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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분통 터지게 느리지만 그리운 이탈리아 - 김성윤의 맛
분통 터지게 느리지만 그리운 이탈리아

이탈리아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속도’다. 이탈리아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은 모든 게 빨랐다. 식당 종업원은 뛰듯 음식을 나른다. 서무에게 명함을 부탁했더니 3시간 만에 명함 2통을 갖다준다. 심지어 ATM도 빠르다. 이탈리아에선 신용카드를 우겨넣듯 힘껏 밀어야 ‘득득득득’ 천천히 들어간다. 한국에선 마치 손에서 뺏어가듯, 신용카드가 순식간에 빨려들어간다.

인터넷은 빠르다 못해 감동스런 수준이다. 이탈리아에서 아이패드를 샀는데, 조선일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으려다 포기했다. 다운로드 속도가 워낙 느려서 밤새 켜놔도 받을 수가 없었다. 조선일보 앱뿐이 아니다. 한국의 앱이나 인터넷 웹사이트는 용량이 커서 이탈리아의 느린 인터넷망에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중국 상하이에 사는 동생 부부가 “요즘 인터넷 때문에 애국자됐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빠른 거라곤 커피가 유일할 듯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처럼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들에게 커피란 대화나 만남의 매개체가 아니다. 이른 아침이나 나른한 오후 정신 번쩍 차리기 위한 각성제이다. 바(bar)에서 서서 커피를 마신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한두 입에 후딱 마시고 바를 나선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하여간 이탈리아는 느리다. 느린 게 아니라 시대에 뒤쳐진 듯했다. 일 년 동안 세들어 산 집은 인터넷이 없었다. 집주인은 인터넷 부재에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직접 통신선을 깔겠다니까 “6개월 걸린다”고 했다. 휴대전화는 아예 터지지 않았다. 벽을 무슨 재료로 얼마나 두껍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집에만 들어오면 휴대전화 화면의 신호 세기 막대가 사라졌다. 집주인에게 항의 하려다가 집주인이 대문 밖에 나와서 휴대전화 받는 걸 보고 그만뒀다.

한국에서 부쳐준 우편물은 두세 달 지나야 받아본다. 특송우편(Express Mail)으로 부쳐도 그랬다. 이탈리아 우체국은 비효율적이기로 악명 높다. 함께 대학원에서 공부한 일본 여대생 유이가 특송우편에 트랙킹(tracking)을 걸어봤다. 우편물 위치를 휴대폰으로 알려주는 서비스 말이다. 이 트래킹 서비스에 따르면 도쿄 사는 유이의 부모가 부쳐준 박스가 일본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데 이틀 걸렸다. 그러더니 트레킹 서비스가 멈췄다. 2개월쯤 지나서 박스가 학교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우편시스템 어딘가에 걸려서 허송세월 하다가 겨우 찾아온 것이다. 그나마 검사에 들어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유이는 자위했다. 이탈리아 세관은 외국에서 오는 우편물을 무작위로 찍어서 검사하는데, 얼마나 걸릴 지 모르는데다 검사 비용을 수신자가 부담해야 한다.

바짓단 줄이기는 한국에선 옷가게에서 바로 그것도 공짜로 해주는 간단한 수선이다. 이탈리아에선 오래 걸릴뿐 아니라 비싸다. 베네통(Benetton)에서 세일하길래 바지를 15유로인가 주고 샀다. 동네 세탁소에 가져가 바짓단을 줄여달라 하고 가격을 물었다. 10유로란다. 게다가 2주가 걸린단다. 비싼 수선비는 둘째치고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떠듬떠듬 안되는 이탈리아말로 물었다. 세탁소 주인은 “내주에 부활절이 있어서”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봄에는 부활절, 여름에는 바캉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때문에 나라 전체가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한국의 효율과 속도에 익숙하다면 이탈리아 생활은 절대 권하지 않겠다. 분통 터져서 명대로 못산다. 외국에 나가보니 한국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그런데 왜 ‘게으른’ 이탈리아보다 못살까. 국민소득도 우리보다 높지만, 행복지수는 훨씬 더 높아 보였다. 우리가 열심히 뛰긴 하는데 목표에서 살짝 각도가 어긋난 건 아닌가 모르겠다. 각도가 틀렸다면 열심히 뛰면 뛸수록 목표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분통 터지도록 느리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목표를 정확하게 쳐다보며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일년 전보다 더 빡빡해진 편집국 풍경을 보면서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부러웠고, 이탈리아 생활이 그리웠다.

/챠오! 여러분(사실 여러분이 누구신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적조했습니다. 일 년 동안 이탈리아 연수 다녀왔습니다. 한국 그리고 회사 복귀한 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습니다. 이제야 한국의 속도와 효율에 몸이 적응하는 듯합니다. 지난 일 년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기 써볼까 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디아리오 이탈리아’ 즉 ‘이탈리아 일기’라고 정했습니다. 자주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우선 지난 일 년을 전체적으로 돌아본 글입니다. 조선일보 사보(社報)에 썼던 글입니다.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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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맞은 첫 날 첫 식사. 열흘 묵으려고 예약한 파르마에 있는 B&B’일 자르디노 나스코스토(Il Giarnidon Nascosto)’에서 정성스럽게 차려준 아침식사입니다. 여기서 일 년을 세입자로 지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어쩌다 이곳에서 살게 됐는지는 차차 말씀드릴게요.

5 Comments

  1. 김인철

    2011년 5월 14일 at 11:18 오후

    김 기자님! 이탈리아의 생생한 현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단상.. 앞으로도 기대 됩니다!^^ 재밌어라!! 바지단…트랙킹ㅋㅋㅋ   

  2. sophie

    2011년 5월 23일 at 1:51 오후

    웰컴 백 김 기자님! 드뎌 돌아오셨군요. 혹시나하고 매일 들어와보던 중 "행가집"에 난 기사보고 근황을 알았는데 드뎌 귀환하셨군요. 정말 반가워요~~~.    

  3. 오병창

    2011년 5월 27일 at 11:49 오전

    귀국을 축하 합니다. 음식 이야기, 좋은 식당 추천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태리 먹자 여행을 같이 한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4. kleetraveler

    2011년 6월 22일 at 7:38 오후

    재미 있는 이야기 많이 기대 됩니다.   

  5. 구름에

    2011년 6월 23일 at 12:01 오후

    어서 써야할텐데 게을러서…^;; 지금 케냐 취재왔습니다. 돌아가서 글 올리겠습니다. 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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