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위대하다. 배우기 쉽거니와 쓰기에도 쉽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것도 그 때문이다. 억지로 외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가엾이 여긴 세종대왕의 어진 성품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런 한글이니 언제 어디에서 만나도 반가워야 할 텐데 가끔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나라 망신시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서다.
오래전 런던에서 하루를 머문 후 파리로 이동하기 전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서 런던 시내 쇼핑센터에 들렀을 때였다. 화장실을 일반에게 개방한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한글 안내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게 좋은 내용이라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화장실 내에서는 절대 금연입니다”라는 경고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 이런 경고가 한글로 나붙었을까 싶어 씁쓸하기만 했다.
이번에 독일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해야 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오르내리는 산악열차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건너편 건물 창문에 친숙한 글자가 보였는데 내용은 ‘명품쎄일’이라는 문구였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명품을 좋아하면 한글로 ‘명품쎄일’이라 적어놓고 호객할까 하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뭐 이 정도는 애교라고 하겠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시내에 있는 학생감옥에 가면 그보다 더 심한 한글 문구를 볼 수 있다. ‘감시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낚서를 하면 처별됩니다!!!’라는 경고다.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낙서 문화가 해외에서도 인정(?) 받고 있는 셈이다. 한글로 쓰인 낙서로 인해 여러 관광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처럼 한글로 경고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물론 낙서란 게 한국인들만의 고질병이라고는 할 수 없다. 냉전 시대의 산물인 베를린 장벽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도 방문자들의 각종 낙서들로 훼손되고 있기에 그렇다. 문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이 간직했다가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문화재라면 더욱 그렇다. 그네들에게는 소중히 지켜야 할 문화유산을 마치 뒷골목 선술집으로 착각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남긴 낙서가 왜 하필 한글이란 말인가. 낯부끄럽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데레사
2016년 12월 27일 at 10:43 오전
미국에 잠간 살았을때 아파트 마당
수영장 탈의실 앞에 남자 아이를 여자
샤워실로 데녀오지 마세요 란 한글
경고문이 있었어요.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journeyman
2016년 12월 27일 at 4:37 오후
우리나라 관광지에 남겨진 낙서도 꼴불견인데
해외에까지 가서 그러고 싶을까 싶어요.
다른 나라 말은 없고
오직 한글로만 쓰여있는 경고문은 정말 부끄럽지요.
초아
2016년 12월 27일 at 9:34 오후
우리나라 관광지나 공원등에도
낙서들로 가득 차있지요.
그것도 모자라서 외국에 나가서까지..
나라망신 시키다니…ㅠ.ㅠ
journeyman
2016년 12월 28일 at 5:28 오후
작은 선술집에서는 낙서가 문화로 남기도 합니다만 유명 관광지와 선술집을 구분하지 못하는 몰지각에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