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숙성시킨 참치 뱃살 초밥(앞)과일반 참치 뱃살 초밥. 열흘 숙성된 참치는 우리가 흔히 아는 참치의 선홍빛이 아닌 갈색 느낌이 나더군요. /사진=김성윤
나카자와 게이지(中澤圭二·48)씨가 생선감 진열대에서 흰 거즈로 감싼 덩어리 하나를 꺼냈다.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거즈를 펼쳤다. 초밥용으로 다듬은 큼직한 참치 뱃살 덩어리였다. 흔히 보는 선명한 붉은색이 아니었다. 갈회색이었다. 상하기 직전 생선처럼 보였다. 나카자와씨가 시퍼렇게 날 선 칼로 참치살 한 점을 떠냈다. 붉은빛이 깊다 못해 검은 속살이 드러났다. 나카자와씨가 “열흘 숙성시킨 참치 뱃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무통에서 밥을 덜어 참치살과 함께 쥐었다. 전통 무용수처럼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이다. 나카자와씨가 초밥을 내밀었다. “이것이 진짜 에도마에즈시(江戶前すし)입니다.”
나카자와씨는 일본에서 ‘스시계의 우두머리’라고 불린다. 신주쿠에 있는 그의 가게 ‘스시쇼(すし匠)’는 좌석 11개가 전부인 작은 가게이다. 예약 손님만 받는다. 1인당 한 끼 가격이 우리 돈으로 50만원이나 된다. 그래도 손님이 몰린다. 오후 6시 시작하는 저녁 식사 1부와 8시 30분 2부가 꽉 찬다.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 서베이’ 도쿄판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하는 등 도쿄 최고의 스시집으로 꼽힌다. 스시요리사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스시요리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카자와씨는 “요즘 일반적으로 먹는 (날생선을 얹는) 스시는 역사가 50여 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일본에서 초밥이 발달하는 건 7세기 무렵부터다. 붕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한 다음 소금에 절이고 밥을 채워 삭혔다. 한국의 식해와 비슷하지만 삭은 밥은 걷어내고 생선만 먹었다는 점이 다르다. ‘익힌 초밥’이라는 뜻으로 ‘나레즈시(熟れすし)’라고 부른다. 16세기부터는 생선 속이 아닌 도시락 같은 틀에 밥과 자른 생선살을 함께 담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달 동안 숙성시켜 먹었다. 식초를 사용하고 발효과정을 생략하기도 하게 된다. 이때부터 삭힌 생선을 밥과 함께 먹었다. 오늘날의 초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19세기 중반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선 식초로 간 한 초밥에 숙성시킨 생선살을 올려 먹는 초밥이 등장했다. 나카자와씨는 “하나야 요헤이(華屋與兵衛)가 얇게 썬 생선을 식초 친 밥에 얹어 판 것이 인기를 끌면서 초밥집이 에도(江戶·도쿄의 옛 이름)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초밥집은 노점 형태였지요. 초밥장사꾼들이 에도성(城) 앞에서 미리 만든 초밥을 늘어놓았죠. 손님들은 그 앞에 서서 집어먹었죠. 요즘 스타일의 초밥을 에도마에스시라고 하는 건 에도성 앞에서 팔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손으로 쥐어 만든다고 해서 일본어로 ‘쥠’을 뜻하는 ‘니기리(握り)’를 붙여 ‘니기리즈시(握りすし)’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 흔히 먹고 있는 냉장·냉동기술이 보편화된 1950~60년대 이후에 나왔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갓 잡은 생선을 도시에서 먹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나카자와씨는 “생선을 상하지 않게 하려면 숙성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선어(鮮魚)와 활어(活魚)는 1950년 가공·냉동시설을 갖춘 저인망 어선 등장, 1956년 컨테이너 발명, 1960년 저온냉장 화학기술 이용 저온 유통체계가 구축되는 등 기술적 발전 이후 가능해졌다. 나카자와씨는 “일본에서 신선한 날 생선을 사용하는 스시가게가 도쿄에 퍼지게 된 건 쇼와(昭和·1926~1989년) 중기 이후”라고 말했다. 지금 일본에선 숙성된 생선과 날생선을 쓰는 초밥 모두를 ‘에도마에즈시’라고 부른다.
나카자와 게이지씨가 붉은 식초로 간 한 샤리(초밥용 밥)과 일반 식초를 쓴 샤리를 비교해 보여주며 자신의’오리지널 에도마에즈시’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니다. /사진=김성윤
나카자와씨는 자신처럼 숙성시킨 생선을 사용하는 게 “오리지널 에도마에즈시”라고 했다. 1978년 요리계에 입문한 그는 “신선한 날생선을 사용하는 스시가게가 도쿄에 퍼진 건 1960년대 이후”라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는 숙성 생선초밥은 거의 사라지고 프레시(fresh) 초밥이 대세를 이뤘다”고 했다. 그는 1993년 스시쇼를 개업하면서 에도마에즈시의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과거엔 기술이 없어서 생선을 숙성시켰습니다. 제가 생선을 숙성시키는 생선초밥의 맛을 위해서입니다.”
