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성과 누추한 감옥.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델베르크를 대표하는 건물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하나는 괴테도 사랑했던 성이라는 하이델베르크 성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만 수용하는 감옥, 즉 학생감옥이었다. 사실 학생감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학생운동하다 잡혀 온 학생들만 모아놓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다시 말해 지성인을 존중해 주는 의미로 다른 잡범들과는 다르게 대한다는 의미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학생감옥의 진실은 달랐다. 옛날 독일 대학은 치외법권 지역이었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처벌권은 경찰이 아닌 대학 당국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외부에서 지은 범죄가 아닌 대학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재판을 열어서 처벌했다는 말이다. 그런 재판의 결과로 학생들을 감금하고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장소가 바로 학생감옥이었던 것이다.
원래 학생감옥은 구대학 계단 아래에 있었으나 건강에 좋지 않다는 비판에 따라 1712년 현재의 학생감옥으로 이전하여 1914년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학박물관 뒤쪽에 입구가 있으므로 찾기는 쉽지 않다. 수용할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규모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고 철제 침대와 나무 탁자가 놓여있어 지내는 데 큰 불편은 없어 보였다. 벽에는 각종 벽화와 구호들이 가득해서 수용자들의 반항적인 기질을 엿볼 수도 있다.
학생감옥이 계단 아래에 있을 때의 감옥 생활은 비참했었다고 한다.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신세였으니 자괴감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햇빛도 들고 전망도 있는 새로운 건물로 이전한 후에는 쾌적한 환경이 마련되면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일종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감옥에 다녀온 학생들에게는 젊은 날의 치기 어린 무용담 거리가 생긴 것이다.
학생들의 범죄는 주로 경범죄였는데 취중 추태, 절도, 행패, 야간 소 동 등 학생 신분에 어긋난 행위를 할 경우 경중에 따라 최소 24시간에서 최고 4주간 학생감옥에 감금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반성하라는 의미의 공간이었지만 밤에 감옥 안으로 술과 음식들을 반입하여 파티를 여는 등 사교클럽이 되어갔다고 한다. 또한, ‘그랜드 호텔’, ‘로얄 궁’, ‘솔리튜테 성'(고독이란 의미), ‘숑스시 성'(근심이 없다는 의미) 등으로 불리면서 나중에는 일부러 죄를 짓고 들어와 감옥에 갇히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풍조가 생겨났다고 하기도.
학생감옥이 관광 가이드 책자에 유명 명소로 소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볼만한 명소라고 하기는 어렵다. 죄지은 학생들을 수용했다고 해도 감옥이라기보다는 임시 거처 정도로 보일 뿐이다. 더구나 읽지도 못하는 글들이 잔뜩 쓰여 있으므로 어수선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대학이 자체적인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 안에 학생들만 수용하는 감옥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가 있겠다.
그런데 벽과 천장에 가득한 구호들을 낙서로 생각한 일부 몰지각한 한국 사람들이 한글로 낙서를 남겨놓아 문제가 되고 있다. 오죽하면 ‘감시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낚서를 하면 처벌됩니다!!!’라는 한글 경고문까지 붙여놓았을 정도다. 이는 한국 사람만 아니라면 그럴 일이 없으리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큰돈 들여 떠나온 여행에서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