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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진화

 

영혼의 진화   2009/01/28 06:38 추천 2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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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생사를 넘나드는 기능적 실체이다.

그러므로 죽거나 눈멀거나 귀먹은 마음은 없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졸업처럼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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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눈물을 흘릴지라도 수고로움 때문에 고뇌하지 말자.

우리 모두가 걸어가고 있는 길의 끝에는 평화와 안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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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은 마음이라는 스피커 대신 육신이라는 이어폰을 꼽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육신을 떠나면 우리의 인식과 지각은 시공의 제한에서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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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들의 생각은 microtubule을 구성하는 tubulin nucleon의

spin-up과 spin-down이 중첩된 형태로 존재하는, 확률밀도함수의 붕괴에 의하여

전의식의 바다로부터 의식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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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바가 없으면 분별이 없고

들은 바가 없으면 시비가 없다.

그러므로 당나귀가 가기 전에 온 말에는 콧구멍이 없고

뜰에 자목련이 피니 돌부처 얼굴을 붉히는구나.

1/28/‘09 丑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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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우주의 바다에 떠다니는 별빛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물이 바다로 맞닿아 있듯이

강물처럼 흐르는 영원과 무한 속에

일체가 한 마음에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18/‘09 寅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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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을 낼 때만

분별을 낼 때만

마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 물들지도 않고 받아 지닐 수도 없는

한마음을 거짓으로 자성이라 한다.

1/18/‘09 寅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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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을 내면 마음이 나타나듯이

분별을 내면 마음이 나타나듯이

사건의 인과가 존재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내지 않으면 부처도 사라진다.

1/17/‘09 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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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

측정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찾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묻지 않으면 답하지 않는다.

1/18/‘09 寅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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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는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다.

진정으로 well-dying을 추구한다면

사후의 모습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1/18/‘09 寅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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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외로운 사람들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

이제 戊子년 한해도 사흘이 남았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상처받고 외로움에 떠는 영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따스한 햇살과 맑은 달빛 아래서 자신의 마음을 잘 갈무리하셔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삶을 유지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주변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중 송도 바닷가의 여명과 일출 그리고 감천과 을숙도의 석양과 일몰

그리고 산책로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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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서 내려다 본 송도의 모습입니다.

왼쪽이 태종대이고 오른쪽이 암남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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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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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들르는 산책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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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송도와 영도를 잇는 남항대교가 개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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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초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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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숲사이로 보이는 남포동과 용두산 공원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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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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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이 영도의 태종대입니다.

 

제가 외항선 기관사였을때 근무하던 배도 여기서 waiting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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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의 을숙도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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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과 낙동강 하구의 일몰 광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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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이는 산은 가덕도의 국사봉과 거제도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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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낙조가 있는 곳 아래가 부산진해신항이 있는 위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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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몰려 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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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가까이 있는 섬이 거제도의 남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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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의 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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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하루의 끝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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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입니다.

 

새해는 더욱 편안하시고 보람찬 나날들이 되시길 빕니다.

 

 

송 도(松 島)

굽어보면 옛 일터였던 태평양의 내해요

돌아보면 언제나 정겨운 백두대간의 한 줄기라

따스한 햇살과 맑은 달빛 아래 고요하니

이 외에 또 무엇을 더 구하겠는가?

