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상징이자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열주문을 본떠 프로이센의 개선문으로서 설계(1788~1791)되었다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이 있는 로터리 오른 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기이한 형태의 콘크리트 기념물을 만날 수 있다. 마치 거대한 묘지처럼 직사각형의 관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모양새다. 독일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수도 베를린의 도심 한가운데에 왜 이런 시설이 있는 것일까.
이곳은 바로 전쟁의 비극과 끔찍한 학살의 기억을 품고 있는 홀로코스트 추도비(또는 추모비, das Holocaust-Mahnmal)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인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국립 홀로코스트 기념관으로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관처럼 생긴 콘크리트 기념물은 무려 2,711기에 달하며 지하는 정보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은 199년 6월 25일 독일 연방 의회에 의해 건립이 의결되었고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설계를 맡았다. 2003년 4월 1일 착공을 시작해서 2005년 5월 1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711기의 콘크리트 기념물이 들어서 있는 공원의 크기는 19,000 평방 미터에 달한다. 지하 정보 센터에 있는 ‘이름의 방’에서는 홀로코스트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이름과 생몰년도를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이 이런 공원을 베를린 한복판에 만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학살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6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철저히 사과하고 반성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독일은 그동안 700억 달러, 우리 돈 약 80조 원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배상해왔다고 한다. 전쟁으로 상처를 준 이웃 나라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과는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콘크리트 기념물들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고 규칙적이지도 않다. 높이가 낮은 곳에서는 주위를 둘러볼 수도 있지만 사람 키보다 높은 곳에 이르게 되면 콘크리트 기념물들 사이에 파묻히게 된다.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지하에 있는 정보 센터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10월에서 3월까지는 7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정보 센터를 돌아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점은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