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네 생고깃간’ 꽃등심. /이경호 기자
육우(肉牛)는 억울하다. 사람들이 자꾸 젖소로 착각한다. 법적으로 육우는 “고기생산을 주목적으로 사육된 소로서, 한우고기와 젖소고기를 제외한 모든 국내산 쇠고기”의 통칭으로 규정된다.
물론 사람들도 할 말은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국내산 육우는 대부분 ‘얼룩소’ 즉 홀스타인종(種) 수소이다. 젖소는 홀스타인종 암소이다. 그러니까 겉보기에 육우와 젖소는 거의 같다.
하지만 고기 맛은 전혀 다르다. 젖소 고기는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로서 수명이 다한 홀스타인 암소에서 나오는 고기다. 자연 맛이 떨어진다. 홀스타인 수송아지는 거세를 하고 비육사료를 먹여 육우로 키운다. 육질(肉質)이 한우 수준까진 아니라도 꽤 괜찮다. 일반 소비자는 한우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일부 비양심적 고깃집에서 육우를 한우로 속여 파는 건, 역설적으로 육우 고기의 육질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한다.
맛있고 푸짐하다고 소문난 서울의 육우 전문점을 찾아가 먹어봤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한우보다 30~40% 저렴하고 수입고기보단 30~40% 비싼 편이다.
보리네 생고깃간
육우는 거세를 한다. 육우 뿐 아니라 한우 수소도 마찬가지다. 수소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건 노린내를 없애기 위해서다. 거세하면 노린내는 없지만 고기 맛이 밍밍해진다. ‘보리네 생고깃간’에선 이 단점을 보완하려고 보리를 먹인다. 보리 등 곡물을 먹으면 고소한 맛이 진해지고 마블링이 좋아진다.
보리네 생고깃간 ‘보리소 스페셜’. 고기도 좋고 양도 푸짐합니다. /김성윤
보리를 먹여서인지 고기에서 짙고 구수한 감칠맛이 난다. 1인분 300g.원래 쇠고기 1인분은 200g이 기본이었지만, 요즘 웬만한 고깃집에선 1인분이 150g이다. 심지어 서울 일부 고깃집에선 120g에 5만원씩 받기도 한다.
보리네 생고깃간 불판. 한가운데 된장찌개 뚝배기를 얹도록 디자인됐습니다.
뚝배기를 얹지앉으면 불판이 달궈지지않더군요. /김성윤
가격은 지점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서울 상암점 기준 꽃등심(300g)3만2000원, 갈빗살(300g)3만2000원, 차돌박이(300g)2만5000원. 다른 육우점과 비교하면 약간 비싼 편이나 육질이 우수하다. 등심·안심·갈빗살·차돌박이 따위가 모둠으로 나오는 ‘보리소 한마리’(1kg) 5만5000원, ‘반마리’(600g)4만원. 꽃등심·치마살·안창살·토시살·제비추리 등 특수부위로 구성한 ‘보리소 스페셜’(1㎏) 8만5000원. 돼지고기도 괜찮다. ‘보리돼지 한마리’(1㎏) 3만원, ‘반마리’(600g)2만원, 생갈매기살(300g)1만5000원, 생오겹살·생삼겹살(300g)1만1000원.
보리네 생고깃간 육회.단맛 짠맛 감칠맛 등 맛의 균형은 좋은데, 전체적으로 약간 싱겁더군요.
물론 제 입맛에는 그렇단 말입니다. /김성윤
전국에 20여 분점을 뒀다. 상암점(02-6393-5192), 보라매점(02-845-5525), 양평점(02-2634-6692) 등 서울에는 서남쪽에 몰려 있다. www.borine.co.kr
농심가 정육식당
가게로 전화 걸면 “안녕하세요. 돼지고기 가격으로 쇠고기를 드실 수 있는 정육식당입니다”라는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온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돼지고기 가격으로쇠고기를 드실 수 있다"는 말이 과장 같지 않습니다. 농심가 정육식당 ‘점장 추천 특별메뉴’입니다. 매우 푸짐하더군요. /김성윤
등심·안심 따위로 구성한 ‘소한마리’(800g)3만9000원, 살치살·토시살·안창살·제비추리처럼 구이용으로 인기 높은 부위로 구성한 ‘특수부위’(300g).주인은 “기왕 쇠고기 먹을 거면 등급 좋은 고기를 맛있게 먹으라”면서 ‘점장 특별 추천메뉴’(1kg·49000원)를 권했다.
