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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백조의 성이라고도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성 - Journeyman이 바라본 세상
백조의 성이라고도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성

노이슈반슈타인

너무 사랑했기에 자신의 죽음과 함께 부서져 없어지길 바라던 성이 있었다. 그만큼 비운의 성이지만 지금은 독일을 대표하는 성으로 대접받고 있다. 디즈니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등장하는 성의 모델로 삼았다고도 하고 디즈니랜드를 대표하는 ‘신데렐라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하는 그 성,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이다.

이 성의 주인은 루드비히 2세(1864~1886년 재위)로 자신이 자랐던 ‘호엔슈방가우 성(Hohenschwangau)’ 맞은편에 자신만의 성을 지으면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 그린’ 중 백조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노이슈반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작곡가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던 그는 성 안에 바그너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줄 정도였다. 독일어 ‘Neuschwanstein’을 영어로 풀이하면 ‘New Swan Stone’의 의미가 된다. ‘백조의 성’으로 불리는 이유다.

루트비히 2세는 어렸을 적부터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또,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토대로 한 오페라 작품들을 썼고, 이 때문에 루트비히도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호엔슈방가우 성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물들을 건설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는 1869년부터 이 성을 짓기 시작했으나 1886년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중단되어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정신병자 판정을 받고 왕위를 박탈당한 지 이틀 만에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한 것이다. 성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기에 ‘백조의 성’이 관광지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죽으면 성을 부숴달라고 했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은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고 수많은 여행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퓌센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광장에서 내리면 저 멀리 산 아래로 신비스럽게 서 있는 성 하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말로만 듣던,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샘솟기 시작한다. 걸어가든, 셔틀버스를 타든, 마차를 타든 자유지만 성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순탄하지 않으므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찾아간 날은 공교롭게도 일요일 오후였다. 뮌헨 시내에 있는 노이에 피나코테크 입장료가 공휴일에는 1달러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앞섰기에 성에 가려면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계산까지는 못 했던 것이다. 휴일 오후. 그렇다. 매표소는 이미 먼저 온 인파로 가득했다. 그래도 기다리다 보면 차례가 오겠거니 생각했지만 문제는 마감 시간이었다. 성에 입장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모종의 결단이 필요했다. 성에 들어가려면 순서를 기다려 표를 사고, 다시 순서를 기다려 입장해야 한다. 그 시간이 적잖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에 들어가지 않고 성과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우리의 선택은 내부보다는 외부 경치였다. 여기까지 와서 성에 들어가 보지 못하는 것도 억울하지만 풍경을 포기하는 것은 더 억울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가장 멋있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성 뒤편에 있는 마리엔 다리다. 그러나 이곳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리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서로 뒤엉켜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인내를 갖고 기다리면 인파가 빠지는 찰나가 발생하는데 그때 인증샷을 남기면 비교적 깨끗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또한, 귀인도 만나야 한다. 우리의 경우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가족사진을 남길 수 있었는데 이때 만난 귀인 덕분이었다. 한국계 청년이었는데 키가 180cm 정도로 큰 편이었기에 좋은 각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사진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였기에 그럴듯한 작품 사진을 찍어줄 수 있었다. 전문 사진사에게 돈 주고 찍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잘 나왔다. 물론 이 사진은 우리집 거실에 당당히 걸려 있다.

가족사진

4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1월 16일 at 5:16 오후

    그런데 사진도 보여 주시지…
    궁금해요.
    그 사진 살짝 보여주세요.

    • journeyman

      2017년 1월 18일 at 5:06 오후

      가족 사진을 노출하기만 민망해서 적당히 모자이크를 했습니다. ^^

  2. 초아

    2017년 1월 18일 at 11:28 오후

    모자이크 처리를 하여 오히려 더욱 신비스러워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성이 상상속 동화나라 같습니다.

    • journeyman

      2017년 1월 20일 at 2:32 오후

      어쩌다 보니 변변한 가족사진 하나 없었는데 저 사진으로 위안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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