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글 보관함: Pine Island (松島)

‘남겨진 쪽지’를 읽고

‘남겨진 쪽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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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교정의 성탄절 장식이 모두 끝나서 카메라를 들고 밤풍경을 몇 장 찍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오늘 밤도 이제 겨우 3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아직도 잠 못 들고 고통 속에서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병실이 다섯 곳이 보인다. 건너편 강의동에는 의학과 4학년의 의사고시와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의학과 학생들의 기말고사 준비로 불빛이 환하다. 아마도 내년 초가 되어야 학생들은 잠시 방학을 즐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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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부터 ‘남겨진 쪽지’를 읽고 며칠 동안 글쓰기를 시작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주변의 세모의 풍경과 책 속의 시간이 너무도 비슷해서 어쩔 수 없이 감상적이 되고 책 속의 엘레나와 그레이시 그리고 부모인 키스와 브룩 데저리크의 감정과 슬픔 그리고 고뇌와 좌절이 가슴을 파고들어서 어느덧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린다. 사실 이미 한국에도 3명 또는 5명 중에 한명이 암에 걸린다고 하니까 주변의 친지나 가족들 중에서 암으로 고생하시는 분을 간호해보지 않은 분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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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의학과 1학년 봄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새벽에 주인집 할머니가 문을 두드려서 잠을 깨웠다. 방금 시골에서 부친께서 서거하셨다는 전갈이었다. 나는 긴 하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계란 두 개를 깨서 컵에 담아 마시려고 하다가 다시 책상위에 올려놓고 고향을 향해 재배를 하면서 비로소 선친께서 별세하셨다는 것을 실감했다. 의예과 2학년의 주당 44시간의 강의와 매주 4일 정도는 시험으로 밤을 새워야하는 지독한 한 학기를 마치고 시골에 내려갔을 때 가친께서 황달이 의심되어서 검사를 한 결과가 의외로 나와서 서울 강북 삼성병원(구 고려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한 결과 담관암으로 간과 대동맥으로의 전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치료를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와서 주로 통증치료를 근간으로 한 고식적인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약 3개월간의 경험이 다시 또렷이 되살아나서 책을 읽는 사이사이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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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으로는 엘레나가 미만성뇌간신경교종이 발병해서 겪게 되는 증상들이 뇌간의 해부학적인 구조를 알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도 구체적으로 다가와서 더욱 고통스러웠으며 또한 항암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로 겪게 되는 고통과 증상의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면서 겪게 되는 엘레나와 가족들의 희비와 끝을 알 수 없는 좌절에 낙담하게 된다.

68일째 일기에서 키스는 임상시험 자료를 뒤지며 ‘임상종양학’ 책을 구해서 딸의 종양에 대하여 정보를 얻고 나름대로의 이해를 하려고 시도하면서 “이해되는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다. 어떤 부분은 논리적인 같은데 다른 부분은 허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암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전혀 교육받지 못한 문외한이다. 암에 대한 전문가들이 고심하는 문제를 내가 이해한다거나 수정해 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고백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암환자나 그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뇌와 딜레마를 너무도 잘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암환자에 대한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사실상 종양을 이해하려면 인체의 발생과 성장 그리고 환자의 환경과 생활습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고려가 요구되기 때문이며 종양은 어린 아이들이 키가 크고 체중이 늘어나는 과정과 같으나 단지 그 성장이 조절되지 않는다는 점만이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종양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아는 것처럼 종양은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에서 진단을 받기까지, 소아암의 경우에서처럼 주로 선천적인 경우에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만성질환이다.

또한 초기에 진단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위암이나 간암 폐암 자궁경부암 유방암 갑상선암 등의 국소적인 암도 사실은 혈액이나 임파선을 타고 원격으로 미세전이가 되었다고 판단하여야 하므로 전신질환으로 분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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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몸은 약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하루사이에 적어도 5천억 개의 세포가 파괴되고 그 재료는 다른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상인들에게도 최소한 5백만 개 정도의 세포분열의 조절에 장애가 있거나 DNA의 손상이 발생한 세포들이 만들어지나 건강한 성인의 경우 면역감시에 의해 선별되어서 파괴된다. 우리들이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거나 과로하는 경우에 체내에서 다량의 부신피질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러한 경우에 면역감시 체계에 허점이 생겨서 비정상적인 세포가 계속 분열해서 점점 더 조절이 되지 않는 세포로 변성되어서 그 크기가 10억 개의 덩어리가 되면 직경 약 1 cm 크기의 종양이 되는데 이 정도의 크기가 되어야 방사선과학에서 암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즉 궁극적으로 암은 면역학적인 질환이며 이러한 암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재발이 빈번한 이유도 바로 10억 개의 이하의 소수의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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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화학요법제 즉 항암제는 그 기원이 2차 세계대전중 화학전에서 사용된 겨자탄 신경가스(nitrogen mustards) 물질로서 1942년 미 국방부(U.S. Department of Defence)에 의하여 항암치료제로 사용하기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항암화학용법제의 단점은 체내의 모든 세포의 분열을 무작위로 억제하여서 골수, 모낭 그리고 소화기의 상피의 증식억제에 의한 혈액학적인 장애와 감염, 탈모, 구토와 설사 등의 소화기 장애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나는 항암제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종양환자에게 이러한 항암제의 투여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환자의 예후를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또한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판단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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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일째 일기에서 키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는 자식을 보호하고 구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일을 미리 대비하고 더 많이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든다. 지켜준다는 말에는 단순히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예방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이미 실패했다. 다시 또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엘레나의 경우에는 태어난 이후에 후천적으로 발병하였기 보다는 유전자의 이상에 의한 선천성 장애일 가능성이 많지만 그 외 대부분의 성인에서 발생하는 암은 모두 환경과 생활습관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우리들은 암의 예방에 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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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엘레나가 다량의 스테로이드 투약으로 발생한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어가는 쿠싱증후군(Cushing’s syndrome)을 앓으면서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마지막으로 데저리크 부부에게 위안이 될 비밀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엘레나의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고 데저리크 부부와 그레이시가 진정으로 바란다면 언젠가 엘레나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태어나서는 자기가 엘레나였다는 것을 망각하게 되겠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과 알듯 말듯 한 미소 속에서 그들이 이전에도 만났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왜냐하면 나는 돌아가신 선친을 지금 만나고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12/14/‘09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생의 수레바퀴’를 읽고