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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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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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항해노트를 들춰서 그 날이 1984년 5월 22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Maritime Overseas Corproation 소속의 product oil carrier인 M/T Pacific Hunter에서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자정 무렵 접안을 마치고 침실에 들었다가 일찍 잠이 깨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 속에서 Puerto Rico 항의 여명을 바라보며 아침의 정적을 깨는 팝송의 요란한 흥겨움에 젖어 있었다. 그날 오후 San Juan의 시내를 관광하던 중 해안 요새로 유명한 El Morro 건너편 바다에서 거대한 범선이 출항하고 있었는데 yard 위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manning the yards)을 보고 등현례(登舷禮)의 장면을 카메라로 잡으려다 여분의 film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던 아쉬움은 그 후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난 10월 26일, 지난해 4월부터 대학 후배의 요청으로 운영되고 있던 의학 상담을 하는 칼럼에 접속하다가 ‘공지 사항’에서 ‘지구인 항해 2002 한국/일본’을 보고 범선항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11월 9일 토요일 오후 한국해양대학교의 박 진수(朴 鎭洙) 교수님 연구실에서 예비 소집이 있었고 모두 9명이 부산서 Kobe까지 승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해양대학교의 선석에는 때마침 KAIOMARU(海王丸)도 입항해 있었는데 20년 전 San Juan에서 보았던 그 범선과 매우 유사한 구조였다.
우리가 승선할 배는 STS KAISEI(海星)였는데 약 180 톤이고 L.O.A.(Length Overall) 가 46 m였으며 fore mast에 횡범, main mast에 종범의 범장을 가진 2본 마스트의 Brigantine 형의 기범선으로서 일본 Sail Training 협회 소속으로 모항은 Yokohama였고 1990년 Poland의 Gdansk 조선소에서 건조되어서 1991년에 일본선적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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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오전 11시 우리들은 선석에서 일본의 trainee들과 함께 Blue, Red, Green watch의 3군으로 편성되었다. Blue watch의 leader는 KAISEI의 항해사인 Masatoshi Ogasawara(小笠原 正俊) 씨였다. 나는 8번 선실을 배정 받고 우의(wet weather gear)와 안전 장구(safety harness)를 지급 받은 후 여장을 풀고 곧바로 messroom에 모여서 instructor인 Mr. Phil Smith의 사회로 선장 Keiichi Sakane(坂根 慶一) 씨, 항해사 Kokichi Kato(加藤 晃吉) 씨, 항해사 Yama 씨, 기관장 Oda 씨, 조리장 Kouri 씨, 협회 사무실에서 지원 나온 Akane Ito 양, Green watch leader이고 KAISEI의 갑판원인 Sawako Hamanaka(浜中 佐和子) 양, Red watch leader이고 일본의 volunteer인 Sanae Nunokawa(布川 早苗) 씨, 그리고 한국의 volunteer인 문 성호 군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trainee는 모두 당직조별로 호명이 되었는데
Blue watch는 岩井 久美子 씨, 이 대희(李 大喜), Sato Takuya(佐藤 拓也), 정 혜진, Shinichi Yamada(山田 愼一), 정 연유로 7명이었고,
Green watch는 정 균식(鄭 均植) 선생, Kai Yamamoto, 이 선미(李 仙美), Masamitsu Kiriyama, 양 고은으로 6명,
Red watch는 Yokoyama Kenji 씨, 이 주철, Yumie Kawahara(川原 弓枝), 서 채민, 김황곤으로 6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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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퇴선 명령 신호와 조난 시 집합할 life raft(구명 뗏목)의 위치를 파악한 후 우리는 다시 조별로 모여서 nickname을 정하였는데 아마도 선상 생활에서의 편의와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Blue watch는 leader인 Masatoshi Ogasawara 씨는 Masa, 岩井久美子 씨는 Omani(.어머니), 나는 Lee, 정 혜진은 Pooh, Sato Takuya는 Taku, Yamada Shinichi는 Shin, 정 연유는 C-man으로 정했다.
Green watch는 leader인 Sawako Hamanaka 양은 Sawa, 정 균식 선생은 Viking, Kai Yamamoto는 Kai, 이 선미는 Sunny, Masamitsu Kiriyama는 Kiri, 양 고은은 Mango로 정했다.
Red watch는 leader인 Sanae Nunokawa 씨는 Nae, Yokoyama Kenji 씨는 Yoko, 이 주철은 Zaza, Yumie Kawahara는 Yumie, 서 채민은 Seo-chae, 김황곤은 Ricky로 정했다.
그리고 instructor인 Mr. Phil Smith는 Phil, 선장 Keiichi Sakane 씨는 Kei, 항해사 Kokichi Kato 씨는 Kato, 항해사 Yama 씨는 Yama, 기관장 Oda 씨는 Oda, 조리장 Kouri 씨는 Kouri, Akane Ito 양은 Akane, 문 성호 군은 Gundam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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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우의와 안전 장구를 매고 곧바로 First Program에 들어갔는데 rope의 취급요령, 조타술, 횡범(橫帆, square sail)의 회전 그리고 mast를 오르내리는 법 등의 기초 지식에 대해서 Masa와 Phil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실습을 했다. 모든 trainee들은 리더의 지시와 격려에 고무되어 열성적으로 약 30 m 높이의 yard에 올라가서 사각 돛을 설치하거나 다시 접어서 gasket으로 고정하는 법을 배웠고 yard의 각도를 변경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yard brace의 rope들을 당겼다. 또한 rope work에서 round turn and two half hitch와 reef knot, sea coil 그리고 belaying pin에 rope을 정리(make up lines)하거나 또는 flake 하는 법을 배우고 rope을 당길 때 사용되는 구령(calls when pulling on lines)을 익혔다. KAISEI는 실습용 범선이어서 선수의 anchor를 들어올리기 위한 2개의 capstans와 선미의 계류삭(mooring lines)을 감기 위한 1개의 capstan 외에는 모두 사람의 손으로 rope를 직접 당기고 감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므로 오후의 출항 시에는 이들 지식을 바로 사용해야 했다.
