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과 장아찌에 빠진 프랑스 최고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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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요리사 파스칼 바르보와 사찰음식전문가 우관 스님이 경기도 이천 감은사 텃밭에서 배추 속잎을 뜯어 먹으며 사찰음식, 한식, 김치, 장아찌에 대해서이야기하는 모습니다. /사진=이덕훈 기자

“간장은 끓여서 붓나요, 그냥 붓나요?” “왜 끓였다가 식혀서 붓나요?” “물을 섞나요, 그냥 간장만 붓나요?” “저기 다른 장아찌는 매운맛이 나던데, 고춧가루를 섞나요?”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된다고요?” “다른 재료는 넣지 않나요?” “며칠이나 절이나요?” “얼마나 삭혀야 가장 맛있나요? 이건 얼마나 된 건가요?”

우관(佑觀) 스님 앞에 펜과 메모지,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쥐고 앉은 파스칼 바르보(Barbot·39)는 요리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의 모습이었다. 스님이 산초 열매와 잎으로 담근 장아찌를 보여주자 질문을 쏟아부었다. 쓰고 찍고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르보의 질문 공세에 ‘질린’ 스님이 한 마디 했다. “참 별 걸 다 물어보네.” 말은 그래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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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관 스님이 음식 만드는 모습을 열심히 관찰하며 적고 묻는 파스칼. 진짜 학생 같지 않습니까. 사진=김성윤

바르보는 프랑스에서 “천재 요리사”로 불리는 이다. 2000년 10월 파리에 자신의 식당 ‘라스트랑스(L’Astrance)‘를 오픈한 지 5개월만인 2001년 3월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Michelin)으로부터 별 하나를 받았다. 29살에 불과한 요리사가 그것도 식당을 열자마자 미슐랭으로부터 ‘스타’를 받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무겁고 진한 소스, 크림, 버터를 배제하고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가볍고 건강한 그의 요리에 “프랑스 요리를 재정의했다”는 격찬이 쏟아졌다. 그의 식당에서 식사하려면 최소 2개월 전 예약해야 한다. 2005년 미슐랭 별 둘, 35살이던 2007년에는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았다. 30대 중반 불과한 나이에 요리사로서 평생을 바쳐도 힘든 성취를 이룬 셈이다.

바르보는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4일까지 열린 ‘서울 고메 2011’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한식을 세계 최고 요리사들에게 선보이고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음식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한 행사였다. 한국도 한식도 처음인 바르보는 한식에 푹 빠졌다. 지난달 30일 한국에 도착해 전주와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양재동 하나로마트 등을 다니며 한국음식을 맛봤다. 지난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서 그는 고추장으로 만든 젤리를 곁들인 가리비와 굴 요리, 호박으로 담근 김치를 곁들인 쇠고기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한식을 맛본 지 이틀 만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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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막을 얇게 저며 김치로 만들고 그 속에 역시 호박으로 만든 무스를 넣은 가니시를 곁들인 쇠고기 스테이크(위)와 고추장 젤리와 유자 소스를 곁들인 가리비와 굴 요리. 지난 1일과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그의 갈라디너 행사에 그가 내놓은 요리들입니다. /사진=신라호텔 제공

특히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 장류와 장아찌 같은 토종 한식이 이 프랑스 최고 요리사를 사로잡았다. 바르보는 장아찌에 대해 “어떤 화학적인 맛도 가미하지 않고 간장과 물만을 사용해 끓이고 붓기를 반복해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했다. 한국음식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음식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돌아가는 일정까지 연기했다. 버스까지 빌려서 자신의 식당 스태프 3명까지 데리고 지난 5일 토요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감은사(感恩寺) 주지이자 사찰음식 전문가인 우관 스님을 만나러 왔다.

