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빛바랜 항해노트를 들춰서 그 날이 1984년 5월 22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Maritime Overseas Corproation 소속의 product oil carrier인 M/T Pacific Hunter에서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자정 무렵 접안을 마치고 침실에 들었다가 일찍 잠이 깨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 속에서 Puerto Rico 항의 여명을 바라보며 아침의 정적을 깨는 팝송의 요란한 흥겨움에 젖어 있었다. 그날 오후 San Juan의 시내를 관광하던 중 해안 요새로 유명한 El Morro 건너편 바다에서 거대한 범선이 출항하고 있었는데 yard 위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manning the yards)을 보고 등현례(登舷禮)의 장면을 카메라로 잡으려다 여분의 film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던 아쉬움은 그 후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난 10월 26일, 지난해 4월부터 대학 후배의 요청으로 운영되고 있던 의학 상담을 하는 칼럼에 접속하다가 ‘공지 사항’에서 ‘지구인 항해 2002 한국/일본’을 보고 범선항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11월 9일 토요일 오후 한국해양대학교의 박 진수(朴 鎭洙) 교수님 연구실에서 예비 소집이 있었고 모두 9명이 부산서 Kobe까지 승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해양대학교의 선석에는 때마침 KAIOMARU(海王丸)도 입항해 있었는데 20년 전 San Juan에서 보았던 그 범선과 매우 유사한 구조였다.
우리가 승선할 배는 STS KAISEI(海星)였는데 약 180 톤이고 L.O.A.(Length Overall) 가 46 m였으며 fore mast에 횡범, main mast에 종범의 범장을 가진 2본 마스트의 Brigantine 형의 기범선으로서 일본 Sail Training 협회 소속으로 모항은 Yokohama였고 1990년 Poland의 Gdansk 조선소에서 건조되어서 1991년에 일본선적을 취득했다.
11월 12일
오전 11시 우리들은 선석에서 일본의 trainee들과 함께 Blue, Red, Green watch의 3군으로 편성되었다. Blue watch의 leader는 KAISEI의 항해사인 Masatoshi Ogasawara(小笠原 正俊) 씨였다. 나는 8번 선실을 배정 받고 우의(wet weather gear)와 안전 장구(safety harness)를 지급 받은 후 여장을 풀고 곧바로 messroom에 모여서 instructor인 Mr. Phil Smith의 사회로 선장 Keiichi Sakane(坂根 慶一) 씨, 항해사 Kokichi Kato(加藤 晃吉) 씨, 항해사 Yama 씨, 기관장 Oda 씨, 조리장 Kouri 씨, 협회 사무실에서 지원 나온 Akane Ito 양, Green watch leader이고 KAISEI의 갑판원인 Sawako Hamanaka(浜中 佐和子) 양, Red watch leader이고 일본의 volunteer인 Sanae Nunokawa(布川 早苗) 씨, 그리고 한국의 volunteer인 문 성호 군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trainee는 모두 당직조별로 호명이 되었는데
Blue watch는 岩井 久美子 씨, 이 대희(李 大喜), Sato Takuya(佐藤 拓也), 정 혜진, Shinichi Yamada(山田 愼一), 정 연유로 7명이었고,
Green watch는 정 균식(鄭 均植) 선생, Kai Yamamoto, 이 선미(李 仙美), Masamitsu Kiriyama, 양 고은으로 6명,
Red watch는 Yokoyama Kenji 씨, 이 주철, Yumie Kawahara(川原 弓枝), 서 채민, 김황곤으로 6명이었다.
그리고 퇴선 명령 신호와 조난 시 집합할 life raft(구명 뗏목)의 위치를 파악한 후 우리는 다시 조별로 모여서 nickname을 정하였는데 아마도 선상 생활에서의 편의와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Blue watch는 leader인 Masatoshi Ogasawara 씨는 Masa, 岩井久美子 씨는 Omani(.어머니), 나는 Lee, 정 혜진은 Pooh, Sato Takuya는 Taku, Yamada Shinichi는 Shin, 정 연유는 C-man으로 정했다.