14시 20분 국외 반출물에 대한 세관의 확인서를 받고 해양대학의 조촐한 환송식을 뒤로 하고 Blue watch는 선수에서 육상의 선석과 연결된 모든 계류삭을 풀어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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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40분 서서히 해양대학교 부두의 환송 인파가 시야에서 멀어져 갔고 우리는 오륙도 앞의 방파제를 빠져나왔다.
15시 15분 Main Sail과 Inner Jib, Main Staysail이 설치되었고 우리는 Bowsprit으로 나아가서 Inner Staysail을 설치했다. 15시 30분에 Lower Topsail과 Upper Topsail이 설치되었다.
16시 15분에 풍상 측에서 반대편에 뱃전으로 바람을 받기 위한 tacking 조작과 풍하 측에서 반대편에 뱃전으로 바람을 받기 위한 wearing 조작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실제 tacking 조작에 대한 실습을 하였다. 이러한 tacking과 wearing이 필요한 이유는 sail이 바람을 선미쪽 정 후방에서 받는 경우 배가 전진 시 sail에 의한 저항과 sail 전방의 와류 때문에 오히려 추진 효율이 떨어지고 대신 바람을 배의 진행에 대해서 45도의 각도를 유지함으로써 sail에 의한 추진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때 본선의 크기에 비해서 draft가 4 m나 되는 것은 mast가 높은 만큼 복원력을 유지해야할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범선이 이처럼 항상 바람 방향에 대해서 zigzag 형태로 범주해야 하므로 풍압에 의해 형성된 힘을 선수 방향의 추진력으로 분산시키기 위해서 선저가 날카롭고 깊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tacking과 wearing 조작은 범선 항해에서 주기적으로 해야 하며 이때 모든 횡범과 종범을 올바른 순서와 정확한 timing에 맞춰서 조절해야 하므로 모든 sail들을 풍하 측으로 돌리기 위해서 고도의 team work과 timing에 대한 판단과 신속하고 일사 분란한 협동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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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 50분에 Lower Topsail과 Upper Topsail을 접어서 gaskit으로 고박 시켰으며 17시에 Inner Staysail과 Inner Jib을 내려서 고박(stowing)시켰다.
17시 25분에 태종대에서 약 500 m 떨어진 묘박지에 port anchor를 내리고 17시 50분부터 묘박 당직(anchor watch)에 들어갔다.
저녁 식사 후에 messroom에서 Phil의 사회로 별 자리의 12궁(signs of the Zodiac)에 따라 모여서 자기에 대해 소개를 하고 질문을 받되 같은 별자리로 모일 때까지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난감해 있었는데 Nae가 머리에 뿔 모양으로 손가락을 펴 보였다. 나는 염소라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갔다. 마침 실내가 더워서 붉은색 등산용 보온 셔츠를 벗어서 탁자 위에 놓아두었는데 Nae가 그것으로 투우 흉내를 냈다. Pooh와 나는 서로 마주 보다가 Masa가 염소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그쪽 테이블로 옮겼다. 염소좌와 다른 일부의 별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우리들은 Kai, 나, Pooh, Viking, Taku, Kiri의 순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질문을 받기로 했다. 먼저 Kai는 낚시와 하모니카 불기를 좋아하고 겨울 스포츠를 즐기며 19세이고 Yokohama에 살며 coffee shop에서 웨이터로 일한다고 소개했다.
나는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외항선에서 기관사로 근무했고 그 후 다시 1987년 의과 대학에 입학해서 의사가 되었고 지금은 부산의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여행을 좋아해서 약 50여 개 국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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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Pooh는 20세로 한국해양대학교에서 무역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장래의 희망은 가능하다면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며 일본어를 6개월 정도 공부했고 28살 된 남자 친구가 있다고 소개했다.
leader인 Masa는 KAISEI에 근무한지 2년 되었고 원유 선에서 항해사로 5년간 근무하고 해상 생활이 무료해서 아프리카 Malawi의 해양대학에서 학생들을 2년간 가르쳤으며 1990년 Kobe상선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했고 현재 38세이며 지난해 결혼했다고 소개했다.
다섯 번째로 Viking은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기관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대학 내에 창업보육센터의 전임연구교수로 있으며 해양대학 실습선에 대한 지원 업무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1994년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까지 해군 장교로 근무했으며 1년간 원유선에서 기관사로 근무하였고 모든 스포츠에 만능이어서 100 m를 11초에 주파하며 대학 내 American football 팀에서 92년 93년 MVP로 뽑힌 적이 있다고 했다.
여섯 번째로 Taku는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판문점까지 가 보았고 독서와 역사물을 좋아하고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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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로 Kiri는 24세로서 농업을 전공했으며 양배추 농장에서 part time으로 일하고 있고 등산, 스키, 실뜨기와 종이 접기를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그 후 내일 아침 내가 galley helper를 해야 하므로 22시부터 24시까지 C-man, Shin과 같이 정박 당직을 섰다. C-man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회사에서 카메라맨으로 일하고 지난 6월 2002 한국세계범선대회(Sail Korea 2002)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Shin은 지난 달 다니던 회사에서 사직하였으며 Shikoku의 Kagawa가 고향이고 한국에 방문해서 온실 설비를 사서 농작물을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Shin, Kai, Zaza, 그리고 나는 모두 같은 cabin을 사용하는 roommate였다.
정박당직은 매 시간마다 radar로 가장 가까운 육지와의 거리를 측정하고 해수온도, 기온, 풍향, 풍속, 천후를 일지에 기록하며 poop deck의 steering gear room, auxiliary machine room, chain locker, 그리고 boatswain’s store의 bilge(오수) 량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갑판을 걷다가 부산의 야경을 바라보며 약 20년 만에 다시 보내는 선상의 밤에 대한 감회가 새로웠다. 밤 12시 당직 교대를 하고 샤워를 한 뒤에 침대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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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II

