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은 앞만 보고 걷기 마련이다. 목적지가 분명하기 때문이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게 된다. 안타깝게도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이 그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들른 곳이 브란덴부르크 문과 근처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도비였는데 하필 지게조일레(Siegessaeule), 즉 전승기념탑을 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이기에 걸어가기로 했고, 그렇게 베를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사실 베를린에 도착해서 웰컴카드도 구매했기에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될 일이었으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전승기념탑까지는 별다른 버스 노선이 없었다. 택시를 타기에도 어정쩡한 거리로 보였고, 무엇보다 아침이다 보니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상태여서 걸어봄직하다는 다소 무모한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금빛 여신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들르게 된 곳이 티에르가르텐(Spuren des Krieges in Berlin Grabst?tte und Ehrenmal Berlin-Tiergarten)에 있는 소련 전승기념탑이었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지게조일레 전승기념탑 중간 정도에 마치 전쟁기념관 같은 위용의 전차와 대포, 그리고 조각물이 있는 곳이었다.
사전 정보도 없이 만난 곳이었기에 그저 전쟁과 관련된 곳인가 보다 싶었는데 다녀와서 찾아보니 소련군의 2차대전 전승기념 조형물이었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부터 전승기념탑에 이르는 길은 베를린의 허브라 불리는 거대 공원인 티어가르텐이었는데 그 한가운데에 소련군 전승기념비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베를린 곳곳에서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은 전쟁에서 승리한 소련군의 기념비뿐만 아니라 1945년 4월에서 5월 사이에 벌어진 베를린 전투에서 전사한 2천여 명 이상의 소련군을 추모하는 곳이기도 하다. 1945년 여름과 가을에 건립하여 1945년 11월 11일 헌정하였고 1990년 12월 독일 정부에 이양하여 현재는 베를린시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 전승기념탑인 지게조일레(Siegessaeule)은 2차대전이 아니라 1837년 프로이센 왕국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베를린 티어가르텐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녹지와 산책로, 그리고 작은 호수, 화단 등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널리 사랑받는 곳이라고 한다. 면적이 너무 넓어 무작정 걷다 보면 길을 잃을 정도라고 하는데 전승기념탑만 찾아가느라고 티어가르텐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은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겨졌다. 어쩐지 전승기념탑에서 내려다 본 천지가 온통 숲이더라니…
데레사
2016년 10월 7일 at 11:24 오후
독일을 두번 갔지만 베를린을 못 가봤어요.
여행을 다니다보면 스케쥴에 없던 곳도
가게되지요.
그게 자유여행의 묘미이기도 하고요.
journeyman
2016년 10월 10일 at 3:14 오후
독일을 두 번이나 가보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언제 또 가보게 될런지 기약이 없으니 안타까워요.
재즈가이
2016년 10월 14일 at 8:58 오후
저도 독일 2번 갔지만 베를린은 못가봤네요~ ㅋㅋ
journeyman
2016년 10월 16일 at 9:03 오후
한 번 가고도 독일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쏙 빠져들었었는데
두 번이나 다녀오셨다니 부럽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