Green watch는 leader인 Sawako Hamanaka 양은 Sawa, 정 균식 선생은 Viking, Kai Yamamoto는 Kai, 이 선미는 Sunny, Masamitsu Kiriyama는 Kiri, 양 고은은 Mango로 정했다.
Red watch는 leader인 Sanae Nunokawa 씨는 Nae, Yokoyama Kenji 씨는 Yoko, 이 주철은 Zaza, Yumie Kawahara는 Yumie, 서 채민은 Seo-chae, 김황곤은 Ricky로 정했다.
그리고 instructor인 Mr. Phil Smith는 Phil, 선장 Keiichi Sakane 씨는 Kei, 항해사 Kokichi Kato 씨는 Kato, 항해사 Yama 씨는 Yama, 기관장 Oda 씨는 Oda, 조리장 Kouri 씨는 Kouri, Akane Ito 양은 Akane, 문 성호 군은 Gundam으로 정해졌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우의와 안전 장구를 매고 곧바로 First Program에 들어갔는데 rope의 취급요령, 조타술, 횡범(橫帆, square sail)의 회전 그리고 mast를 오르내리는 법 등의 기초 지식에 대해서 Masa와 Phil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실습을 했다. 모든 trainee들은 리더의 지시와 격려에 고무되어 열성적으로 약 30 m 높이의 yard에 올라가서 사각 돛을 설치하거나 다시 접어서 gasket으로 고정하는 법을 배웠고 yard의 각도를 변경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yard brace의 rope들을 당겼다. 또한 rope work에서 round turn and two half hitch와 reef knot, sea coil 그리고 belaying pin에 rope을 정리(make up lines)하거나 또는 flake 하는 법을 배우고 rope을 당길 때 사용되는 구령(calls when pulling on lines)을 익혔다. KAISEI는 실습용 범선이어서 선수의 anchor를 들어올리기 위한 2개의 capstans와 선미의 계류삭(mooring lines)을 감기 위한 1개의 capstan 외에는 모두 사람의 손으로 rope를 직접 당기고 감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므로 오후의 출항 시에는 이들 지식을 바로 사용해야 했다.
14시 20분 국외 반출물에 대한 세관의 확인서를 받고 해양대학의 조촐한 환송식을 뒤로 하고 Blue watch는 선수에서 육상의 선석과 연결된 모든 계류삭을 풀어서 정리했다.
14시 40분 서서히 해양대학교 부두의 환송 인파가 시야에서 멀어져 갔고 우리는 오륙도 앞의 방파제를 빠져나왔다.
15시 15분 Main Sail과 Inner Jib, Main Staysail이 설치되었고 우리는 Bowsprit으로 나아가서 Inner Staysail을 설치했다. 15시 30분에 Lower Topsail과 Upper Topsail이 설치되었다.
16시 15분에 풍상 측에서 반대편에 뱃전으로 바람을 받기 위한 tacking 조작과 풍하 측에서 반대편에 뱃전으로 바람을 받기 위한 wearing 조작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실제 tacking 조작에 대한 실습을 하였다. 이러한 tacking과 wearing이 필요한 이유는 sail이 바람을 선미쪽 정 후방에서 받는 경우 배가 전진 시 sail에 의한 저항과 sail 전방의 와류 때문에 오히려 추진 효율이 떨어지고 대신 바람을 배의 진행에 대해서 45도의 각도를 유지함으로써 sail에 의한 추진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때 본선의 크기에 비해서 draft가 4 m나 되는 것은 mast가 높은 만큼 복원력을 유지해야할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범선이 이처럼 항상 바람 방향에 대해서 zigzag 형태로 범주해야 하므로 풍압에 의해 형성된 힘을 선수 방향의 추진력으로 분산시키기 위해서 선저가 날카롭고 깊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tacking과 wearing 조작은 범선 항해에서 주기적으로 해야 하며 이때 모든 횡범과 종범을 올바른 순서와 정확한 timing에 맞춰서 조절해야 하므로 모든 sail들을 풍하 측으로 돌리기 위해서 고도의 team work과 timing에 대한 판단과 신속하고 일사 분란한 협동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16시 50분에 Lower Topsail과 Upper Topsail을 접어서 gaskit으로 고박 시켰으며 17시에 Inner Staysail과 Inner Jib을 내려서 고박(stowing)시켰다.