20100218_064536_b1641b90b4b4fb2a39eaeae7fdc4f1 11월 13일

아침 6시경 기상해서 면도와 세수를 하고 6시 55분에 galley helper를 하러 내려갔다. 하늘은 맑았고 미풍이 뱃전을 찰싹였다. 8시 30분에 crew meeting이 있었고 9시 10분에 main engine이 stand-by되었고 Main Sail을 설치했다. 9시 40분 port anchor가 끌어 올려졌고 Blue watch는 fore deck에서 출항준비를 했는데 나는 C-man과 함께 chain locker에서 anchor chain을 정리했다. Masa가 Blue watch 중에서 leader를 지원하라고 해서 하루 동안 내가 하기로 했다. 9시45분 Inner Staysail, Inner Jib 그리고 Main Staysail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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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동경 129도 7분 10초, 북위 35도 3분 30초 위치에서 주기관의 사용이 종료되었고 10시 15분에 Lower Topsail과 Upper Topsail, Top Gallent가 설치되었는데 Blue watch는 Upper Topsail을 설치하기 위해서 yard 위로 올라가서 gasket을 풀고 갑판에 내려와서 Masa가 leader인 나에게 부원들에게 Upper Topsail 설치에 대해 order를 내리게 했다. 먼저 bridge의 당직사관에게 “Ready to set Upper Topsail!”이라고 외치자 ”Please Set Upper Topsail!”이라고 허락이 내려졌다. “On the Upper Topsail!, Stand by Upper Topsail Buntlines, Leech line and Sheet line, flake Buntlines and Leech line!”라고 지시하고 Upper Topsail Buntlines과 Leech line의 flake 상태를 확인한 후 1명을 배치하고 Sheet line에 각각 좌, 우현 2명씩의 인원을 배치한 후, “On the Upper Topsail!, In on Sheet line, Out on Buntlines, Leech line, Haul away!”라고 외치자 모두 “Haul away!”하고 복창한 후 “Two-six-heave!, Two-six-heave!” 외치면서 구령에 맞추어 rope를 당겼고 ‘DORAEMON DREAM VOYAGE’라고 그려진 Upper Topsail이 거의 다 펼쳐진 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Hold!”하고 외치자 부원들은 “Hold!”하고 복창한 후 rope를 belaying pin에 왼쪽으로부터 한 번 걸어서 고정한 채 대기하였다. 나는 다시 sail 상태를 확인한 후 “Firm up!, Haul away!”라고 외치자 모두 “Haul away!”라고 복창하고 다시 “Two-six-heave!, Two-six-heave!” 외치면서 구령에 맞추어 rope를 당겼고 sail이 충분히 팽팽하게 설치된 것을 확인한 후 내가 다시 “Belay!”라고 외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Belay!”하고 복창한 후 “Take a weigh!”, “Got to the weigh!”하면서 rope를 단단히 pin에 고정시켰다. pin에 아래위로 3번씩 8자형으로 엇걸어서 고정을 시킨 부원이 “Belay!”하고 외치자 “Belay!”하고 복창한 후 rope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rope를 coil 형태로 사려서 pin에 make up line을 하였고 Buntlines과 Leech line도 사려서 pin에 정리했다. 맑은 하늘 아래 미풍이 온몸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기분 좋은 한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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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후 오후 3시까지 siesta time(낮잠 시간)이 있었고 3시 30분부터 main deck(중갑판)에 모여서 KAISEI race를 했는데 watch 별로 6명씩 나와서 허리에 엉덩이 쪽으로 못이 늘어뜨려진 끈을 매고 달려가서 fore mast에 달린 KAISEI bell을 친 후 돌아와서 입구가 좁은 호리병에 엉거주춤 앉아서 못을 넣는 게임이었는데 Blue watch가 우승해서 과자 한 봉지를 상품으로 받았다. 침로가 대마도를 스쳐지나갈 정도의 145도여서 저 멀리 송도와 하이얀 고신의료원 건물이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평선 근처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가 사는 곳이며 아주 아름다운 바닷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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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본선은 대마도(對馬島)의 Izumi Wan(泉 灣)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거실에서 이른 새벽이나 밤중에 송도의 수평선을 바라보면 대마도의 등대를 볼 수 있었는데 그곳이 부산 쪽을 향한 항구일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아마도 그 등대는 Sao Saki(棹 埼)나 Ina Saki(伊奈 埼)의 등대였던 것 같았다. 그쪽 항구는 어떤 모습일까? 막연한 상상을 하게 하던 대마도도 거제도의 저녁과 유사한 섬 마을 풍경이었으며 Mitsu Shima(三 島)의 등대와 해안도로의 가로등만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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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부터 20시까지 Blue watch가 항해당직을 섰고 내가 먼저 helmsman을 했고 각각 lookout, messenger, bilge checker, log-book keeper를 분담시켰다. 배가 유지하고 있는 방향을 침로(the course)라고 하는데 침로는 나침반(compass)의 각도에 의해서 표시된다. 본선에서는 gyrocompass는 해도실(chartroom)에 있고 magnetic compass는 해도실 상부에 설치되어 있으며 두 개의 gyro repeater중 한 개는 bridge의 helm 앞의 나침의함(binnacle)에 설치되어 있어서 조타를 할 때 이 compass casing에 있는 노란색의 Lubber line이 본선의 선수와 일치하므로 이 Lubber line이 침로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또한 helm의 조작에 의해 결정된 rudder의 각도는 helm 앞의 main mast에 걸려있는 Helm Indicator에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helmsman은 대개 20분마다 교대로 하게 되는데 교대를 할 때는 먼저 선교에 올라가서 당직 중인 helmsman에게 “What was the last change order?”라고 물어서 먼저 현재의 침로를 확인하게 되는데 당직 중인 helmsman이 “The last change order was one four zero(140).”라고 답하면 교대자는 다시 당직사관에게 “The last change order was one four zero(140).”라고 보고하고 당직사관이 “OK, thank you”라고 하면 helmsman 당직을 교대하고 이전의 helmsman은 “The last change order was one four zero(140).”라고 당직사관에게 보고하고 당직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침로를 수정하기 위하여 당직사관이 “Alter course to one four five(145).”라고 명령할 경우 반드시 “One four five(145).”라고 복창해서 확인을 해야 하며 그 후 Helm Indicator가 “Starboard 5″를 나타낼 때까지 helm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선수와 Lubber line이 오른쪽으로 돌아서 새로운 침로(145)에 다다르면 Helm Indicator가 ”00″를 나타낼 때까지 helm을 왼쪽으로 돌려서 Midship 상태로 만들고 당직사관에게 “One four five(145) on.”이라고 보고한다. 이때 rudder는 배의 중앙에 위치하며 배는 새로운 침로를 유지하며 똑바로 나아가게 된다. 일시적으로 항로를 수정하는 경우 당직사관은 “Port 5″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Port 5″라고 복창해서 확인을 한 후 단순히 Helm Indicator가 “Port 5″를 나타낼 때까지 helm을 왼쪽으로 돌리고 “Port 5-on”하고 당직사관에게 보고하면 된다. 배의 선회가 끝나면 당직사관은 다시 “Midship”이라고 지시를 할 것이고 “Midship”이라고 복창해서 확인을 한 후 다시 helm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Helm Indicator가 ”00″를 나타낼 때까지 helm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Midship 상태로 만들고 당직사관에게 “Midship-on”이라고 보고한다. 선수와 방위기선(lubber line)과 helm을 잡고 있는 나와 rudder가 일직선상에 있다는 사실이 우주의 중심은 나요 나는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했다. 범선에서는 상선과는 달리 16시부터 18시까지 First Dog이고 18시부터 20시까지 Last Dog이어서 20시에 당직을 마치고 침실에 들어갔다.