꽃등심은 자르지 않고 큼직한 덩어리째 나오더군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김성윤
구이판이 뜨겁게 달궈지면 고기와 함께 나오는 지방 덩어리를 고루 발라준 다음 굽는다. 고기가 약간 싱겁지만 아주 싱싱하고 건강한 맛이 난다. 지방도 느끼하지 않고 맑고 신선한 느낌이다.
고깃집에 가서 양념구이가 없으면육회를 시켜봅니다. 요리솜씨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농심가 육회는달콤짭짤하게 양념한소 살코기를 달걀 노른자, 채썬 배와 무쳐 먹습니다.
맛의 균형, 농도 등아주 맛있습니다. /김성윤
‘육회’(1만8000원)도 맛있다. 지방 없는 부위를 가늘게 썰어서 역시 가늘게 썬 배와 다진 마늘, 설탕, 참기름, 간장에 살짝 무친 다음 달걀노른자를 얹어 낸다. 종업원이 말릴 틈도 없이 육회와 노른자를 버무려 상에 놓는 건 아쉽다. 차진 쇠고기와 아삭한 배가 만드는 대비가 좋다. 너무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은 양념 솜씨도 괜찮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4578 (02)849-8221 www.nongshimga.co.kr
백제정육식당
엄청나게 많이 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식당을 유명하게 만든 ‘육회’(500g 2만5000원)부터 주문했다. 푸짐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쇠고기 ‘산(山)’이 나온다. 아주 얇게 썬 쇠고기를 배, 파, 참깨, 설탕, 참기름, 간장 등으로 버무리고 노른자를 얹어 낸다.
‘백제정육식당’을 유명하게 해준 육회. 뷔페식당에서 쌓아둔 것처럼 양이 엄청납니다. 그런데너무 차갑더군요. 고기 먹다가 이가 시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육질도 썩 좋은 편은 아니고요. /김성윤
푸짐하긴 한데 육질은 떨어진다. 육질을 말하기에 앞서 고기가 너무 얼었다. 노른자를 터뜨려 무치면 고기에 버무려지는 게 아니라 차갑게 들러붙는다. 육회 먹다가 춥다고 느끼긴 처음이다.
백제정육식당 등심.딱딱하게 얼어 있습니다. 언뜻 보아도 육질이 아주 좋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알루미늄 호일을 깐 불판에 쇠비계를 녹여 바르고 고기를 구워 먹습니다.육즙이 빠져 밍밍합니다. /김성윤
‘등심’(500g·3만5000원), ‘아롱사태’(500g·2만8000원), ‘차돌박이’(500g·2만8000원), 차돌과 아롱사태가 반씩 나오는 ‘모둠’(500g·2만8000원) 등 구이용 고기도 육질이 훌륭하진 않다. 거세육이라선지, 얼린 고기라 그런 건지 밍밍하다. 하긴 1인분에 무려 500g씩이나 주면서 3만원도 받지 않는 식당에서 육질을 기대한다는 게 웃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종로5가 백제약국 왼쪽 골목으로 약 100m 들어가 오른쪽. (02)762-7491
우시장 포장마차
서울 금천구 독산동 우시장 입구에 ‘포장마차’라고 하는, 쇠고기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가게들이 떼지어 있다. 대부분 육우를 전문으로 한다. 포장마차는 ‘협동호’ 식으로 부른다. ‘협동100호’ ‘협동9호’ 등이 이름났다. 협동100호의 경우 육우를 이틀에서 사흘 정도 숙성해 낸다. 숙성을 통해 심심한 육우 맛을 어느 정도 보완한다. 대부분 식당에서 안창살·토시살·제비추리·차돌박이 등 ‘모둠’을 1인분 200g에 1만5000원 받는다. 우시장에 있는 고깃집들답게 일반 고깃집에서 맛보기 힘든 등골, 처녑따위 부위도 낸다.
/10월15일자 주말매거진에 쓴 기사입니다. 이 정도면 굳이 한우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더군요. 가격을 떠나서 맛만 따져봐도 말이죠.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