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살 영희와 서른 살의 영희는 다르다? 철수영희

흔히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홉수에 접어들고 나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심난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 한살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아홉과 스물은 청소년과 성인의 구분이 되어주고 스물아홉과 서른은 청년이 중년(?)으로 넘어서는 시기다. 뿐만아니라 서른아홉과 마흔이 다르고 마흔아홉과 쉬흔이 다른다. 인생에 있어서 나이에 대해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시기가 바로 아홉수에 접어들었을 때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시기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일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책임’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어야 하는 시기인 탓이다. 20대와 달리 30대에는 자신을 비롯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도 의식해야만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0대와 달리 30대의 선택은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20대의 객기나 호기는 사치일 뿐이다.

이러한 선택은 진로와 결혼으로 나뉜다. 20대 시절에는 떠밀리다시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할지라도 30대에는 자신의 갈 길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고 지금껏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왔어도 30대가 되면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결혼도 마찮가지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평생의 배필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다른 상대를 찾아보아야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강요하는 것들이다.

여기 두명의 남녀가 있다. 모두 서른을 앞두고 있는 스물 아홉의 청춘들이다. 이 두명이 만나는 곳은 상대방 건물을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옥탑방에서다. 영화 감독의 꿈을 안고 사는 청년 철수가 옆건물 옥탑방으로 이사오면서 은행원 영희를 만나게 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흥청망청 살아왔던 철수에 비하면 알뜰한 영희는 차곡차곡 시집갈 밑천을 마련해논 참한 색시다. 서로가 어울릴래야 어울릴 수 없는 처지다 보니 이따금 옥상에서 재회라도 하게될 경우 험한 분위기만 연출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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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앞둔 철수는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판이라는 곳이 안정적인 생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20대에는 좋아서 하던 일이었는데 30대에 들어서도 마냥 좋아하는 일이라고 계속할 수 있을거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시대에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도 쉽지 않다. 서른을 앞둔 철수의 마음이 심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직장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철수에 비하면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스물 아홉의 영희에게도 고민은 있다. 지금껏 사겨왔던 사람과의 미래가 불투명한 탓이다. 20대까지는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서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흔든다. 20대까지는 로맨스였지만 30대부터는 현실이 시작된다.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한 옥탑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런 그녀에게 탈출구가 되어줄 남자는 속시원히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스물 아홉의 영희가 불안해 하는 이유다.

내용은 달라도 서른을 앞둔 스물 아홉의 고민들은 본질적으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를 보내는 아쉬움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물 아홉 이후의 삶이란게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서른이 된다는 것은, 서른 이후의 삶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인 탓이다. 그저 한 살이라는 나이를 더 먹게될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스물 아홉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필요는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고민도 스물 아홉이기에 가능한 이유에서다.

연극 ‘철수영희’에서 스물 아홉의 철수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면서 지금과는 달리 서른이 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다짐하게 되고 서른을 앞둔 영희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사랑을 훌훌 벗어 던지고 유럽으로 떠난다. 서른의 철수는 스물 아홉의 철수보다 한뼘 더 커져 있을게고 서른의 영희는 스물 아홉의 영희보다 한결 성숙해져 있을게다. 스물 아홉의 철수와 영희는 그렇게 서른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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