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를 포기하고 찾아간 대나무숲길 치쿠린에는

인생에 정답이 있나? 선택만 있을 뿐이지.

SBS 드라마 ‘펀치’에서 죽음을 앞둔 정한(김래원)이 하경(김아중)에게 던진 말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시간도 많고 돈도 많다면 세상의 모든 여행지를 다 돌아볼 수 있겠지만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금액으로 움직여야 하는 나그네 신세이다 보니 선택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여러 조건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만 있을 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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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카 신사와 청수사를 다녀온 다음 잇센 요소쿠(壹?洋食)에서 오코노미야끼(お好み?き)를 먹고 나니 시간은 이미 오후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 금각사(金閣寺)와 은각사(銀閣寺)도 다녀오지 못했으니 마음만 급해진다. 서두르면 아직 두어곳은 더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나 고베(神戶, こうべ)로 건너가려면 교토(京都, きょうと)에서는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할 상황이었다. 과연 어디로 가야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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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금으로 칠해져 있다는 금각사(金閣寺)도 좋겠지만 야사카 신사(八坂神社, やさかじんじゃ)와 기요미즈데라(?水寺, きよみずでら)를 다녀왔으니 좀 다른 데로 가보자는 생각에 선택한 곳이 대나무 숲길 치쿠린(竹林, ちくりん)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담양 대나무 숲길이 유명하기는 하나 서울에서 다녀오기에 가깝지도 않거니와 교토에 온 김에 들러 대나무 숲길에서 힐링이나 하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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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라시야마(嵐山) 역에 도착하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우비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길 거너로 자전거 대여점이 보였다. 어차피 맞을 비라면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 타고 다녀오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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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1대당 500엔이다. 휴일에는 하루 900엔에 빌릴 수 있고 평일에는 2시간 500엔부터 4시간 700엔, 그리고 종일 900엔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으나 폐장까지 2시간 남짓 남았으므로 500엔에 빌려준 것으로 보인다. 그대신 4시반까지는 꼭 와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아마도 우리로 인해 퇴근이 늦어질까봐 걱정하는 듯 보였다. 나중에 시간 맞춰 도착하니 어찌나 반가워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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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빌리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였다. 빗길을 걷는 것보다 덜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도 없지 않았다. 첫째, 아라야마 역에서 천룡사 텐류지(天龍寺)까지 가는 길은 매우 협소하여 자전거로 이동하기에는 무척 위험해 보였다. 어느 지점은 양쪽으로 교행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편도 1차선이었으므로 자전거를 타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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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우리의 목적이 자전거 드라이빙이 아니라 대나무 숲길인 치쿠린 방문이었다는 점도 그렇다. 치쿠린으로 가는 길은 천룡사를 관통하는 방법과 천룡사 뒷편으로 우회해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천룡사를 관통하는 방법은 별도의 입장료가 들고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도 없었다. 우회하는 방법도 좁은 골목길인지라 사람들이 많으면 자전거로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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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적인 여유만 있다면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우리야 치쿠린이라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으니 그랬던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강줄기 따라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격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자전거 상태도 괜찮았다. 유후인(由布院)에서는 낡은 자전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은 그래도 관리를 잘 하는지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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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쿠린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앞선다. 금각사를 포기하고 올만한 곳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대나무 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규모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대나무 숲이라는 표현에 이끌려 치쿠린만 방문하는 것보다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천룡사 텐류지를 먼저 들르고 치쿠린은 보너스로 다녀오는 게 좋겠다. 그러고 보면 딱 하나만 선택해야 했던 우리에게는 시간이 웬수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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