‘생의 수레바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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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에 책을 받아서 반쯤 읽다가 저녁에 고교 의사회 모임이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면서 줄곧 상념처럼 떠오른 생각은 ‘삶과 삶 사이 또는 죽음과 죽음 사이’였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쓰려고 구상을 하면서 ‘과연 어디까지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남겨 두고 써야 할까?’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마침 출석률이 저조해서 10년 후배인 성형외과 전문의와 모 대학의 내분비 내과 교수로 있는 후배 그리고 고교 동기이고 정형외과를 개원 하고 있는 친구 넷이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한 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읽고 있던 책에 대해서 말을 꺼내면서 죽음의 문제와 윤회에 대하여 각자의 견해를 물었다. 둘은 육신의 사망 이후에 영혼은 어떤 형태로든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사람들이 예수를 직접 만난다고 하는 것은 허황되다고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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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Elizabeth Kűbler-Ross는 의학과 시절, 정신과학에서 ‘환자의 죽음에 대한 단계적 적응과정’에서 잠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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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1994년 10월 6일 버지니아의 하이랜드 카운티의 120 헥타르의 농장에서 일어난 화재에서 시작되고 있는데 나 또한 의학과 1학년 봄에 학교의 도서관에 밤늦게 공부하다가 잠시 눈을 붙이러 집에 내려간 사이에 책상에 쌓아둔 10여권의 책과 노트를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잃어버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자의 상실과 좌절의 아픔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와 닿았다. 세 쌍둥이 중에 900 그램이라는 저체중아로 태어난 저자는 항상 남보다 열배 이상의 노력을 하여서 생존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로인하여 어린 시절부터 독립심 강하고 신념이 뚜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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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마다 성서를 가르치는 목사가 ‘공포와 죄의식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믿고 싶지 않다고 달려들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했지만 자연으로 부터는 무한한 안식과 신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1942년 의무교육과정을 마칠 때쯤 부친의 회사에서 비서겸 경리로 일하라는 명령에 반발하여 집을 떠나 제네바에서 가정부일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취리히 주립병원 피부과 연구실에서 견습생으로 시작해서 1951년 취리히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7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컨트리 닥터가 된 후 의대시절의 매니라는 미국인 동급생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1962년 뉴욕에서 콜로라도대학교 정신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연구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정신생리학 연구소장인 시드니 마골린 교수의 강의를 대신 맡게 된 저자는 강의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정하게 된다. “나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죽음이란 주제에 접근해보려고 생각했다. 내 논제는 간단했다. 의사들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 하고, 죽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죽음을 다루기가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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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어느 가을날 시카고 신학대학의 네 명의 신학생의 요청으로 시작된 죽어가는 환자와의 면담을 시작으로 1967년 상반기부터 매주 금요일 ‘죽음과 죽어감’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 시작했다.

“면담이 끝날 즈음에는 환자의 표정에 평온함이 보였다. 희망을 버리고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던 대부분의 환자가 새롭게 주어진 교사의 역할에서 커다란 기쁨을 찾았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고, 마지막까지 훌??다. 그들은 계속 성장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것은 세미나 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배운 가르침은 “뒤돌아보고 삶을 헛되이 보냈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정직하고 충만하게 삶을 살아 가세요.”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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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까지 라-라비다 소아병원에서 근무하던 저자는 자선진료의 문제로 사표를 내고 마흔여섯의 나이에 ‘삶과 죽음, 그리고 이행’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을 시작하였고 1970년대 전반까지 동료와 약 2만 명의 환자와 인터뷰를 해서 임사체험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한 후 ‘죽음의 체험에는 전혀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며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것도 모든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체험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한 연구의 결과 ‘죽음의 새로운 정의는 육체의 죽음을 초월한 영역까지 발을 들여놓아야 하며 육체 이외의 영혼, 단순한 존재와 생존을 뛰어넘는 무엇, 사후에도 연속하는 무엇을 고려해야 한다.’고 결론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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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저자는 채널링과 유체이탈의 경험을 하게되며 Life after life의 저자인 무디의 소개로 버지니아의 하이랜드 카운티에 힐링 워터스 농장을 세웠으나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을 입양하겠다는 계획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결국 화재가 발생하였고 오랜 강행군으로 지친 저자는 1995년 5월 14일 아침 뇌출혈로 쓰러져 병상에서 이 책을 쓰고 2004년 8월 24일 영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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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물음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얼마나 봉사를 해왔는가? 돕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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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인용하려고 표시한 곳이 40여 페이지를 넘어서 일일이 기술을 하지 못해서 유감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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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를 더 보탠다면,

우리들의 삶은 비록 지구를 포함한 우주에서 재료를 빌어서 육신을 만들어 쓰기는 하지만 영원에서 영원까지 삶은 계속되며 육신의 죽음은 결코 생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내면화되어야할 궁극의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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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09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365 매일 읽는 리더의 한줄’을 읽고

‘365 매일 읽는 리더의 한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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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cm의 앙증맞은 수첩처럼 생긴 책 한 권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또 다른 한권의 책을 떠올리다가 12×19 cm의 1974년 3월에 출판된 330 페이지 분량의 650원 하던 그 책을 서가에서 꺼내 들었다. Dale Carnegie의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번역판이었다. 이 책의 0513에도 그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상기의 카네기의 저작은 시골을 떠나 대구로 진학을 한 후에 처음으로 샀던 책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고 그 내용 중에 편지와 카드의 효과에 대한 가르침은 현재의 교수직을 갖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편지와 카드는 반드시 진실과 솔직함이 담겨 있어야 하며 하나의 요령으로만 이용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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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이야기가 길어진 이유는 이 책을 일고 난 후에 사실상 거의 짤막하고 독립된 tip(조언)들로 가득한 낱낱의 페이지에 대해서 모두 기술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의 내용 중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내용들과 관련된 것을 추려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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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변연계(limbic system)라고 하는 부위가 있는데 그중 편도(amygdala)라는 부위는 정보 중에도 특히 감정과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여 저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우리들이 흔히 어떤 사람이나 상황의 ‘분위기’라고 지칭하는 것을 파악하는, 매우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며 거의 의식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의 자료들을 저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은 거의 무의식에 도달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거의 제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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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108에는 “직원들은 당신이 한 일과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항상 기억할 것이다.”라고 하는 인용구가 있다. 약 25년 전 카리브 해에서 기관사로 근무할 무렵 신임 선장님께서 자신을 소개하면 악수를 청하는데 그 때의 상황을 아직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형성된 신뢰의 끈은 내가 그 배에서 연가로 하선한 후 지금까지 계속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당근’이라는 용어가 마땅치 않다는 거부감을 받는데 아마도 진심이라는 것이 너무 세속화되었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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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0311에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에게 반드시 감사하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도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정말 순수한 가르침을 주신 분은 지금은 시골에서 은퇴하신 중학교 때의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우등상을 못 받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얘야, 이번에 우리 반에서 우등상을 아무도 못 받게 되었다. 내가 너의 성적을 조금 올렸다.” 그렇게만 말씀하셨다. 나는 그분의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후 그 은사님께서 나의 주례를 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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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Leo Buscaglia의 저작을 특히 좋아하지만 이 책의 0131에 “우리가 너무나 자주 과소평가하는 것이 있다. 한 번의 손길, 한 번의 미소, 친절한 말 한마디, 한 번 귀 기울여 주는 일, 정직한 칭찬 한마디, 상대를 보살피는 아주 작은 행동 등이다. 이 모두가 삶을 전환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요소다.”라는 구절이 있다. 해기사였을 때니까 아마도 1982년 겨울쯤으로 기억된다. 미국 Los Angeles 공항의 한 여객기에서 열십자로 끈이 묶여진 전형적인 인디언 샌들을 신고 있던 Indian 여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나는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서로 미소 지으며 많은 교감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가 다시 만나도 또 다시 단번에 그녀를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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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0503에 벤저민 플랭크린의 13가지 덕목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나도 고교시절 그 자서전에서 가르쳐 준대로 매주 하나씩 제목을 정해서 실천하려고 노력을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중에 ‘청결: 모든 물건은 자리를 정해두고 정리하라.’고 한 구절은 지금은 어느 정도는 내면화가 된 것 같다.

