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고 생각하니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도 어제 본 것을 오늘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고, 내일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왜 진작에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안타깝기도 했다. 지금까지야 어떻게 살았든 남은 시간들만은 알차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다.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어제 본 것을 오늘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고, 내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어떻게 사느냐 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 죽느냐일 것이다. 잘 사는 일 못지 않게 잘 죽는 일 또한 인생의 큰 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죽음에 가까울수록 사는 생각보다 죽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후회 없는 삶으로 이끄는 행복한 죽음을 위한 마음가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유대인 랍비가 전하는 인생의 아름다운 준비’는 잘 죽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새러 데이비드슨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랍비 50인’ 명단에 매년 이름을 올린 잘만 섀크터-살로미(Zalman Schachter-Shalomi)와 2년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면서 그와 삶과 죽음(인생 12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생존에 15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던 랍비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이기도 하다.
랍비에게 듣는 이야기라기에 탈무드처럼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으나 내용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흔히 종교 지도자라고 하면 시답지 않은 말을 해도 대단한 말처럼 떠받드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종교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솔직히 거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후회없는 삶으로 이끄는 행복한 죽음을 위한 마음가짐이라면서 랍비 개인의 위인전같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360페이지나 되는 두께 중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내용(인생 12월을 준비하다)은 4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대단히 특별난 내용도 없다. 지극히 평범한 말들이다. 랍비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말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반대로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을 허비하는 시간낭비가 될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저자와 랍비는 사람들이 죽음을 더 편히 받아들이도록 돕자는 뜻에서 아름다운 ‘준비’ 항목을 마련해 놓았다. 소위 ‘인생 12월 여행’을 하면 하루하루를 더 즐겁고 의미있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항목들이 힘든 시간을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어디에서 들어봤음직한 내용들이지만 아무튼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준비 01 : 용서로 치유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용서하거나 용서받아야 할 사람 혹은 일이 있는데, 해결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가? 아닐 것이다. 용서가 인생 12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긴 하지만, 용서하는 것은 시기와 나이에 상관없이 언데든 치유이자, 자유로워지는 해결법이다.
준비 02 : 감사한 마음을 갖다
감사는 ‘인생 12월 여행’의 모든 면에 깃든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출발하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 …(중략)… 자연 속에 있을 때는 마음을 모으고 감사하기가 쉽다. 복잡하거나 쾌적하지 못한 공간에서도 감사하며 걸어보자. 교통체증에 붙들렸을 때도 거기서 감사할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준비 03 : 신에게 푸념하다
“우울감이 너무 깊어서 움직이지도 못할 때는 누워서 신에게 푸념하지요. 그러면 도움이 됩니다. 신에게 괴로움을 털어 놓는 거지요.” 그러니 쏙아 내자. 모든 슬픔, 불평, 자기 연민, 괴로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을! 모두 소리 내어 말하고 기운이 빠지면, 눕거나 조용히 앉아 있자.
준비 04 : 내 존재감을 인식하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부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겉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하다. 나는 여기 있다.” 내가 어디 두었는지 모르는 물건은 세상 어딘가에 있고, 내가 잊은 부분은 내 의식 속 어긴가에 있다. 침착하게 둘러보자. 하루쯤 기다려 보자. 친구에게 그 일을 마하고 웃자. 그게 최고의 명약이다.
준비 05 : 몸과 마음을 분리하다
“딱한 잘만(랍비의 이름)의 몸뚱어리. 너는 정말 쓸모 있었고 정말 믿음직스러웠지. 너는 나를 잘 데리고 다녔지. 지금 네가 불편하니 안쓰럽구나.” 그는 이런 대화가 몸과 마음을 분리해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고통에 시달리는 건 ‘나’가 아니라 ‘몸’이라는 것이다!
준비 06 : 아픔을 받아들이다
나이 들수록 우리 몸은 사춘기 이후 어느 때보다도 큰 변화를 경험하는데, 이런 변화는 특히 인생 12월에 가속화된다. 이 때는 이전에 겪지 않은 질병들을 앓고 나면 노화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육체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고통이 찾아오면 진통과 진통 사이에 명상을 하려고 애써 보자.
준비 07 : 직감에 귀 기울이다
비교적 사소한 일에서 직감을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해 보자. 점심 식사를 하러 어디로 가야 할까? 처음 떠오른 곳을 생각해 보라. 그 생각을 가만히 되짚어 보고, 그게 어디서 왔는지 유의해 보자. 목소리로 오는가? 지나가는 버스에; 붙은 광고에서 오는가? 그리고 나는 그 직감을 따랐는가? 그 결과는 어땠는가?
준비 08 : 고독과 친구하다
어느 나이든 마찬가지지만, 특히 인생 12월에 가까워질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혼자 있거나 권태롭거나 쓸쓸한 것과는 다르다. 고독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직관을 키우고 신과 소통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러니 고독을 즐길 시간을 만들자.
준비 09 : 지난 인생을 돌아보다
이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이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사람들이 드러난다. 마무리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편지를 쓰고, 그 시절에 찍은 사진도 첨부한다. 그 편지를 소리 내어 읽고, 편지를 부치는 게 적절할지 혹은 그 사람을 상상하면서 진실을 밝히기만 하는 게 적절할지 결정한다.
준비 10 :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인생을 완전하게 살아서, 어느 순간에 죽음의 천사가 데리러 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천사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간다고 상상해 본다. …(중략)… 스스로에게 말해 보자. “나는 지금 죽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긴급하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고, 그 항목들을 적는다.
준비 11 : 자동차에 종 매달기
자동차에 작은 종을 매단다. 뒷거울에 달면 차가 도로에서 울퉁불퉁한 곳을 지날 때 종이 울릴 것이다. 아니면 집 현관문에 매단다. 종소리가 연상시킬 짧은 어구를 선택하자. 다음 일로 넘어가는 것보다 이 순간이 더 의미 있으니까. …(중략)… 그래서 그는 종소리가 나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준비 12 : 마지막 순간을 연습하다
하루 중 일어나는 모든 소소한 일을 받아들임으로써 놓거나 버리는 연습을 한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어야 마땅한지, 그 일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하려고 하지 말자.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살핀다. 하늘이 흐린 것, 커피 맛이 진한 것, 친구가 전화해서 약속을 바꾸는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을 만들고, 또 수용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인지 적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