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III

 

11월 14일

본선이 대마도를 지나서부터 자정 무렵에는 Higashi Suido(東 水道)의 영역에 접어들면서 쓰시마 해류의 영향으로 밤새도록 rolling때문에 침상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4시부터 당직을 섰으나 해류와 바람의 변화가 극심해서 침로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본선의 표류(drifting)도 심했다. 9시 25분 Lower Topsail, Upper Topsail, Top Gallent를 접고 9시 30분 주기관을 사용해서 시모노세키(下關)의 Kanmon Kaikyo(關門 海峽)을 향해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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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시간에는 messroom의 평평한 지붕 위에 앉아서 간단한 일본어와 한국어를 서로 가르쳐 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원래 어학에 소질이 없는지라 따라 하기가 어려웠다. 이윽고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에 대해 서로 한 사람씩 소개할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한 소개는 내가 영어로 하고 다시 Masa가 일본어로 통역을 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fore mast와 main mast의 square sails와 staysails를 지지하고 조절하는 많은 로프들과 yards, 그리고 shrouds의 미적이고 역학적인 조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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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asia 대륙과 America 대륙을 약 5년에 걸쳐 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중 Turkey의 Istanbul이나 Kusadasi 그리고 Cappadocia 지방에서 만났던 많은 Turkey 인들에게서 그들의 문화나 음식을 접하면서 그렇게 이질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의 선조가 바로 우리 이웃에서 살았던 ‘돌궐(突厥, Turkut)’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Uzbekistan을 약 2주에 걸쳐 여행을 하면서 그들과도 매우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꼈었다. 그것은 아마 고대 시대부터 이미 Silk Road나 초원의 길(Steppe Road) 또는 해상을 통한 왕래와 교류가 있었고 그로 인한 혈연적인 연결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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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Greece의 여러 섬들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Hong Kong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서도 그렇게 다르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미국 Los Angeles 공항의 한 여객기에서 열 십자로 끈이 묶여진 전형적인 인디언 샌들을 신고 있던 Indian 여인을 보면서 나는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서로 미소 지으며 많은 교감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Mexico의 Manzanillo나 Mazatlan 또는 Acapulco에서 거리를 거닐다가 인디언 아이들이 자기들이 손수 만든 다소 주술적인 모양의 토속적인 인형을 사라고 갑자기 뛰어들어서 놀라면서도 언제나 그들의 모습이 친근했고 또 한편으로는 측은했다. 그것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상당히 두터운 인연이나 혈연의 끈이 묶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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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내가 일본어를 모르기는 하지만 약 1만 년 전 뷔름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100 m 정도 낮았으므로 중국의 산동 반도에서부터 대마도를 거쳐 일본까지 한국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왕래를 하였을 것이다. 사실 나는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본선에서의 모든 생활이 전혀 낯설지 않다. Uzbekistan을 여행하던 중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의과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Bukhara 의과대학 학생에게 선물로 연화문(蓮花紋) 타이스 링(tightening ring)을 주다가 백제(百濟)의 와당(瓦當)에서 나온 연꽃을 보고 문득 일본의 Munsing제품 중 open 조끼(open vest)에 나오는 일본의 전통 문양과 너무 흡사해서 내가 상품을 잘못 고른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은 그 원류가 백제(百濟)의 문양이 기원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고대 민화를 보면 한국의 버선과 닮은 모자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무한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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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기사 시절, 야마오까 쇼하찌(山剛 莊八) 씨가 쓴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를 번역한 ‘대망(大望)’을 두 번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소설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으며 그렇게 이질적인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한국의 특징은 아이들이 컴퓨터나 전자 오락 등의 사이버 문화에 매우 익숙해 있으며 부모들은 아직까지 자식들의 교육에 막무가내 일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비교적 사고가 유연하고 개인적인 삶과 자유를 중요시하는데 비해서 일본 사람들은 개인적 삶을 즐기는데 다소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Masa는 다소 통역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서 결국은 논지를 다 펼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마무리가 되었고 Kai에게서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명절 때 신사에 잘 가며 새해에는 달마상과 비슷한 목각인형에 눈동자를 그려 넣고 소원을 비는 관습이 있다.”고 했다. 어느덧 계획된 시간이 지나서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본선은 13시 30분에 Kanmon Kaikyo(關門 海峽) Traffic Line에 들어가서 15시 15분에 관문해협(關門 海峽)을 완전히 지나갔다. 16시부터 18시까지 항해당직을 서고 자정부터의 midwatch를 위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본선은 21시 30분에 Hime Shima(姬 島)를 지났다.