이 책 0604의 Maslow의 ‘욕구 5 단계설(Hierarchy of needs)도 매우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들이 많은 필요를 실현해 가다보면 종국에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고개를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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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0120의 “삶은 획기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이 모여 이루어진다.”고 하는 케네디 어머니의 지적은 평범한 말인 것 같으나 가슴을 절절히 후벼판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만남과 언행은 진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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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09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세계를 망친 10권의 책’을 읽고

세계를 망친 10권의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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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도 필연이라 잘못 전달된 책에 대한 서평을 쓰게 되었다.

사실 좋은 책도 많은데 굳이 세계를 망친 10권의 책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책이었지만 막상 읽고 보니 특히 고교시절 일반사회나 정치경제 국민윤리에서 등장했던 책들이 많았고

돌이켜보면 광적으로 책을 사서 모았던 때라 나에게도 몇 권은 있는 책들이었다. 그중 군주론, 방법서설,

나의투쟁은 서가에는 있으나 방법서설과 나의투쟁은 아직까지 읽어 보지 못했고 루소, 밀, 니체, 다윈,

프로이트의 저작들은 있으나 같은 서적은 아니었다. 사실 이 책들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주로 기독교

성서 연구와 관련된 오랜 강의의 경험에서 비롯된바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생각된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의 사상적인 배경들을 섭렵하는데 있어서

매우 깊이 있고 구체적인 길잡이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며 또한 현재의 지구촌이 겪고 있는 다양한 동서

간 또는 민족 간의 갈등이나 경제적인 부침의 원인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하는데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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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의 소산은 고스란히 현재의 우리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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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대 만인의 투쟁으로부터의 사회계약’을 주장한 홉즈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의 사상적인 배경이 되어 프랑스의 구제도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

공산당 선언’과 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러시아 제국의 공산화의 이론적인 배경이 되어서 약 70여년에

이르는 소련공산주의 실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도륙되었으며 중국의 공산화과정과 그 이후의

문화혁명으로 또 너무나 많은 인류가 희생되었다. 친구의 논문을 읽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재빠르게 자신의

논문을 기고하여서 진화론의 선구자가 된 다윈은 본래부터 허약하고 체세에 능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600만의 유태인을 희생시킨 히틀러의 광란이 실행될 수 있었던 사상적인 배경을 마키아벨리, 다윈, 니체,

생거, 등이 제공하였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산물은 현재까지도 한국을

남북분단의 상황으로 몰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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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의 유리판 아래에는 어느 신문에서인가 오려둔 “…결국 철학이 가진 최대의 약점은 실천성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짤막한 글귀가 있다. 자기의 자식들은 다섯 명이나 고아원에 보내면서도 ‘교육론’

이나 ‘참회록’을 쓴 루소나 한 번도 노동을 한 적이 없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노동자를

위한다는 궤변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부르조아 타도는 다름 아닌 숙주의 영양을

탈취하는 기생충의 탐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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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들이 현재의 교육과정에서 겪게 되는 서구적인 지식의 체계는 그 안에 안주하고 있는 한에는 결코

느끼지 못하나 만일 우연한 기회에 전혀 다른 체계로 존재하는 동양적인 지혜의 숲속을 거닐다 보면 서구의

편협한 세계관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무료함을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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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을 쓴 데까르트는 세계를 물질과 마음으로 이분하여 데까르트-뉴턴적인 세계관의 바탕을

만들었으며 서구의 고전물리학의 체계를 구축하여 현대의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회의론을 비판하고 있으나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회의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양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것은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발상이며 현대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물질과 마음의 분리가 양자중력과 관련된

새로운 과학의 발전에 너무나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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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의과대학에서 정신과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어색함과 불편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근친상간과 인육을 먹는 관습,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일렉트라 콤플렉스는

사실에 대한 프로이드적인 왜곡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이론들이나 주장들이

현재에도 별다른 비판 없이 학계에서 상당히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의 제자였으나 결국 학문적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별한 칼 구스타프 융의 ‘티벳 사자의 서’의 해설서에서 프로이트에 대하여 기술한

대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내 견해를 대신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그 본질에 있어서 ‘티벳 사자의 서’

의 가장 낮은 단계인 시드파 바르도의 경험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다시 말해 성적인 환상들과, 불안이나

그 밖의 감정적인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모순된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프로이트는

형이상학에 대해 두려움을 갖?? 않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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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와 킨제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사실 이들의 주장이 얼마간 일반인들의 성적인

문제나 억압을 완화시키는데 일조를 한 부분이 있다는 것에도 동의를 하지만 이들의 주장으로 인하여 서구에서

시작된 성에 대한 개방적인 사고와 행태는 현재의 우리사회에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각종 성범죄와 성의 문란,

성의 상업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성적인 일탈과 미혼모 문제 등의 다양한 해악을 양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에 대하여 고찰해보면 지금까지 50여년을 살아오면서 여성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의 어머니 역할의 변천을 살펴보면 현대의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나름대로의 전문인

으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나 현실적인 육아나 자녀의 교육 집안의 가사 등에 있어서

여성의 부담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의과대학의 여교수들의 생활을

지켜보면 오히려 그들의 지적인 능력이나 노동력이 너무나 과도하게 착취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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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히틀러와 스탈린에 관한 기록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히틀러는 소년시절에 엄격한 부친으로부터 심하게

구타를 당해서 사흘간 초주검이 된 적이 있고 스탈린도 술주정뱅이인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으며

후에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그 학대가 이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친딸을 20년 이상 지하에 가두고

성폭행을 한 것이나 마이클 잭슨이 아버지의 구타로 성불구가 되고 어린 형제가 온몸이 발가벗긴 채로 기름을

부은 상태로 쇠사슬로 채찍질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인간의 잔혹함에 치를 떨게 된다. 이러한 야만적인

행태의 이면에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속되는 생명에 대한 존귀함과 영혼의 진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애의 어두운 면를 보면서 밝고 맑은 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정의

안락과 가족에 대한 사랑 나아가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소중함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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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09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윤 미솔 선생님의 ‘두번째 초대’를 받고

