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돈, 시간, 정보의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도 없이 무일푼으로 떠날 수도 없고, 시간이 안나는 데도 여행을 계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나서는 여행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떠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한의사 정이안이 그렇다. 반복되는 진료와 강의 그리고 방송 스케쥴 등으로 지쳐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인 치유의 방법으로 찾은 것이 바로 조용히 며칠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여행지에 홀로 있으면 모든 것이 비워지고 홀가분해지면서 행복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떠나는 용기’라는 제목의 책에서 ‘혼자 하는 여행이 진짜’라며 조용한 여행을 강조한다. 혼자 떠나면 내면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마음의 이정표를 따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자신과 오롯이 만날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이며,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힐링여행가를 자처하는 저자가 다녀온 12개의 나라가 소개되어 있다. 부탄, 티베트, 네팔, 인도, 일본, 태국, 뉴지랜드, 체코와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다. 힐링이라는 테마에 맞춰 행복찾기, 간절한 기도, 스스로 격력하기, 마음 비우기, 느림의 재발견, 되돌아보기, 용기 얻기, 새로운 소망, 마음 들여다보기, 용서하기, 느리게 살기, 자유의지 회복와 같은 소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치유라면서 다른 여행기와 별다른 특징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특별한 정보가 담겨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 여기 가봤다’가 전부다. 한의사에 교수로 비교적 풍족한 경비를 지니고 떠난 여행일 테니 한 푼이 아쉬운 여행자들이 참고할 만한 부분도 없다. 그러니 블로그에서 한 번 읽으면 그만인 내용들이다.
각 여행기 말미에 자신이 만난 환자를 떠올리며 이랬던 사람이 여행 후에는 이렇게 달라졌다는 식의 사족을 달고 있는데 그마저도 끼워맞추기로 보일 따름이다. 외국계 투자회사의 전문경영인 K는 일에 쫓기고 잦은 출장으로 지쳐 졸도하기도 했는데 저자가 구시로 습원을 호젓하게 둘러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라면서 훗가이도 여행을 권했는데 혼자만의 느린 여행을 만끽한 다음 환하고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는 식이다.
힐링여행을 표방하고 있지만 무엇이 힐링여행인지 알 수 없다는 맹점도 있다. 현실에서 벗어나 떠나기만 하면 힐링이 된다는 말인 듯한데 여행이 목적이라면 다른 좋은 여행책도 많은데 굳이 이 책을 선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또한, 여행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면 외국으로만 나가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돈 없고 시간 없는 사람은 치유받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말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도 선뜻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탓이다. 그런 사람들이 언젠가는 떠나고 말리라는 생각으로 집어드는 책은 따로 있다. ‘유럽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이나 ‘유럽여행 핵심사전 500’처럼 눈요기할 수 있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직접 다녀오지는 않았어도 읽는 이에게 심리적 포만감을 안겨준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보는 맛도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없다.
01 행복 찾기 – 행복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부탄
02 간절한 기도 – 기도하는 사람들의 나라, 티베트
03 스스로 격려하기 – 하늘과 맞닿은 히말라야 트레킹, 네팔
04 마음 비우기 – 명상을 통해 새로워지는 나, 인도 푸네
05 느림의 재발견 – 초록빛 힐링을 온몸으로 느끼다, 홋카이도
06 되돌아보기 – 자연의 순수함에 잠기는 치앙마이 트레킹, 타이
07 용기 얻기 – 캠퍼밴으로 그림 같은 남섬을 여행하다, 뉴질랜드
08 새로운 소망 – 예술의 도시에 흠뻑 빠지다, 빈 & 프라하
09 마음 들여다보기 – 브르타뉴 시골 마을과 루아르 고성, 프랑스
10 용서하기 – 다름을 끌어안아 조화를 이뤄낸, 스페인 안달루시아
11 느리게 살기 – 자연도 사람도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 토스카나
12 자유의지 회복 – 미코노스와 산토리니 그리고 지중해, 그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