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오늘까지 바이에른 티켓을 활용하려고 독일철도패스를 4일 치만 끊었는데 밤베르크로 향하는 열차 시간표에는 고속열차인 ICE만 나와 있었다. 바이에른의 모든 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바이에른 티켓이 유일하게 탈 수 없는 차편이 바로 고속열차였던 것. 아침부터 멘붕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렇게 못 말리는 아내 따라서 다녀온 독일에서의 여섯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1. 아침부터 멘붕에 시달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독일철도(DB) 사무소가 보였다. 사정을 말하자 구입 후 30분 이내에는 환불이 가능하단다. 하지만 번호표를 뽑고 약 30분을 기다려야 할거라나.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다시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옵션에 ICE 제외가 있었다. 그런 후에야 고속철도를 제외한 열차의 시간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반열차는 차편이 많은 고속철도에 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구입한 티켓의 환불과 독일철도패스의 추가 구입이라는 이유가 겹치면서 결국 바이에른 티켓을 활용하기로 했다.
2. 다하우 유대인 수용소는 포기
그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1시간 남짓 걸리는 고속철도에 출발 시간을 맞추다 보니 오전 일정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고속열차 출발을 기준으로 하면 3시 반 열차를 타도되지만 이제는 1시 열차를 타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환불을 알아본다고 30분 가까이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다. 교육적인 효과가 크다고 생각되었던 뮌헨 근교 다하우 유대인 수용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 독일 왕실의 화려함을 엿보는 레지덴츠
다하우 유대인 수용소 대신 아내가 선택한 곳은 독일 영화(榮華)의 극치를 보여주는 왕실의 전당이라는 레지덴츠였다. 이곳은 바이에른의 지배자 비텔스바흐 왕가의 궁전이었다는데 왕궁인 레지덴츠와 왕실의 보물을 따로 전시한 보물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물관에 전시된 왕관은 영화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더라는. 레지덴츠와 보물관 중에서 한 곳만 입장하면 6유로이고 두 곳 모두는 9유로다. 아이들은 지루해 하지만 18세 미만은 무료라서 그나마 다행.
4. 식육점에서 맛본 소시지
오전 11시와 12시면 마리엔 플라츠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청의 시계탑을 보기 위해서다. 레지덴츠에서 마리엔 플라츠까지는 걸어서 약 10 여분 걸리는데 가는 도중에 그만 11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마리엔 플라츠 뒷편 시장 식육점에서 소시지나 사 먹어 보자고 들렀는데 생고기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사서 곧바로 먹을 수 있는 판매용이 따로 있었던 것. 그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익혀주겠다고 10분 후에 오란다. 이런 고마운 일이.
5. 뮌헨의 명물 시청광장 시계탑
약 1시간이라는 여유가 있었으면 12시 전에 시청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야 할 거 같지만 어쩌다 보니 시장통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서둘러 가보니 시계탑의 인형들은 꿈쩍도 않고 있었다. 이미 끝난 건지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나마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기에 같이 기다렸더니 얼마 후에 공연이 시작된다. 정각에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 인형은 위아래 두 부분인데 위쪽은 15세기 빌헬름 5세의 결혼식을 재현하고 아래쪽은 사육제의 댄스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6. 아직도 끝나지 않은 멘붕
뮌헨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기차 시간 맞춰 밤베르크로 떠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오전의 저주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지 1시에 떠나야 할 기차가 40분 이상 연착된다고 한다. 그 기차가 연착되면 환승할 열차까지 놓치게 되는 상황. 우왕좌왕하며 다른 열차 편을 알아보니 다른 플랫폼에서 약 10분 후에 떠나는 열차가 있었다. 다만 4시 반이 아니라 5시 반 도착 예정이었다. 서둘러 플랫폼을 옮겨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독일 열차의 연착이 빈번하다는 말은 들었었지만, 하필 약속이 있는 오늘 경험하게 될 줄이야.
7. 야경 없는 밤베르크 야경투어
밤베르크는 독일에서 유일하게 현지 가이드와 약속되어 있는 곳이었다. 원래는 5시부터 3시간 30분 정도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8시 30분에 로텐부르크로 떠나야 하기에 4시 반에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그 약속이 기차 연착으로 다시 한 시간 미뤄진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밤베르크에서 가이드와 만나 모처럼 여행다운 두 시간을 보냈다. 투어는 3시간 반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두 시간 반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한, 야경투어 명목이었는데 해가 9시까지 떠 있는 바람에 정작 야경은 볼 수 없었다는.
8. 밤베르크 맥주에서는 훈제 맛이
밤베르크 투어에는 맥주 시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5개의 유명한 술집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의 한 곳인 슐렝케를라(Schlenkerla)에서 맥주 맛을 보게 되었다. 이 집은 훈제 맥주 라우흐비어(Rauchbier)로 유명한 곳으로 흑맥주인데 뒷끝이 훈제족발(또는 훈제햄) 맛이었다. 특이한 맛이기는 했지만, 신기함은 첫 모금뿐이었다. 계속 마시다 보니 익숙해져서인지 그다지 특별한 맛은 아닌듯했다. 여러 잔을 마시기에는 차라리 부드러운 프랜치스카너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프랜치스카너보다 먼저 라우흐비어를 맛보았더라면 반대였을지도 모르지만…
9. 힘겨운 여정은 로텐부르크에서 끝나고
저녁 8시 반 기차를 타고 밤베르크를 출발해서 로텐부르크 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55분이었다. 사실 난 밤베르크에서의 숙박을 원했었다. 번갯불에 콩볶기 보다 천천히 밤거리를 둘러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아내는 가이드가 동행하니 웬만한 건 놓치지 않으리라는 계산으로 로텐부르크 숙박을 주장했나 보다. 어쨌든 어둠이 내린 로텐부르크는 모두 잠든 후였다. GPS에 의존해서 예약한 숙소를 한 번에 찾았으니 망정이니 하마터면 야밤에 길거리에서 싸움이 났을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독일에서의 또 하루가 전쟁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7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