윤 미솔 선생님의 ‘두번째 초대’를 받고

지난 금요일 저녁 무렵 산책로에 들어서는 중에 한 노스님께서 짐 옮기는 것을 도와드리다가 엉

겁결에 달마도(達磨圖)를 한 점 사게 되었다. 1층 거실에 걸어 두고 보다가 서제(序題) 중 ‘일도출

생사 심외무법’(一道出生死 心外無法: 한길이 생사를 떠나 있으니 마음밖에는 한 경계(인식의 대

상)도 없다.)이라는 두 구절이 잔잔한 여운으로 가슴에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실험 때문에 새벽 일찍 연구실로 올라오면 언제나처럼 병동에서는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불이 켜진 병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암환자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라 대부분의 병실에서

는 말기환자들이 고통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아프다. 몇몇

상태가 나은 환자들은 바다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밤중에 운동장에서 환자복 차림으로 산책을 하

거나 운동을 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건강하실 때 미리 좀 챙기시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

나 환자의 육체가 겪고 있는 통증과 장애로 인한 어려움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죽으면 모든 것

이 끝난다고 하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되는가?’하는 의문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공포와 불안으

로 더 고통스러워한다는 현실이다.

윤 미솔 선생님의 ‘두번째 초대’의 내용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들 자신

이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것으로 요약이 될 것 같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꼭 말기암환자들 뿐

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고는 사소한 시련이나 갈등도 극복하

지 못하고 좌절한 채 도피수단으로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며 ‘한번 뿐이라는

삶’이라는 생각은 세상을 더욱 각박하고 비정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연구를 포함하여 다양한 단체와 수련회에서 육

신의 사망 이후에도 또 다른 형태의 삶은 계속된다고 하는 발표와 저작물들이 증가하고 있어서

많은 용기와 위로를 받고 있다. 비록 일천한 지식이지만 현대물리학에서도 양자중력(quantum gra

vity)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마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으며 궁극에 가서는 에너지와 시공간과 마

음이 plank scale(10-33 cm)에서 서로 얽혀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규명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진면목(眞面目) 또는 자성(自性) 또는 우리의 참모습에 접근하는데 있

어서 서구의 수리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은 아직까지는 매우 서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

록 칼 융이 1927년 티벳의 바르도 퇴돌(Bardo Thos-grol)이 ‘티벳 사자의 서’라는 제목으로 1927

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영역된 것으로부터 ‘많은 영감과 통찰력을 얻었다’고 고백하고는 있

지만 아직까지 현대과학이나 의학이 마음의 본모습을 충분히 그리고 올바르게 기술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참모습에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유체이탈을 설명하고 있다. 1988년 가을 해

부학실습을 하면서 골똘히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내가 자신의 책을 읽고 있는 머리 위를 내려다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그 상태는 곧 끝났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것이 유체이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는 일주일에 세수하고 등교하는 날이 이틀이 되

지 않을 정도로 과중한 학업과 시험에 시달리고 있었던 때라 그 경험을 그렇게 중요하게 받아들

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책에서 읽었던 임사체험의 경험과 너무도 유사했다. 사실 유체

이탈의 비가역적인 경우가 임종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유체이탈을 체험해보

면 육체를 떠나서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으며 이러한 체험은 세상을 바라

보는 자세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삶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속된다는 느긋함과 평화로움울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체험은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추구해 볼 수 있는데 최근 기공훈련에 의한 선계통신(chann

eling)에 의해 기록된 자료들을 찾아 읽을 수도 있다. 전자의 방법은 스스로 영체를 육신에서 이탈

시켜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반면 후자의 방법은 영체의 이탈이 없이 선계에 대한 통신망을 구축(tu

ning)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료에 대한 지식의 획득만으로는 참다운 본모습을 체득할

수 없고 반드시 일련의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글 중에 ‘수제비 반죽’이라는 독특한 표

현이 나오는데 그 반죽에는 우리 모두와 우주가 들어가 있다.

또 다른 한 가지 방편으로서 명상이나 화두참선을 들 수 있는데 실제로 어떤 공안을 제대로 체득

하면 단박에 자신의 본모습을 보게 되고 이미 모든 생명체가 있는 그대로 깨달아서 자유로운 상

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더 이상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시공간과 오감의 제약을 넘어선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 체험은 너무도 강렬하고 또렸해서 비록 육신을 잃는

다고 해도 결코 두려움이나 공포에 빠지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육신이 단지 하나의 의복이나

자동차, 건물과 같으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나 운전자,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시공의 제약에

서 자유롭고 모든 파괴와 멸망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시(禪詩)에서는 말한다.

‘월색천담 수무흔 죽영소계 진부동’(月色穿潭 水無痕 竹影消階 塵不動: 달빛은 못을 뚫었으나 물

에는 흔적이 없고, 대나무 그림자 뜰을 쓸고 가나 티끌은 움직이질 않네.)

그러할 때 “선생님이 앉은 자리가 어디입니까? “(Where are you sitting?: WAYS?)

 

9/20/‘09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딩기 요트(dinghy yacht) 제작 취재 후 보내 주신 자료들

딩기 요트(dinghy yacht) 제작 취재 후 보내 주신 자료들
딩기 요트(dinghy yacht) 제작 취재 후 보내 주신 자료들   2009/09/13 17:14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s.chosun.com/dhleemd/
조선일보 동영상 검색 파일명: 제3기 딩기요트제작교실

http://keywui.chosun.com/contents/105/105/view.keywui?mvSeqnum=128715

딩기 요트(dinghy yacht) 제작 취재 후 보내 주신 자료들

부산시동구 수정동 1-10 부산일보사 해양문화연구소에서 강승철 선생님께서 월간 SEA& 2009년 9월호와 함께 보내 주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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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http://www.sean.ne.kr/?doc=news/read.htm&ns_id=837

MT취재/ 딩기요트 자가 제작 교실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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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요트’ 꿈★을 타고 바다를 누빈다

“직접 내손으로 그것도 항해를 할 수 있는 배를 만들어보니 재미있네요.” “내가 만든 요트를 직접 몰고 대한해협을 건너고 싶습니다.” “중소조선연구원에서 수료자들을 위해서 도면을 제공한다고 하니 집에서 한번 건조에 도전을 해볼 계획입니다.”

여름휴가를 이용, 배를 만드는 보통 사람들이 있다. 부산 녹산공단에 위치한 중소조선연구원(원장 이화석) 해양레저장비개발센터가 지난달 10일부터 15일까지 마련한 ‘제7기 딩기요트 자가 제작교실’에는 대학생들로부터 중장노년층까지 30명의 참가자들이 조별로 나뉘어 8월 무더위 속에서 배를 짓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중소조선연구원이 해양레저·조선 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전환과 해양레저 홍보를 위해 개최한 자가 제작교실은 이번으로 벌써 7회째이다. 그동안 수강생들로부터 지적되어 왔던 보트완성에 대한 요청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올해에는 7시간 5일 과정으로 진행, 내손으로 직접 옵티미스트 급 딩기요트를 만들었다. 8월 15일에는 서낙동강 카누 조정경기장에서 의미 있는 진수식도 가졌다.