우관 스님은 음식 만들기에 앞서 바르보 일행을 절 주변 텃밭으로 데러갔다. “자연농법을 합니다. 씨만 뿌리고 그냥 때가 되면 뽑아 먹기만 해요. 게으른 사람이 하기에 제일 좋은 거여.” 스님이 무 하나를 쑥 뽑더니 흙을 툭툭 털고 칼로 얇게 잘라 바르보에게 건넸다. “마법 같아요. 신기하네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지… 하나도 매운맛이 없고 아삭아삭한 질감도 좋네요.”

우관 스님과 바르보가 배추밭에 쭈그리고 앉았다. 스님이 여리고 흰 배추 속을 손으로 뜯어서 바르보에게 먹어보라고 줬다. “스님은 배추를 날로 먹나요 익혀서 먹나요?” “익혀도 먹고 날로도 먹고 말렸다가 무치거나 국 끓이기도 하고 장아찌를 담기도 하죠.” “하나의 재료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맛과 질감을 연출할 수 있다니, 요리의 깊이가 대단합니다.” 스님이 배추밭 이랑에 마음대로 자라는 풀을 뜯었다. “이게 냉이란 거여. 다 먹는거야.” “아, 알아요. 프랑스에도 이 허브 있어요. 샐러드로 먹으면 맛있죠.”

우관 스님과 바르보는 텃밭에서 장독대로 이동했다. “모든 한국 음식은 장(醬)에서 시작합니다. 11월 말부터 장을 담그는 시기죠. 콩을 삶아서 메주를 만들고 띄워서 100일 지나 메주 건져서 치대면 된장이 되고, 남은 국물은 간장이 되는거요. 간장과 된장을 담그러면 최소 1년이 걸립니다. 진정한 슬로푸드지요.” 스님이 3년 묵은 고추장을 퍼서 바르보에게 맛보게 했다. “울랄랄랄라~! 짜지도 않으면서 달고 구수한 향이 입안에 오래 여운으로 남는군요. 대단합니다.” 바르보는 고추장 담그는 법을 스님에게 꼬치꼬치 묻고 또 물었다. 절에서 서울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바르보는 양재동 하나로마트에 들려 고춧가루, 메밀가루, 쌀조청 등 고추장 담글 재료를 잔뜩 구입했다. 그는 “파리에 돌아가 고추장과 장아찌를 직접 담가볼 계획”이라고 했다.

바르보와 우관 스님은 텃밭에서 캔 채소와 장독대에서 푼 된장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된장국에 넣을 애호박을 나무 숟갈로 잘라 넣고 채소를 손으로 끊어 넣는 장면을 바르보는 놓치지 않고 “왜 칼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채소는 살아있잖아요. 생명이 상하지 말라고 칼을 대지 않지요. 한국에선 채소에 쇠가 닿으면 비린내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로 만든 칼을 쓰기도 했죠.” 바르보는 대단히 놀라는 표정이었다. “채소를 덜 다치게 하기 위해 칼을 쓰지 않고 수저나 손을 사용하는군요. 요리를 통해서 음식에 제2의 삶을 부여한다는 것이 저의 요리 철학입니다. 그런 저의 생각과 통하는군요.”

바르보와 함께 만든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함께 한 우관 스님은 “당신의 요리에 새로운 영감을 얻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바르보는 “많이 배우고 돌아간다”고 답했다. 바르보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스님의 대답이 쉴틈 없이 덧붙여졌다. 둘이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우관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달라도 대화가 통하네. 요리의 언어로 대화하는 거지.”

/11월10일자 조선일보 문화면에 실린 기사의 원문입니다. 스님도 말씀하셨지만, 서로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이 비록 통역을 거쳤다 하더라도 그렇게 대화가 잘 통할 수 있는가 신기했습니다. 요리의 언어인지, 선문답인지. 처음 그의 음식과 요리철학을 접하고 ‘사찰음식과 통하겠다’하고 만남을 주선했던 것인데, 예상대로 둘 다 매우 기뻐했고 얻는 것도 많아 취재를 넘어 보람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구름에

1 Comment

  1. 유머와 여행

    2011년 11월 11일 at 11:27 오후

    역시 전통의 힘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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