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낭만적인 곳이다. 베를린 도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녹지로 가득한 티어가르텐(Tiergarten) 한가운데에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전망대에 올라가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온통 숲으로 가득할 정도다.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나무들의 장관이 기대되기도 한다. 또한, 탑 꼭대기에 있는 금빛 여신상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분명히 낭만적인 곳이지만 그것도 여유가 있을 때 얘기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는 낭만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유럽 여행에서 체력 안배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라 하겠다. 원래 독일 전승기념탑인 지게스조일레(Siegessaeule)는 여정에도 없던 코스였다. 베를린 대성당과 페르가몬 박물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등의 순서로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만 금빛 찬란한 여신상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게 화근이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바라본 전승기념탑 꼭대기에 서 있는 여신의 뒷모습이 그리 멀지 않아 보여 잠깐 들렀다 가자고 나섰던 길이 고단한 하루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걷고 또 걸었지만,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금빛 여신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걸어서 도착하고 보니 이번에는 진입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스기념탑은 로터리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전승기념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신호등도 없었고 횡단도로 표시도 없었다. 어디 갈 수 있으면 가보라는 식으로 보였다. 그나마 무단횡단을 시도하는 어느 커플을 보고 용기를 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힘들게 와서는 전승기념탑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설 뻔했다.
그렇다고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더 어마어마한 고난이 남아있었다. 2.2유로의 입장료를 내면 약 50M 지점의 전망대에 올라서 시내를 굽어볼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이 오로지 걸어서만 올라가야 했다. 그나마 아침 시간이었고 브란덴부르크 문에서부터 걸어오기는 했어도 아직 체력이 남아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오를수록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되고야 말았다.
그 고생을 하고 올랐으니 전승기념관 전망대에 올라선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숲으로 둘러싸인 도심은 환상적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곳이 바로 시민들의 휴식처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는 티어가르텐(Tiergarten)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둘러보아도 건물보다는 숲이 더 많아 보였다. 마치 외딴 섬에 홀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전승기념탑은 1864년 덴마크, 1866년 오스트리아, 1870~71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프로이센 제국이 독일 통일을 기념하여 1873년에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높이는 69M이고 전망대는 지상 약 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대까지 놓여있는 계단은 285개라고 한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되어있는데 중간 중간에 쉬어갈 수 있도록 작은 벤치도 놓여있다.
전승기념탑은 서베를린 방향에 있었는데 분단 시절 동독이 서독의 전승기념탑보다 더 높은 건축물을 짓겠다는 생각에 지어진 것이 TV타워라고 한다. TV타워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국회의사당 방향 뒤쪽으로 보이는 뾰족한 건물이다. 도착하고서야 알았지만, 전승기념탑은 지하철 입구처럼 생긴 곳을 통해서 지하보도로 이동하게 되어있다. 입구에는 서명과 함께 10유로 기부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적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분명히 낭만적인 곳이고 한 번쯤 올라가 볼 만한 곳이지만 선택은 불가피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체력적인 소모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만일 베를린 대성당에도 가볼 생각이라면 전승기념탑은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베를린 대성당의 전망대도 27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둘 다 오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처럼 당일이 아니라 베를린에서 며칠 있을 예정이라면 둘 다 가보는 것도 좋겠고…
* 독일 전승기념탑을 위한 간단 요약
1. 전승기념탑 금빛 여신이 유혹하더라도 절대 걸어가겠다는 생각은 마라.
체력을 아껴야 전망대를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다.
2. 로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전승기념탑으로 이어져 있는 지하통로 입구가 보일 것이다.
3. 전승기념탑 입장료는 성인 2.2유로, 학생 1.5유로이며 연중뮤휴이다.
4. 베를린 대성당에도 갈 예정이라면 전망대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