선착순으로 지원한 30명의 남녀노소 배짓는 초보 조선공들은 4개조로 나뉘어서 함께 어울려 요트를 만드느라 5일 동안 무더위도 잊었다. 연구원 측은 옵티미스트 급 딩기요트를 제작 할 수 있는 120만원 상당의 제작용 키트와 도면 그리고 각종 공구와 장비를 조별로 나누어준 뒤 조립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깎고 다듬고 접착제로 붙이고 잘라내고 드릴로 구멍을 뚫고 도료를 칠하면서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순식간에 5일이 다 지나고 배한척이 눈앞에 나타났다”며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참석자들은 다들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디자인 계통에서 일한다는 회사원 이지연(여 ∙ 27세)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이번 여름의 휴가를 몽땅 여기에 쏟아 넣었다”고 말한다. 방진복에 보호안경을 쓴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먼지를 뒤집어 써가면서 작업을 하던 그녀는 “직접 연장을 들고 만들어보니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 면서 무더위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연구원에서 수료자들을 위해서 도면을 제공한다고 하니 앞으로는 집에서 한번 요트 건조에 도전 해볼 생각”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힌다. 요트제작을 지도하는 중소조선연구원의 이병성선임연구원은 “여성이어서 그런지 훨씬 꼼꼼하게 작업을 하는 편”이라고 점수를 준다.

이씨는 “타는 것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라면서 앞으로 요트를 직접 몰고 항해를 해보는 꿈을 펼쳐 보인다. 연구원으로서는 ‘조선 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전환과 해양레저 홍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요트제작으로 한 번에 잡은 셈이다.

조별로 하는 작업이 처음이지만 협동으로 배를 짓다보니 배우는 것이 많다. 난생 처음 그라인더를 손에 쥐고 먼지를 풀풀 날리면서 환풍기를 돌리는 작업 현장이 낯설기도 하였지만 협동으로 하루가 다르게 배의 형태가 만들어져가고 마침내 4일째 되는 날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세일을 달 수 있는 모양이 나오자 손놀림이 훨씬 빨라지고 더욱 작업의 태도도 진지해졌다.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 “서로 눈빛만 보아도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된 게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참석자들은 말한다.

현장에서 만난 이대희씨 (49세)는 돋보이는 작업 태도로 관심을 끌었다. 반바지 차림의 그는 참석자들 가운데 제일 열심히 작업장을 돌아다니고 연장을 다루는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척척 연장을 다루고 몸을 아끼지 않고 작업을 하는 그는 ‘현직 의대교수’. 의대교수치고는 공구를 다루거나 작업장에 친숙한 그런 모습이 잘 연결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3만톤급 배를 타던 전직 외항선 기관사. 87년 늦깎이로 의대에 입학, 석박사를 마치고 모교에 남아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변신했다고. “제가 3만톤 배의 기관을 만지던 사람 아닙니까. 이런 도구들과 작업장은 몸에 아주 익숙하지요”

그는 “송도에 살면서 날마다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대마도에 직접 내가 만든 배를 타고 가보아야 하겠다는 꿈을 꾸다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제작교실에 참석했다”고 밝힌다. 그도 역시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어서 신난단다. “이정도의 옵티미스트 급 요트로 시속 5노트 정도로 가면 아마 7시간 내외에 대마도에 도착할 겁니다. 항해 일정 정도는 머리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전의 직업이 이제는 취미생활로 바뀐 셈이지요. 취밉니다. 취미. 허허허” 라면서 씩씩한 웃음을 짓는다.

과정을 기획하고 총괄하는 중소조선연구원의 김남훈팀장은 “요트자가제작의 열기 확산을 위해서 수도권과 호남권에도 제작교실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서 일반인들의 평일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자작교실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힌다. 중소조선연구원 051)974-5503 강승철기자ds5bsn@busan.com

압축 제작 사진 설명

1일차 : 선저판 조립

2일차 : 선저판, 선측판, 트랜섬 스티치 작억

3일차 : 센터보드 및 리더 가공

4일차 : 선체 내외부 샌딩

5일차 : 선체와 세일링 리그 조립

토요일 : 시운전 사진

해양인의 메신저 SEA &

이 름 : 강승철

연락처 : 019-508-1544. 051-461-4397

부산시동구 수정동 1-10 부산일보사 해양문화연구소

E-mail : ds5bsn@busanilbo.com

부산일보에서 8월 11일 보도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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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레저 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10일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내 중소조선연구원 해양레저장비개발센터에서 열린 ‘딩기요트 자가 제작교실’에서 참가자들이 목재를 이용해 요트를 제작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중앙일보에서 8월 11일 보도한 내용입니다.

중앙일보090811

[보도자료 8월 11일] 요트 자가제작교실을 개강했다

중소조선연구원은 10일 부산 녹산동 해양레저장비 개발센터에서 요트 자가제작교실을 개강했다.

5개 팀 30명의 참가자가 딩기요트(옵티미스트)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15일 카누카약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다.

[중앙일보 8월 11일]

부산=송봉근 기자

티브로드 낙동방송의 이현동 기자께서 직접 현장에 대한 취재와 인터뷰 후에 8월 11일 방송된 내용입니다.

아나운서멘트>

중소조선연구원이 제7기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을 개최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중화 되어있는 딩기요트는 일반인들도 쉽게 제작이 가능해 신청접수 이틀 만에 마감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현동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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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포트 ▶

C/G-중소조선연구원, ‘제7기 딩기요트 자가제작 교실’ 개최

2인승 이하의 소형 목재 패들보트인 딩기요트 제작 교실입니다.

30여명의 수강생들은 한 여름의 무더위를 잊은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현재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인 이대희 씨는 이번 딩기요트 자가제작 교실에서 만든 배로 대마도를 다녀올 계획입니다.

◆INT-이대희 교수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C/G-제작 쉬워 다양한 연령층 참여

하루 7시간씩 5일간 진행되는 이프로그램은 중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손 쉽게 제작이 가능해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제7기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은 지난 3일 신청접수를 시작해 이틀만에 마감되는 등 해마다 그 인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INT-김충곤 강사 /한국목조선박 대표

중소조선연구원은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카누와 카약 딩기요트 자가제작 교실을 운영해 모두 15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습니다.

◆INT-심상목 센터장 /중소조선연구원 해양레저장비개발세터

C/G-자격증 없이 이용 가능

특별한 자격증 없이 일반인들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딩기요트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중화 된지 오랩니다.

ST-이현동 취재기자

중소조선연구원은 오는 15일 서낙동강 조정카누경기장에서 그동안 일반인들이 직접 제작한 카누와 카약으로 레이싱을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티브로드 채널부산 이현동입니다.