나카자와씨가 생각하는 생선초밥의 맛은 ‘균형’과 ‘어울림’에서 온다. 균형은 감칠맛과 산미(酸味)의 조화이다. 그는 “감칠맛과 산미는 숙성을 통해 깊어진다”면서 “냉동참치는 산미가 없어 맛있다는 느낌이 없다”고 했다. 어울림이란 초밥과 생선, 고추냉이(와사비), 간장이 섞이며 맛을 완성시키는 것을 말한다. “숙성시킨 생선이라야 초밥을 입에 넣었을 때 샤리(초밥용 밥)와 네타(초밥에 얹는 생선)의 어울림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나카자와씨가 생선을 숙성시키는 기간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생선에 따라 다르다. 참치는 큰 덩어리로 다듬어 서늘한 곳에서 열흘 정도 숙성시킨다. 고등어, 전어 따위 등푸른 생선은 소금에 절여 식초로 씻는다. 광어 같은 흰살생선은 다시마로 감싸 수분을 제거하고 감칠맛을 증가시킨다. 소금과 쌀을 섞은 용액(시오코지)에 담가두기도 한다. 그는 생선 숙성을 극한(極限)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나카자와씨가 냉장고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쿰쿰한 냄새가 퍼졌다. “시오코지(쌀과 소금을 섞은 용액)에 다섯 달 숙성시킨 참치입니다. 3년 숙성시킬 계획입니다.” 스시쇼에서 연수 중인 롯데호텔 일식요리사 정병호씨는 “한국 손님들은 생선이 상했다고 먹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다 큰 전어를 사용한 초밥(앞)과 새끼 전어를 두 마리 써서 만든 초밥. 흔히 ‘히카리모노’라고 하는 등푸른 생선을 초밥용으로 사용할 때 흔히 처리하는대로, 소금에 절였다가 식초에 씻어 사용합니다. /사진=김성윤
나카자와씨는 10월에 한국에 와 롯데호텔에서 자신의 ‘원조 에도마에즈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이 행사 준비를 위해 최근 서울을 찾아 생선을 비롯한 식재료를 살펴보고 한국음식도 맛봤다. 나카자와씨는 “한국에서 김치를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고 감탄했다. “일본에서 파는 일본인 입맛에 맞춰 덜 숙성시키고 덜 맵고 더 단 김치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숙성을 통해 어우러진 강렬한 매운맛과 신맛, 감칠맛이 대단했어요. 이런 맛을 이해하는 한국인들이라면 제가 추구하는 숙성된 생선초밥을 이해하리라 봅니다.”
/8월30일자 신문에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지면에서는 복잡한 연도나 수치, 역사 부분이 꽤 생략됐지요. 진지하고 열정적 자세로 스시에 임하는 나카자와씨의 태도가 존경스럽고 또 무서웠습니다. 구름에
문복록
2011년 9월 1일 at 8:40 오전
쌀이 귀햇든 일본 생선이라도 오래두고 먹어야 하니..발달된 음식인데…미국식품허가된 제품 아니다 먹을수 없다..치즈..중에 고약한 냄시 로프치즈 ..아이고 맛이라니. 그런생선을 돈주고 먹고…이게 세상이다…
나야나
2011년 9월 1일 at 6:09 오후
5개월 숙성 시킨 참치를 보면 내 느낌에 이 사람이 숙성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에 보면 에도 시대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슨 에도 시대에 플라스틱통이 있었는가. 장독같은 곳에서 숙성을 시켰겠지. 우리도 묵은 지가 장독 묵은 지와 단지 묵은 지의 차이가 나지 않던가?
technics
2011년 12월 30일 at 7:55 오전
저거 숙성된 스시보니 스페인의 햄 (jamon 하몬)과 비슷하다 생각됩니다. Jamon serrano몇개월 숙성과 jamon iberico 최하 1년이상 숙성, 물론 base 가 다르지만, 하몬 이베리꼬가 더 좋은거죠. 가격은 스페인 가격기준으로 세라노가 소비자 가격이 kg당 약 10 euros 정도, 이베리꼬는 이의10배도 넘습니다. 도토리만 먹여키운 돼지는 더 쳐주죠. 일명 pata negra 빠따 네그라라고도 합니다. 이거 한접시와 좋은 포도주와 곁들이면 최상이죠. 물론 하몬은 안전수칙 다 지켜 만들어 진다는게 다르겠지만, 더 짙은 색갈이며 가격이며 하몬을 연상케 하는군요. 사진뒤가 serrano 앞이 iberico를 연상 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