 

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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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자정부터 4시까지 항해당직을 섰다. lookout을 하면서 주변의 배들을 관찰하였는데 선수와 선미 그리고 main mast에 항해등을 켰고 좌현에는 red lamp를 우현에는 green lamp를 켜고 있었다. 가끔씩 매우 많은 등불로 실내가 화려한 배들이 지나갔는데 여객선이거나 ferry boat였다.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내해의 통행량은 매우 많아서 항해사들은 매우 긴장 속에서 당직을 서야할 것 같았다. 본선은 Iyo Nada(伊予 灘)를 지나고 있었는데 대기 온도는 14.5℃였으나 해수를 머금은 돌풍은 혹독하였다. 나는 20분씩 쉴 때마다 chart room에서 내가 가지고 간 해도에 배의 위치를 plotting 해 갔다. 20년 전 M/T Young Chemicarrie로 이곳을 항해할 때보다는 바다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 그때는 바다가 단지 방관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바다와 일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해(內海)라고는 하지만 겨울 등반용 방한복과 oilskin이 필요할 만큼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4시에 당직 교대를 했고 새벽잠을 청했다.
오전 9시에 본선은 Kurushima Kaikyo(來島 海峽) Traffic Line에 들어가서 9시 45분에 모두 통과했는데 그 동안 우리들은 yards에 올라가서 내도 해협의 가을 경치를 즐겼다. 10시 40분에 Lower Topsail과 Upper Topsail 그리고 Top Gallant를 설치하였고 10시 50분에 주기관을 정지시켰다. 12시 55분에 Middle Staysail을 설치했고 13시 20분에 Main Top Mast Staysail을 설치했다. 이번에는 C-man이 watch lead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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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bridge의 당직사관에게 “Ready to set Middle Staysail!”이라고 외치자 ”Please Set Middle Staysail!”이라고 허락이 내려졌다. “On the Middle Staysail!, Stand by Middle Staysail Halyard, Downhaul and Sheet line, flake Downhaul!”이라고 지시하고 Middle Staysail Downhaul과 Sheet line의 flake 상태를 확인한 후 1명을 배치하고 Middle Staysail Halyard에 4명의 인원을 배치한 후, “On the Middle Staysail!, In on Halyard, Out on Downhaul, Control Sheet line, Haul away!”라고 외치자 모두 “Haul away!”하고 복창한 후 “Two-six-heave!, Two-six-heave!” 외치면서 구령에 맞추어 rope를 당겼고 Middle Staysai이 거의 다 펼쳐진 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Hold!”하고 외치자 부원들은 “Hold!”하고 복창한 후 rope를 belaying pin에 왼쪽으로부터 한 번 걸어서 고정한 채 대기하였다. C-man이 다시 sail 상태를 확인한 후 “Firm up!, Haul away!”라고 외치자 모두 “Haul away!”라고 복창하고 다시 “Two-six-heave!, Two-six-heave!” 외치면서 구령에 맞추어 rope를 당겼고 sail이 충분히 팽팽하게 설치된 것을 확인한 후 C-man이 다시 “Belay!”라고 외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Belay!”하고 복창한 후 “Take a weigh!”, “Got to the weigh!”하면서 rope를 단단히 pin에 고정시켰다. pin에 아래위로 3번씩 8자형으로 엇걸어서 고정을 시킨 부원이 “Belay!”하고 외치자 “Belay!”하고 복창한 후 rope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rope를 coil 형태로 사려서 pin에 make up line을 하였고 starboard 쪽으로 sail이 향하도록 sheet line을 당겨서 고정하고 pin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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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Pin Race를 했는데 main deck에서 각 watch 별로 한 사람씩 나와서 Phil이 내는 문제에 해당하는 pin이나 사물을 먼저 손으로 잡는 사람이 득점하는 watch 별 경기였는데 대부분은 pin diagram에 있는 문제였으나 그 중에는 bell of KAISEI, Blue watch leader, flag of KAISEI, man rope와 같은 문제도 있어서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Masa는 자기가 호명되자 helm을 잡고 있다가 main mast 위로 도망갔지만 Zaza에게 붙잡혔다. watch leader 대항에서는 flag of KAISEI가 문제였는데 Nae는 main mast 꼭대기에 걸려 있던 flag을 가지러 올라가고 Masa는 chart room에 꽂혀 있던 여분의 flag을 가져와서 득점했다. 모두가 대항하는 경기에서는 man rope가 문제였는데 내가 구명정에서 굵은 rope를 가져오는 것을 보고 mammy(omani)가 구명정 안에서 figure eight knot가 되어 있는 다른 rope를 가지고 와서 결국 Blue watch가 우승했다. 내 차례에는 Inner Stay Downhaul과 Port Inner Jib Sheet를 맞추었다. 이번 경기는 pin diagram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sail들을 handling 하는데 있어서 매우 구체적이고 통합적인 지식을 내면화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무엇보다 매우 즐거웠다. 20시부터 자정까지 당직을 섰는데 당직 교대를 위해 내려온 Zaza가 당직 중 비가 왔고 강풍이 심해서 갑판이 매우 춥다고 했다. 나는 사용하지 않았던 겨울 등반용 내의를 입고 마스크를 하고 당직 교대를 했다. Masa도 처음으로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건구 온도는 13.5℃였으나 풍력이 ‘5’여서 습구 온도는 9.5℃였다. 21시 40분에 혼슈우와 시코쿠를 잇는 총연장 13 km의 세토 대교(Seto-Oohashi)를 통과했다. 우현 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석유화학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풍향이 NE로 본선에 대해서는 거의 11시 방향이었는데 sail도 11시 방향이어서 sail의 전 후면의 유속의 차이에 따른 압력 차에 의해 추진력이 형성되는 것 같았다. 가장 춥고 을씨년스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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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항해 당직을 섰다. 여느 때처럼 happy time에는 accommodation의 선미 쪽을 청소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deck에서 brass work을 했다. 그 후 모두 messroom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범선 항해에 사용되는 기본적인 매듭(knot, tie)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실습을 해보았다. Over hand knot, Figure eight knot, Bowline knot, Constrictor knot, Reef knot 등의 용도와 묶는 방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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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지금까지 항해에 대해 watch 별로 자체 평가가 있었고 배 멀미를 심하게 했던 Shin과 Taku는 다시 항해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캠코더의 배터리에 대한 전기 충전과 전기면도기 사용을 허락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건의하였고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잘 지도해 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17시 40분 Kobe 외항의 묘박지에 anchoring을 했다. 그리고 기념으로 KAISEI 셔츠와 스웨터, smock(작업복)과 post cards를 샀다. 일과 후 저녁에는 모두 messroom에 둘러앉아서 e-mail과 주소를 교환했다. 나는 Phil의 e-mail을 받고 어디에서 해양대학을 다녔냐고 묻자 Australia의 서부해안에 있는 Carnavon에서 다녔다고 했다. Phil은 나에게 ph. D. degree까지 얼마나 걸렸냐고 물어서 14년 걸렸다고 대답했다. 나는 매우 유익한 가르침을 베풀어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 했다. 이제 GP-03 항차도 내일 Kobe 항의 부두에 접안만을 남겨 놓고 있었으며 나는 내일 아침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정박 당직이 있었다.