출처: http://www.tbroad.com/tbroad/so/channel/pop_new_2.php?search=title&key=요트&scd=7100&gigan=&s_date=&e_date=&page=1&idx=104528

조선일보 동영상 검색 파일명: 제3기 딩기요트제작교실

http://keywui.chosun.com/contents/105/105/view.keywui?mvSeqnum=128715

제7기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 성황리 개최 수료식 가져
‘직접 만든 요트’ 올여름 나는 요트타고 바다로 간다!
중소조선연구원(원장 이화석)은 지난 8월10일부터 8월 14일까지(하루 7시간/5일 과정)를 이용하여 해양레저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전환과 해양레저장비 홍보를 위해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을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자가제작교실은 카누 및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을 통틀어 벌써 7번째이며 이미 수강한 교육자도 200여명이 된다.
특히 이번과정은 모집공고 후 이틀만에 30명 정원이 조기에 마감되어 최근 해양레저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호응이 매우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개최한 이화석 원장은 “우리나라 해양레저산업은 진입기로 아직은 산업에 대한 대국민 인식이 부족한 가운데 산업활성화를 위해서는 관련기업체 육성, 청소년 교육, 체험행사, 해양문화 보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이 필요함에 따라 이에 우리연구원은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 인력양성 프로그램 운영, 기업을 위한 기술지원사업, 창업보육사업 운영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운영 중에 있다.”며 “향후 자가제작교실의 열기를 확산을 위해 수도권에도 자가제작교실을 개최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해양레저산업의 활성화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그리고 교육에 참가한 이대희씨(의대교수 : 49세)는 적극적인 참여모습에 관심을 끌었다. 그는 “우리집에서 보면 날씨가 좋은날에는 일본 대마도가 보입니다. 내 손으로 만든 요트를 타고 꼭 한번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항해하고 싶은 희망이 있어 이번 자가제작교실에 참여하였다.”면서 여름휴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면서 다음에는 요트를 가져갈 수 있는 과정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날 8월 15일에 참가자들은 서낙동강 카누/조정 경기장에서 개최된 진수식에 참여하여 직접 만든 딩기요트를 타면서 만드는 즐거움과 타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가 있었다.
■ 문의처: 중소조선연구원 TEL: 051-974-5503

지난 여름의 딩기 요트(dinghy yacht)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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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의 딩기 요트(dinghy yacht) 제작기

 

침실을 찾아드는 새소리에 눈을 뜨면 언제나 송도 바다가 시야 가득 들어옵니다.

요사이는 시끄러운 해변보다는 뒷산의 호젓하고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즐겨 찾는 편이지만

이제 해수욕장이 문을 닫으면 다시 요트를 끌고 바다로 내려가 볼 생각입니다.

지난주에는 한 주 내내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부산 근교의 녹산에 있는 중소조선연구원(RIMS)에 출근을 해서 하루 6시간씩 조선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월요일(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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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해양레저장비개발센터에서 연구원 및 센터에 대하여 소개를 받고 optimist 전체 작업공정에 대하여 김충곤 선생님(한국목조선박)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오후에는 이미 재단된 자작나무 합판 재질의 선저판 선미판 측판 선수판에 일정한 간격으로 드릴을 사용하여 구멍을 뚫고 철사로 얽어서 선저판 조립을 한 후 epoxy 수지를 사용하여 glue 작업을 하였습니다. 작업 도중에 중앙일보와 부산일보의 기자분들의 취재가 있었으며 티브로드 낙동방송에서는 직접 현장에 대한 취재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화요일(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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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저판 조립에 사용된 철사를 제거하고 선저판 내부에 부재를 사용하여 보강작업을 하였습니다. 선수와 선미판의 내측에 트랜섬(transom)을 설치하고 선측판의 좌우현에도 외측으로 보강재를 수지로 접착시킨 후 grip과 vise로 고정하였습니다.

수요일(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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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저판 내부에 부력물 고정용 패드를 도면에 따라 설치하고 중앙에 center board box를 설치하기 위하여 jigsaw를 사용하여 선저의 중앙부를 절개하고 center board box를 수지로 고정하였습니다. 선측판의 좌우현에도 내측으로 보강재를 수지로 접착시킨 후 grip과 vise로 고정하였습니다.

오전에 해양월간지 ‘SEA&’의 강승철 편집장님과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목요일(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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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선미의 네 모서리에 홈을 파고 보강부재를 부착하고 mast hole을 뚫었습니다.

선저에 main sheet securing pad를 설치하고 선체에 대한 sanding 작업을 하였습니다.

금요일(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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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에 대한 페인트 도장과 mast와 boom 등의 sailing rigs를 제작하고 rudder와 daggerboard를 가공하였습니다.

오후에 수료식을 하고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토요일(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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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낙동강 요트 경기장에서 제작한 딩기요트 진수식을 거행하고 직접 조선을 해서 운항성능을 검사해 보았습니다. 아울러 카누와 카약 경기도 개최되었습니다.

요트 제작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중소조선연구원 및 센터에 계신 모든 분들과 한국목조선박의 김충곤, 김득원 두분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7기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 개최 세부내용

(올 여름방학에는 혼자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워볼까?)
– 조선 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전환과 해양레저 홍보를 위해 소형목제보트 자가제작교실을 개최

고유가시대에 여름휴가 계획을 앞두고 이런저런 휴가비용에 엄두도 못 내고 막상 휴가를 떠났지만 교통체증과 바가지 요금에 짜증만 날 수도 있는데…
여름방학기간 1주일이면 가족과 함께 배를 만들 수 있는 자가제작교실이 있다. 그 곳은 부산 녹산공단에 위치한 중소조선연구원 해양레저장비개발센터이다.중소조선연구원(원장 이화석)은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기간을 이용하여 해양레저·조선 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전환과 해양레저 홍보를 위해 소형목제보트 자가제작교실을 개최하였다. 자가제작교실은 카누 및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을 통틀어 벌써 7번째이다.그동안 수강생들로부터 지적되어 왔던 보트완성에 대한 바램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오는 8월 10일 ~ 14일 동안 하루 7시간/5일 과정으로 교육기간 동안 내손으로 직접 딩기보트를 만들어 가덕도 앞바다에서 진수식도 한다. 직접 배를 만들고 싶은 분은 8월 7일까지 선착순 30명 모집한다.

