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닉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태너(타일러 페리)의 탁월한 전략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의 전략으로 닉을 향한 대중의 여론이 순식간에 정 반대로 바뀌는 부분도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에이미의 감정변화다. 어쩌면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데도 영화는 상당히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그로 인해 웰메이드 스릴러라기보다는 그저 그런 막장 스토리에 머물게 만들고 있다.
닉이 에이미와의 재결합을 결심하는 부분도 영화만 보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이를 향 일종의 부성애가 닉으로 하여금 개인을 포기하고 가정을 선택한다는 것인데 그런 흉악한 여자와 남은 여생을 계속 함께 살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결혼에 대해 찾아보니 “급하게 결혼하면 한가할 때 후회한다”는 말도 있던데 닉에게 해줘야 할 말은 아닐런지…. 아! 그리고 변호사 태너가 떠나면서 닉이 귀담아 들어야 할 한마디 하던데. “아내를 화나게 하지 말라”고.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스릴러 | 미국 | 149분 | 2014.10.23 개봉 | 감독 : 데이빗 핀처
출연 : 벤 애플렉(닉 던), 로자먼드 파이크(에이미), 닐 패트릭 해리스(데시), 타일러 페리(태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