 

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V

 

11월 17일

새벽 2시경에 잠에서 깨어나 나는 chart room에서 Log-book을 messroom 테이블에 가져와서 GP-03 항차의 일지를 옮겨 적고 있었다. 정박 당직 중인 Zaza가 갑자기 컵 라면 5개를 들고 와서는 당직 중인 Nae와 messroom에 있던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나도 한 개를 받아서 오랜만에 별미를 즐길 요량으로 물을 받아서 익혔다. 내가 Nae에게 KAISEI에 근무하느냐고 묻자 volunteer로 왔으며 육상에서는 yacht의 판매와 정비에 관련된 일을 한다고 했다. Yumie도 당직이었는데 job이 뭐냐고 묻자 jobless라고 대답했다. 의외로 일본에도 구직난이 심한 듯했다.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다시 정박 당직을 서고 침실로 내려가서 새벽잠을 청했다. 오전 9시에 갑판에 집합해서 Phil이 등현례(manning the yards)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는데 범선 시대에 해적선들이 많았으므로 입항하는 범선이 기항한 항구에 대한 우의와 우정의 표시로 그리고 본선은 해적선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항에 필요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yard 위에 올라가는 것이 범선 입항의 전통적인 관례라고 했다. 우리들도 그러한 전통에 따라 모두 yard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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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5분 engine stand-by를 해서 9시 30분에 anchor를 올렸고 Kobe 항을 상징하는 Port Tower 옆의 부두로 접안을 시작했다. 부두는 관광객과 시민들을 위한 친수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어서 일요일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본선이 접안하는 광경을 신기해하며 쳐다보고 있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시 후 본선에 승선할 일군의 trainee와 volunteer들이 본선을 보고 환호했다. 약 20년 전 San Juan에서의 그 범선이 생각났다. 10시에 접안이 완료되었고 10시 15분에 주기관의 사용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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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room에서 입국수속과 세관 검사가 있었으며 상륙증을 받았다. 선실에 내려와서 Kobe의 관광지에 대한 자료를 읽고 있는데 Gundam이 와서 Mango와 Seo-chae 그리고 Sunny가 모두 일본은 초행이라며 나와 같이 가고 싶다고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카메라 와 캠코더를 챙겨서 같이 상륙을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우리는 먼저 식사부터 하기로 하고 Motomachi(元町)의 상가를 둘러보다가 西元町의 어느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나는 정식을 주문하고 각각 600엔 정도 하는 식사를 했다. 생각과 달리 달러나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 Sunny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승선 전 월요일에 환전을 하려다가 일요일날 갑자기 여권을 맡기느라고 이전에 여행하고 남은 일부의 달러와 카드만 들고 나온 것이 낭패였다. Mango와 Seo-chae는 시립 박물관을 보고 싶다고 해서 부두와 세 볼록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므로 자유롭게 보도록 남겨 두고 우리는 Kobe의 명물로 소개되어 있던 Kitano(北野)의 이진칸(異人館)을 둘러보기 위해서 Daimaru(大丸) 백화점을 돌아 Sannomiya(三宮)의 쇼핑가를 지나갔다. 거리의 가로수는 붉게 물들어 흘러내리고 곳곳에서 때 이른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볼 수 있어서 비로소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분주한 일상 때문인지 가을을 잊고 지내다가 지난 10월 15일 청주에서 열린 대한약리학회 추계학술대회를 마치고 대진(大晋) 고속도로를 내려오다가 생초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달궁 계곡을 지나 노고단을 돌아 하동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달궁 계곡의 고즈넉한 노란 물 빛과는 또 다른 도시 속의 갈색과 붉은 단풍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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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Kobe항 개항에 맞춰 외국인 주택지로 탄생된 Kitanomachi(北野町)는 언덕길과 항구의 도시로 유명한 Kobe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작고 높은 구릉이 계속되는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이진칸을 이용한 부띠끄나 레스토랑, 연회장, 재즈바 등이 많아 분위기가 매우 화려했고 꽃과 수목의 단풍과 낙엽으로 매우 아름다운 거리였다. Sunny는 조그만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어린 나이에 비해서 삶에 대한 고뇌와 번민의 무게가 꽤 있는 듯했다. 일본의 신사(神社)를 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Kitano의 고지를 걸어 내려와 Kobe Muslim Mosque를 둘러보고 Ikuta Jinja(生田 神社)를 찾아갔다. 한국의 솟대에서 유래한 오토리이가 있었고 복을 기원하는 종(鐘)이 대웅전 앞에 있어서 기도를 하면서 한 번씩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신사에 와서 하트 모양의 나무판에 이름을 써서 걸어두거나 천이나 종이에 소원을 적어서 묶어 두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Sunny가 설명해주었는데 그러한 모습은 Osaka의 Asia and Pacific Trade Center에 있는 바닷가의 철골 구조물에서도 자물쇠에 소원이나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적어서 철 구조물에 채워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풍습은 멀리 Turkey의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Pergamon의 아크로폴리스에 갔을 때에도 천에 소원을 적어서 나무 가지나 오래된 석주 주변의 쇠 난간에 묶어 둔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 안내인은 이것이 고대인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빌던 하나의 민속 형태라고 설명해주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중국인 거리에서 저녁을 먹고 Okura 호텔에서 달러를 환전한 후에 ‘Prime’이라는 카페에서 밤늦게 wine 잔을 기울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심양(瀋陽)에서 유학온 조선족 학생을 보내 주었다. ‘이 경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그곳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일본에 온 지 이제 6개월 정도 되었다는 그녀는 여러 가지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매우 강인해 보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는 웨이터는 매우 인상이 좋았고 취향에 맞는 와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귀선하는 길에 부두 근처 고가도로 아래에서 개와 같이 사는 homeless를 만났다. 편안하게 잠을 청하고 있던 그는 Kobe의 화려한 시내를 배경으로 묘한 여운을 남겼다.