  • 제7기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 개최 세부내용
    ○ 대 회 명 : 제7기 딩기요트 자가제작교실
    ○ 주 최 : 중소조선연구원 해양레저장비개발센터
    ○ 일 자 : 2009. 8. 10(월) ~ 8. 11(금), 5일간
    ○ 장 소 : 중소조선연구원 생산지원동
    ○ 교육대상 : 딩기보트 제작에 관심있는 일반인(선착순)
    ○ 참 가 비 : 80,000원(교재 및 점심식대 포함)
    ○ 신청기간 : 2009년 7월 27일 ~ 8월 7일
    ○ 참석문의: 이병성 선임연구원 Tel: 051-974-5587 bslee@rims.re.kr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rims.re.kr)를 참고바랍니다.■ 문의처: 중소조선연구원: 현종훈 팀장 ☎ : 051)974-5503 /010-5427-0756

‘세계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을 읽고

세계금융을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을 읽고

 

우선 기쿠가와 세이지 선생님과 번역해 주신 김정환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79년 3월 금문교를 지나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근교의 Venecia에 상륙을 했었다. 그로부터 약 5

년 정도 미국의 동부와 서부의 많은 항구도시들을 외항선 선원으로 드나들었었다. 바로 작가가 관광객으로 방문했

을 때 느꼈던 놀라운 미국을 나도 체험하고 있었다. 1984년 12월 22일 성탄절을 앞두고 루이지애나의 Lake Charles

에서 약 10개월간 근무했던 M/V Pacific Hunter호에서 하선을 해서 성탄절 전야에 귀국을 했다. 2년 정도 다시 공부

를 시작해서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오랫동안 미국 소식은 단지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것이 전부였고 학교생활

에 파묻혀서 거의 바깥 세계는 잊고 살았었다.

 

2001년 8월 3일부터 8월 18일까지 본교가 자매 결연을 맺게 되어서, 교수대표로 학생들과 함께 아비시나(Avicenna)

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부하라(Bukhara) 의과대학을 방문하여서 약 700여권의 의학

서적을 전해주고 현지 팀과 함께 타슈켄트(Tashkent) 근교의 농촌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너무도 한국의 시골과 유

사한 경관에 매우 놀란 적이 있었다. 부하라(Bukhara)는 승원(僧院)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로서 구소련에서 유일하

게 이슬람신학교인 ‘미르 아라프 메드레세’가 남아있던 유서깊은 이슬람 도시였으나 모든 분들은 친절하고 순박했

다. 또한 한국의 드라마가 방영되어서 나도 알지 못하는 ‘현이와 덕이’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미국의 9.11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생생하게 접하게 되었고 그간에 여러 방송국에서 제작된 다

큐멘터리도 보아왔다. 1997년 겨울 한국에 IMF가 왔을 때도 서울의 한 호텔에 칩거하면서 막후에서 진두지휘를 하

고 청바지 차림으로 사라진 미국의 재무부 소속 직원을 제외하고는 다소 석연치않다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뚜렸이 잡

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2007년 11월 미국의 Subprime Mortgage 사태가 발생하고 그 내막이 밝혀지면서 그간의 Wa

ll Street를 비롯한 세계금융시장이 얼마나 부패하고  모순투성이로 전락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미국의 대통 령 암살은 링컨과 케네디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고 링컨은 노예해방 때문에 케네디는 흑인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여년의 세계 역사의 중요한 대목마다 등장한 이들 어둠의 세력들에 대한 저자의 역작을 읽게 되면서
그동안 풀리지 않은 많은 사회현상과 의문들이 마치 수없이 흩어져 있는 염주들을 하나의 실에 꿰차듯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글을 읽는 중간 중간 너무도 황당하고 허구라는 느낌이 들어서 ‘youtube 동영상 링크’를 실제로 확인해보았다. 그

중에 ’Aaron Russo: Rockfeller knew about 9/11 well in advance’는 삭제되고 없었다. 그 외의 ‘Aaron Russo – Ar

chitecture Of A Prison Planet (Pt. 4)’, ‘Bush can’t answer an important question, George bush doesn’t kno

w what to say’, ‘Lt. Col. Bo Gritz claims CIA drug dealing, July 1988’의 자료들은 아직 온라인상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나는 상기의 어둠의 세력들은 일개 대통령이나 미국의 정부보다 더 상위에서 무소불

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신들의 탐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무자비한 획책을 일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징후가 내 주변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돌이켜 보면 이미 197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

다. 그 당시 우리나라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하루에 일인당 물을 30리터 이상 소비해야 문화인으로 분류된다는 내

용이 있었다. 그 당시 한국의 시골에는 집집마다 ‘물두멍’이라고 해서 약 20-30 리터 되는 단지를 부엌에 두고 어

머니들이 매일 새벽마다 물동이로 우물을 퍼서 머리에 이고 날라서 8명의 식구가 사용하거나 조금 사정이 나은 집

은 우물을 파서 사용하였다. 어쨌든 그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러한 범주에 따르면 문화인이 아니었다. 그 당

시 영어 독해 내용에 미국은 자동차가 일반화 되어서 약 100 마일 떨어진 곳까지는 이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야말

로 ‘소비가 미덕’이라는 사악한 구호였다. 한때 ‘어느 샐러리 맨의 죽음’이라는 연극이 상연되어 화제가 되었

을 때도 우리들은 그 제도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경하고 있었고 지금도 우리들은 그 주

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92년 의학과 4학년 자습실에 모 카드회사에서 찾아와서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를 발급주기 시작해서

그 후로는 시내곳곳에서 신용카드가 사은품까지 안겨 주면서 발급해주고 소비를 조장한 적이 있다. 지금도 주변에

는 욕망과 빚에 얽어 매여 노예로 전락한 군상들이 많다. 불과 30년 전 ‘검소하고 근면하게 그리고 저축하자.’던

구호는 이제는 한국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문구가 되었다.
부유하고 여유있게 살고 싶은 욕구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켜서 그리고 타인을 타락과 몰락과
빈곤과 죽음으로까지 내몰면서 나의 허영과 탐욕과 환상을 추구하겠다는 철학이나 종교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이제 세계는 물 부족을 이야기하고 환경오염과 PeakOil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도 한때는 인류의 고향이었으나
그 후로 오랫동안 착취의 대상이었던 아프리카와 일부의 아시아 그리고 세계 도처의 소수민족은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굳이 그들에게 구호품이나 원조를 하지 않아도 좋다.
한 번 더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단지 하루가 지났다고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단지 내가 좋아서 차를 사

서 달린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누군가는 보다 생산적이고 보다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기회를 위하여 양보하고 조

금은 더 걷거나 자중하면 안될까?

 

나는 바람직한 삶이란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고 쉽게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

다.

그렇게 친절하고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들 그들의 나라가 범죄와 마약과 빚에 찌들어 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마치 한

때 사랑했지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돌아서서 잊고 지내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내 앞에 나타난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을 때처럼 솟아나는 연민을 주체할 수 없다. 나는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다듬어

서 우리 모두는 오감의 세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영겁의 존재들이며 그 존재들은 서로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

고 있는 하나의 큰 존재들이며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으로 미국에 살면서 수많은 고뇌와 번민과 갈등 속에서 이글을 쓰기를 주저하시지 않은 저자의 용기와 또한 역자

분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9/5/‘09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서평**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2’을 읽고

***서평***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2’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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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드리면 저는 1960년 경북 문경(점촌)에 태어나 고교는 대구에서 그리고 목포에

서 해양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84년까지 외항선 기관사로 근무한 후 1985년은 1년간 시골집에서 공부를 하

고 1986년 1년은 서울 대성학원에 다닌 후 1987년 부산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1993년 졸업 후 의사가 되

