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진희(38)씨가 ‘이탈리아, 구름 속의 산책’을 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맛본 와인과 맛본 음식에 대한 감상을 적은, 일종의 와인·여행 에세이다. 방대한 정보나 정교한 평가를 담은 건 아니다. “와인은 술이 아닌, 맛없는 음료”라고 여기다가 2년 전 칠레와인 ‘몬테스 알파 M’을 마시고 와인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그. 지 씨는 “저처럼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발짝 더 쉽게 와인에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냈다고 했다.
지진희씨가 와인을 따라주자 혼마 아쓰시씨는 "아내가 알면 혼나겠다"며 황송해하더군요. 대장금때문에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가 봅니다. /사진=이구희 기자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블루밍 가든’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는 놀랄만한 손님 한 명이 와 있었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와인 마니아 ‘혼마 초스케’ 캐릭터의 실존 모델인 혼마 아쓰시(本間敦·44)씨다.
지씨는 “혼마씨는 이탈리아 와인을 일본과 아시아에 널리 알린 공로로, 이탈리아에서는 대통령처럼 대접 받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혼마씨는 “(일본에서 한류스타로 인기 높은 지씨의 책 출간회에) 초대 받았다니까 아내와 직장동료들이 ‘당신이 왜?’라며 질투했다”며 황송해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지난해 8월 도쿄. 지씨가 지인 소개로 신의 물방울 원작자인 아기 다다시 남매를 만나는 자리였다. 마침 지씨가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은 남매가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인 혼마씨를 불러 ‘연결’해 준 것이다.
배우 지진희씨.메를로 같을 줄 알았는데, 카베르네 소비뇽 같더군요. 물론 순전히 제 개인적 느낌입니다.
사진=이구희 기자
지씨는 “그날 혼마씨가 각종 식당과 와이너리 명함을 이만큼(엄지와 검지를 넓게 벌렸다) 가져오셨다”고 했다. 혼마씨는 “처음 갔을 때 감명 받을 수 있는 와이너리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토스카나 지역의 와이너리가 많았죠.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홀리게 할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거든요. 바롤로(Barolo)와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를 생산하는 피에몬테 와이너리도 꽤 됐죠.”
드라마를 통해서 본 지진희씨의 이미지는 ‘다정다감하고 젠틀한 남성’이었다. 와인으로 치면 탄닌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메를로(merlot)랄까. 짧지만 직접 만나보니 ‘남자’ 느낌이 강했다. 탄닌이 풍부하고 체격이 강건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 포도로 만든 와인의 풍미가 입안에 감도는 듯했다. 그는 웨이터에게 “고기 요리 중에서 어떤 게 가장 양이 많냐”고 종업원에게 묻더니 양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해 뼈에 붙은 살까지 맛있게 뜯었다.
혼마씨는 지진희씨를 어떻게 느꼈을까. “배우에게는 외모 외에 지식, 교양, 예의, 청결 같은 내면성이 요구됩니다. 지진희씨는 이 모든 걸 갖췄다고 봅니다. 스마트하면서도 엘레강트(elegant)하고 높은 기품이 있어요. ‘몽라셰(Montrachet)’가 떠오릅니다. 브랜드는 ‘르플레브(Leflaive)’.”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몽라셰는 레드와인을 압도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최고급 화이트와인. 르플레브는 몽라셰 중에서도 최고 중 하나로 꼽히는 와이너리다.
이탈리아와인 전문가이자 ‘신의 물방울’ 혼마 초스케 캐릭터의 모델인 혼마 아쓰시씨. 지진희씨의 흰 옷에 소스가 떨어질까 걱정해 파스타 대신 흘릴 염려가 덜한 피자를주문하더군요. 보기보단(죄송합니다) 훨씬 섬세한 분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분이 메를로 같더군요. 사진=이구희 기자
지씨는 “레드와인보다 화이트와인과 스파클링와인을 즐겨 마신다”며 기뻐했다. “화이트와인은 상큼함이랄까, 신선함이랄까가 좋아요. 톡톡 튀는 스파클링와인은 요즘 어울리죠. 단 스파클링와인을 페리에(Perrier·프랑스 탄산수 브랜드)와 얼음 해서 마시면 시원해요. 스파클링와인과 탄산수가 잘 어울려요.”
지진희씨에게 “혼마씨를 와인에 비교한다면 어떤 와인 같느냐”고 물었다. 와인을 아직 잘 모른다는 그는 혼마씨를 “귀여운 천재 느낌”이라며 “개구쟁이 같지만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서는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지진희씨는 와인을 알고 싶어서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그런데 왜 ‘와인 종주국’으로 꼽히는 프랑스가 아니었을까. “프랑스 와인은 ‘격’이 많이 느껴져요. 어렵다고 할까요. 선뜻 생각이 안 들었어요. 이탈리아는 우리와 같은 반도국가니까 와인도 맞을 것 같았어요.” 혼마씨는 이탈리아 와인의 매력으로 ‘다양성’을 꼽았다. “20개 주에서 2000 종류 와인을 생산합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와인 생산하는 프랑스와 달리, 전국 어디나 좋은 와인이 있죠. 베로나에는 지역 토속음식인 당나귀·말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이, 시칠리아에는 역시 토속음식인 선인장·고추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이 있죠.”
지진희씨는 책에서 “로마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탈 때 나의 입맛은 확실하게 변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와인은 최고의 반찬이다’. 더 맛있게, 즐겁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반찬. 와인은 음식과 먹어야 한다는 걸 이탈리아에서 절실하게 느꼈어요.”
혼마씨는 “와인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매년 제 돈을 200만~300만엔(약 2700만~4000만원)씩 들여가며 와인을 마셨어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가가 됐다고 자만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다지 평가가 좋지 않은 와인을 빨리 처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싼 값에 내놨어요. 기왕 싸게 팔아버릴 거, 한번 더 마셔보자 했어요. 그런데 뭐라 형용하지 못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일부분을 보고 전부로 착각했구나. 그게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6월25일자 주말매거진에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지면이 좁아 많이 잘린 부분들이 아쉬웠는데, 여기서 소개하니 다행입니다. 지씨는 아주 부드럽고 나긋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굵고 단단하고 직선적인 느낌이 강한 ‘남성’이더군요. 반면 혼마 아쓰시씨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혼마 초스케처럼 우악스럽고 거칠고 무식하달까,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인텔리’한 느낌이 나면서 세심하게 상대를 배려하더군요. 하여간 느낌이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구름에
지진희씨 옆에서 ‘황송’해하고 또 쑥스러워하는 혼마 아쓰시씨. 지씨에게 "아내에게 줄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책에 사인해달라는 모습은 살짝 귀엽기까지 하더군요. /사진=이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