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 멍게 등 튀김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튀김의 달인’ 김설문씨. 아이스크림을 세계
최소로 튀겨낸분이기도 하죠. 이분이 서울 북창동에 식당을 내고 ‘컴백’ 하셨네요.
컴백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반갑습니다. 사진=이구희 기자
흔히 대수롭지 않게 아는 튀김. 일본의 튀김요리(天婦羅·덴푸라) 전문점에서는 코스요리로 나온다. 웰빙음식이 트렌드가 되면서 튀김요리 전문점은 서울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덴푸라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고열량이면 좀 어떠랴. 고소하고 바삭한 맛은 그런 걱정을 상쇠하고도 남는다.
김설문(65) 요리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덴푸라 전문가이다. 어떤 재료든지 튀겨보자는 노력으로 아이스크림튀김, 인삼튀김 등을 개발했다. 1970~80년대 그가 일하던 서울 무교동 서린호텔 덴푸라 코너는 일본의 미식가들이 아침 비행기로 와서 점심을 먹고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은퇴한 줄 알았던 그가 북창동 골목에서 주변 직장인을 상대로 대중 일식당을 열고 있었다. 그의 튀김요리를 잊지 못하는 오래된 단골들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번창하던 옛 모습을 생각하면 서글프게 느껴지는 허름한 식당이다. 몇 개의 방과 홀을 마주한 튀김 카운터에 앉았다.
튀김요리는 스시(생선회)만큼이나 ‘최적의 순간’에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갓 튀겨낸 후 기름이 빠지고 먹기 알맞은 온도 등을 헤아려야 한다. 간장과 다시 국물로 만든 전통적인 덴푸라 소스 ‘덴다시’에는 채소나 담백한 해산물 튀김을 찍어 먹고, 장어나 서대 따위의 기름기 많은 생선은 약간의 소금에 레몬즙을 짜 넣은 소스에 찍어 먹는 게 적당하다.
보리새우 튀김부터 시작되는 튀김요리 코스는 갑오징어, 흰살생선, 장어, 관자, 열빙어, 전복, 양파, 산마를 갈아 김으로 만 튀김과 멍게 등 제철 해산물이 두어 점씩 나오는 순으로 진행된다. 재료가 비칠 정도로 얇은 튀김옷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소리가 날만큼 아삭하고 튀김 재료 본디의 맛을 다치지 않는다. 고소한 튀김옷이라는 피막이 입혀진 향 짙은 멍게는 적당히 변형하여 최고급 서양요리의 전채로 내보면 어떨까 싶은 특별한 맛이다.
후반 코스로 가면서 인삼튀김과 각종 해산물이 들어간 야채튀김(かきあげ·가키아게)이 나온다. 인삼튀김과 야채튀김은 뜨거운 기름 위에서 재료를 튀겨가며 모양을 만들어가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 정도 수준의 가키아게는 일본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다. 얇게 편을 낸 인삼에 실뿌리를 붙여가며 만드는 인삼튀김은 잔가지가 촘촘한 나무에 눈이 가득 내린 것 같이 화사한 모습이다.
하지만 식사로 나오는 알밥은 앞서 나온 튀김의 격을 떨어뜨린다. 예전에는 입가심을 겸해 약간의 메밀국수가 제공됐었다.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 튀김은 요즘 많이 알려졌지만, 그가 처음 개발하였을 때는 장안의 얘깃거리였다. 입이 델 만큼 뜨겁고 고소한 맛과 동시에 느껴지는 차갑고 단맛은 아이스크림을 튀겼다는 재미와 함께, 극(極)과 극(極)도 훌륭하게 어울릴 수 있음을 새삼 경험한다.
튀김코스가 끝나고 행복한 포만감으로 식당을 둘러보니 참으로 아쉽다. 식당은 요리사와 손님, 분위기, 서비스 등 식당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어울릴 때 ‘맛’이 되고 ‘감동’이 된다. 이 집은 튀김을 제외하곤 회나 매운탕 등의 메뉴와 맛이 일반 일식당 수준을 넘지 못한다. 맛과 함께 분위기까지 고려하고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라면 좀 곤란하다. 작더라도 명인의 솜씨를 발휘할 근사한 튀김요리 전문점을 생각해본다. 뉴욕이나 도쿄의 유명 식당처럼 예약하려면 며칠 또는 한두 달을 기다려야 되는 그런 식당. 성질 급한 우리는 언제나 그런 식당과 손님을 가질 수 있을까?/음식평론가 구식(필명)
★★★(5개 만점=맛·가격·분위기·서비스 총점)
주소_서울 중구 북창동 104(신창상회 맞은편 골목 안)
전화_(02)774-3631~2 / 011-340-8867
영업시간_점심 정오~오후 3시, 저녁 오후 5~10시, 일요일 휴무
메뉴_점심 덴푸라 코스 1만2000원 회정식 2만2000원 회덮밥 5000·7000원, 저녁 덴푸라 코스 2만5000원 덴푸라 사시미 코스 3만5000만원 회정식 3만원·부가세 포함
주차_안됨
/5월7일자 주말매거진에 나간 기사입니다. 필자가 쓴 글을 확인해보기 위해 저도 가서 맛을 봤는데, 튀김이 정말 환상이더군요. 또 필자 말처럼 튀김을 제외한 나머지 음식의 수준이나 인테리어, 분위기 등등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로지 튀김 그 자체의 맛에 집중하는 분이라면 ‘강추’입니다. 꼭 카운터에 앉아 김설문 요리사와 대화하면서 튀기는 모습도 보면서 드시라고 권합니다.
최현주
2009년 7월 4일 at 2:04 오후
와 ~~~ 튀김좋아하는데 해산물이 들어간 튀김은 어떤맛일지 …^^
바삭바삭한 느낌..소리가 막 전해지는듯하네요
Uju the Tervuren
2009년 11월 23일 at 1:58 오후
어렸을 적 부모님 졸라서 한번씩 가던 그 서린호텔 템푸라…
알밥 말고 오차즈케에 오신코 정도 내놓으면 더 산뜻할텐데…
꼭 한번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