가을날의 항해 (The call of the KAISEI) VI

 

11월 18일

아침 6시 경에 일어나 GP-03 항차의 궤적을 해도에 옮겨 적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부산에서 Kobe까지 KAISEI를 승선했다는 수료증을 받고 부두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KAISEI 승무원들과 작별을 했다. 다행히 Akane와 Kai가 우리가 오사카에서 Pan Star를 타는 페리 터미널까지 수행해주었다. 가는 길에 Yokoyama 씨를 만났으며 오사카 행 전철역에서 헤어졌다. 부산행 페리는 오후 4시에 출항 예정이었다. 우리는 짐을 모아 놓고 일부는 택시로 가까운 쇼핑센터에 가서 식사를 한 후 Akane와 Kai를 보내고 우리는 간단한 쇼핑을 하고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일본은 대체로 바다에 접한 지역을 친수 공간이나 공원지대로 잘 가꾸어 놓고 있었다. 아직 11월 중순이지만 상가 내부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3시 30분에 승선을 하고 Pan Star에 근무하시는 정 균식 선생의 선배의 배려로 2개의 일반실과 suite room을 하나 더 받아서 오랜만에 편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선내에서는 세토 대교와 고베의 대교를 지날 때마다 안내 방송을 해 주었다. 저녁에 KAISEI에서 챙겨준 과자와 선물로 받은 양주로 간단한 술자리가 있었는데 Ricky는 항해에 대한 대단한 기대와 해상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는 듯해 보였다. 정 균식 선생은 1년 남짓 해외선박에 있으면서 노후선에서 기관사로 근무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았다. 더구나 내가 탔던 M/T Pacific Hunter도 그때까지 해외선박에 있었다고 했는데 이미 선령이 15년 이상된 노후선이어서 모두 승선을 기피하는 배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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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아침 식사 후에 상갑판에 나서니 바람은 찼지만 한국의 TV 방송을 들을 수 있었고 서서히 부산의 모습이 다가왔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터미널에 나오니 박 진수 교수님과 고은이 부모님 그리고 채민이 모친이 마중을 나오셨다. 우리는 중앙동에서 때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GP-03 항해의 모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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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온 사람들처럼 일상의 평범함에 대한 감사와 삶에 대한 잔잔한 환희를 맛보며 더 이상 범선이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화시키고 체득해야 할 실체라는 자각과 함께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뱃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그 옛날 바다에서의 하루를 마감하던 싯귀의 깊은 의미를 이제 다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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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give thanks for safety from the sea
and for this bread with these our gathered friends.
May the light guide us till our sailing ends.
– John Masefield(1878-1967)

12/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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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ing A Mind

Watching A Mind
작성일 2004-10-30(토) 17:06:01
조회수 23

Watching A Mind

As a leaf is falling on the tea,

a mind is rising above the teabowl.

Why, all the mountains and rivers is A Mind,

and the Mind is but a shadow of the cause and occasion.

A White Lotus of Jung-Su was only intricate with paper and pens.

Dae-Heui Lee

Copyright ⓒ2004 Dae-Heui Lee

8/20/2002. at noon.

One day in the beginning of autumn,

I visited a small Buddhist hermitage.

And a Buddhist nun gave me a bowl of tea.

When I touched bowl, I felt it too hot and the bowl almost fell.

I could see a consciousness (the processing procedures of information in the brain)

was rising from the touch.

At that time, an idea struck me that the calm scene was also the

expression of the mind, accidentally.

But the mind was unexplainable with paper and pens, as one Buddhist

priest had tried bef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