고 동대학원에서 의학석사(약리학 전공) 의학박사(면역약리학 전공)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모교의 약리학교실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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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에는 학문(art)을 배워야 하고 청년기에는 욕망(kama)을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하며 중년을 지나면 비로소 법

(darhma)을 체득하여야한다.” Brahman을 가르치는 교재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어제 약 10시간에 걸쳐서 이 책을 읽고 여느 때처럼 저녁 산책을 하면서 리뷰를 구상하다가 떠올린 구절입니다. 우

리들의 삶을 풍요하고 유익하게 이끌어 주시고 계시는 많게는 저보다 약 25년 선배님들부터 적게는 약 25년 젊은,

서른 분들께서 펼쳐 보이신 진솔한 삶의 모습에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낍니다. 또한 TV 등의 대중매체에서 보는

현실과는 달리 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훨씬 역동적이고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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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시골 출신이라 60년대 후반 그리고 70년대 초반에는 여러 분들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교과서 외에는 책

이 참 귀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용돈으로 만화책을 어쩌다 사면 어머니께서는 모두 엿장수에게 주셨습니다. 대구

로 고교에 진학한 후에는 주말이면 그 당시 대구 시청 앞과 남문시장에 100여 곳은 족히 되었던 헌책방을 참 많이

도 뒤지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논어’ ‘어사박문수’ ‘미운 오리 새끼’ ‘젊은 그

들’ ‘돈키호테’였습니다. 그야말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우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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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난을 해결하고 바깥세상을 둘러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외항선 기관사가

되었습니다. 승선 근무를 하던 중에 Raymond A. Moody 박사의 ’Life after life’를 읽게 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

는 것은 ‘사후에도 삶은 계속되며 다음의 생까지 타인에게 행한 선(善)과 익히고 깨달은 지식은 지니고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부의 축적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진화’가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

고 다시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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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3학년 때 동료의 서가에서 알게 된 책이 Viktor E. Frankl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en’s search for mea

ning)’였습니다. 의학과 1학년 때 선친께서 별세하시고 막내 동생은 한의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저도 학생이었지만

막내의 생활비와 등록금을 해결해 주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내용

이 너무 가슴에 와 닿고 위로가 되어서 책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들을 일일이 카드에 필사를 해서 식사를 하면

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그 무엇도 이전의 가족들과 가졌던 추억과 기억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구절

은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의과대학 졸업을 앞두고 학생들의 사은회에 가서 몇 마디 축사를 하는 경우에는

꼭 “앞으로의 수련생활이 어렵겠지만 자신의 명예와 품위를 지키라.”고 당부를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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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께서 지적하셨듯이 단 한권의 책이 인생의 전체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그

마한 변화가 축적되어서 삶은 더욱 충실하고 풍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서 저자들의 영혼으로부터 우리들

에게 쏟아지는 가장 큰 축복은 바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이상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받게 되는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글을 써 주신 많은 분들께서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제가 6년 전 한국해양대학교에

서 동남아시아를 순방하는 원양항해 실습선 ‘M/V 한나라’ 호에 선의(Ship’s Doctor)로 한 달 정도 초빙을 받아서

간 적이 있었는데 생도들에게 훈시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해준 연설 중에 “결코 쉽게 이루지 못할 만큼 큰 꿈

을 품도록 하십시요. 그리고 그것을 빨리 실현해야 하겠다고 조바심내지 마십시오. 그러나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 결코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계속하는 한 언젠가는 여러분의 꿈을 가득 실은 배

가 여러분들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라고 치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저도 명을 아는 나이(知命)가 되었습니다. 주변의 상황을 보면 공병호 선생님과 박현정 선생님의 자신의 계발

에 충실해서 ‘홀로서기’를 준비하라는 가르침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또한 문용린 교수님의 ‘부유한 노

예’에 대한 견해는 습관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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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MS-DOS를 사용하는 컴퓨터로 진단방사선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dot printer로 인쇄하여 제출하기 시작해서 19

94년 Macintosh LC 475 기종으로 석사논문을 작성하고 1996년 의과대학에 HDD 1 giga bytes의 컴퓨터와 인터넷이 설

치된 이후로 3권의 노트북과 6대의 데스크탑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고 분자생물학의 발달과 더불어 생명공학과 의

학의 발전으로 방대한 량의 정보가 매일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삶에서 본원적인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와 지식은 일반인들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영섭 선생님의 의

식의 문이 열리는 체험과 C. G. 융의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Man and his symbol)’이 시사하는 바는, 조성기 선생님

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en’s search for meaning)’에서 “인간 존재의 무한한 뜻은 고뇌와 죽음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아우슈비츠라는 혹독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禪)적인 사유가 다다를 수 있는 깨달음의 극치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병호 선생님께서 “자신을 제어하는 일을 준(準)종교적인 차원까지 끌어 올리게 되면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된

다.”고 하는 지적은 매우 공감이 갑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영겁의 존재들이며 이미 자유롭고 구원되어 있으며 있는 그대로 모두가 깨달은 분들이기 때문입니

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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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9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이 대 희 드림

봄비 오는 뜰에서

봄비 오는 뜰에서   2009/02/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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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해무가 자욱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침이면

North Carolina Wilmington 부근 해역의 악천후 속에서

배가 육지에 좌초될 것 같다는 다급한 3항사의 전화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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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자전 때문인지 Pacific Northwest 해안의 파도는 특히

치명적이다.

심야에 도선사가 조그만 pilot boat로 옮겨 타는 것을 보면 곡예가 따로 없다.

뱃전에 기대어 항해를 하다 보면

삶에서 1m 떨어진 곳에

죽음이 항상 따라 다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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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그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호흡이다.

그러므로 몸에 갇혀 있고 호흡에 자유롭지 못한 한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물을 알지 못한다.

물속으로 돌을 던지면 그 돌은 결국 땅 위에 있게 된다.

우리의 대부분의 고뇌는 ‘나’라는 생각 때문에 나타난다.

 

 

 

연잎이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이 없으면 연꽃이 필 수 없다.

그러므로 흙탕물과 연은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이 모든 우주가 물리량의 합이 0(空)인 무한소에서 출발했다면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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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새장과 같다.

새장 밖에서는 하나를 차지하고 싶어 하지만

새장 안에 좀 살다가 보면 새장 밖으로 가보고 싶어 한다.

우리들은 몸이라는 옷을 벗을 때 보다 더 큰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우연히 참모습을 보게 되면 그대로 본래와 하나가 되며

더 이상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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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닮은 아버지

잠자기 전에 어둠 속에 다가와서

아들 녀석이 내 두 볼을 잡고는

“아이구, 귀여워라!” 하고 속삭인다.

재산은 놓고 가고 건강도 결국은 찾게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선업과 깨달음의 체득이다.

한마음 같은 하나의 물방울인 이 세계에서

잠시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평화와 고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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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오관은 쉬되 의식이 쉬지 못하는 것이며

숙면은 호불호에 민감한 7식까지 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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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09  酉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