17시 25분에 태종대에서 약 500 m 떨어진 묘박지에 port anchor를 내리고 17시 50분부터 묘박 당직(anchor watch)에 들어갔다.
저녁 식사 후에 messroom에서 Phil의 사회로 별 자리의 12궁(signs of the Zodiac)에 따라 모여서 자기에 대해 소개를 하고 질문을 받되 같은 별자리로 모일 때까지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난감해 있었는데 Nae가 머리에 뿔 모양으로 손가락을 펴 보였다. 나는 염소라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갔다. 마침 실내가 더워서 붉은색 등산용 보온 셔츠를 벗어서 탁자 위에 놓아두었는데 Nae가 그것으로 투우 흉내를 냈다. Pooh와 나는 서로 마주 보다가 Masa가 염소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그쪽 테이블로 옮겼다. 염소좌와 다른 일부의 별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우리들은 Kai, 나, Pooh, Viking, Taku, Kiri의 순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질문을 받기로 했다. 먼저 Kai는 낚시와 하모니카 불기를 좋아하고 겨울 스포츠를 즐기며 19세이고 Yokohama에 살며 coffee shop에서 웨이터로 일한다고 소개했다.
나는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외항선에서 기관사로 근무했고 그 후 다시 1987년 의과 대학에 입학해서 의사가 되었고 지금은 부산의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여행을 좋아해서 약 50여 개 국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로 Pooh는 20세로 한국해양대학교에서 무역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장래의 희망은 가능하다면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며 일본어를 6개월 정도 공부했고 28살 된 남자 친구가 있다고 소개했다.
leader인 Masa는 KAISEI에 근무한지 2년 되었고 원유 선에서 항해사로 5년간 근무하고 해상 생활이 무료해서 아프리카 Malawi의 해양대학에서 학생들을 2년간 가르쳤으며 1990년 Kobe상선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했고 현재 38세이며 지난해 결혼했다고 소개했다.
다섯 번째로 Viking은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기관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대학 내에 창업보육센터의 전임연구교수로 있으며 해양대학 실습선에 대한 지원 업무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1994년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까지 해군 장교로 근무했으며 1년간 원유선에서 기관사로 근무하였고 모든 스포츠에 만능이어서 100 m를 11초에 주파하며 대학 내 American football 팀에서 92년 93년 MVP로 뽑힌 적이 있다고 했다.
여섯 번째로 Taku는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판문점까지 가 보았고 독서와 역사물을 좋아하고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했다.
일곱 번째로 Kiri는 24세로서 농업을 전공했으며 양배추 농장에서 part time으로 일하고 있고 등산, 스키, 실뜨기와 종이 접기를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그 후 내일 아침 내가 galley helper를 해야 하므로 22시부터 24시까지 C-man, Shin과 같이 정박 당직을 섰다. C-man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회사에서 카메라맨으로 일하고 지난 6월 2002 한국세계범선대회(Sail Korea 2002)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Shin은 지난 달 다니던 회사에서 사직하였으며 Shikoku의 Kagawa가 고향이고 한국에 방문해서 온실 설비를 사서 농작물을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Shin, Kai, Zaza, 그리고 나는 모두 같은 cabin을 사용하는 roommate였다.
정박당직은 매 시간마다 radar로 가장 가까운 육지와의 거리를 측정하고 해수온도, 기온, 풍향, 풍속, 천후를 일지에 기록하며 poop deck의 steering gear room, auxiliary machine room, chain locker, 그리고 boatswain’s store의 bilge(오수) 량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갑판을 걷다가 부산의 야경을 바라보며 약 20년 만에 다시 보내는 선상의 밤에 대한 감회가 새로웠다. 밤 12시 당직 교대를 하고 샤워를 한 뒤에 침대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