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음식과 투박한 손.고단하고 가난한 세월이 그대로 묻어납니다.곤드레밥입니다. 유창우 기자가 찍은 작품입니다.
모처럼 고향에 가서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정성껏 차려준 밥상을 받아 맛있게 먹다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할머니(어머니) 돌아가시면 어디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진짜 영영 사라지진 않을까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혼자서만 그런 걱정을 한 건 아닌가 보다.
강원 평창문화원은 지난 4월부터 ‘산골음식으로 풀어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따리’를 진행하고 있다.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주민 140여명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평생 먹어왔던 음식 이야기를 글과 사진에 담아 기록으로 남기는 프로젝트이다.
지금이야 길이 매끈하게 닦여 그런 느낌이 덜하지만, 도사리 또는 도사마을은 평창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마을사람들은 “옛날에 ‘김도사’라는 분이 살았다고 해서 도사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어른들한테 들었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평창문화원 고창식(71) 원장은 “도사리 주민 평균 연령이 65~70세 정도”라면서 “이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이 음식들도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고 원장은 “옛 음식 만들어 함께 시식하는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생애와 문화 경험, 지식을 재발견하고, 나아가 지역의 소득 증대와 연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쯤 마을 주민들이 경로당에 모였다. 이때부터 오후 2~3시까지 살아온 인생과 먹어온 음식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만들었다. 소설가 김도연씨가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었고, 사진작가 최광호씨가 음식을 촬영했다. 마을 부녀회장 김봉자(57)씨는 “고스톱이나 치는 대신 음식 만들어 나누고 얘기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평생 산골에 산 이들에게 대단하게 드라마틱한 이야기나 진기한 별미는 없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누구한테서나 들을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소박한 삶이고 밥상이다. 그래서인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12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발간될 음식과 이야기 중 일부를 미리 맛보고 들어봤다. 문의 도사리경로당 (033)333-0506, 평창문화원 (033)332-3546
특별할 것 없는 재료와 대단할 것 없는 솜씨로차린 밥상이 왜 그렇게 맛나던지요. 아마 정성으로 양념해 그럴 겁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밥상이 다 그렇지요. 도사리 분들이 흔히 먹는 음식들입니다. /사진=유창우 기자
도사리 주민들의 음식 레시피 그리고 살아온 이야기
도사리에서는 직접 재배한 감자·옥수수·배추와 산에서 얻은 나물, 동해에서 잡히는 코다리를 활용한 음식이 많다. 쌀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대가족을 먹이기 위해 낟알 벗긴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밥, 나물국죽, 감자투생이 따위가 대표적이다. 닭고기를 갈아서 두부와 섞어 큼직하게 완자처럼 빚은 ‘닭반데기’는 강원도는 물론 평창에서도 도사리에만 있는 음식이다. ‘반데기’는 반죽한 가루나 삶은 푸성귀 따위를 평평하고 둥글넓적하게 만든 조각을 뜻하는 ‘반대기’의 잘못 또는 사투리로 보인다.
곤드레밥
재료: 곤드레 나물 1㎏, 쌀 1㎏, 들기름 3큰술
따박장(양념장) 재료: 막장 5큰술, 물 1/2컵, 다진 파·마늘 각 1/2작은술, 양파 1/2개, 감자 1개, 표고버섯 2개, 애호박 1/3개
1. 곤드레 나물을 20분 삶아 건져내 물기를 꼭 짜고 3㎝ 길이로 썬다.
2. 솥에 불을 지피고 달군 다음 들기름을 두르고 곤드레 나물을 2~3분 볶는다. 불린 쌀을 얹고 물을 맞춰 밥을 짓는다. 나물이 있는 것을 감안해 물을 평소의 80% 정도만 부어야 완성된 곤드레밥이 질지 않다.
3. 밥이 익는 동안 따박장을 만든다. 냄비에 물을 넣고 막장을 푼다. 감자와 양파, 표고버섯, 애호박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넣는다. 다진 파와 마늘을 더해 감자가 익을 때까지 끓인다.
4. 곤드레밥에 따박장을 곁들여 낸다.
– 따박장이 없으면 간장 1/2컵, 청양고추 1개, 다진 마늘·파 1/2작은술씩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도 된다.
“취나물은 뒷산 가머후비(뒷산의 이름)에 가믄 많이 있어. 곤드레는 보마귀골에 고사리는 땀봉산, 오가피는 거시막골, 팥고비는 너드게터골에 가믄 많이 있어. … 산나물 이름만 대봐, 내가 알코줄게(알려줄게). 알코줘도 못 찾아, 내가 같이 가야지. 나물 한 보따리 뜯어 이고 집에 와. 말리고 얼리고 절임도 담그지. 우리 시누이 부산서 한정식을 크게 해. 시누 양반, 내가 뜯어 보낸 나물 강원도 보양이라 해. 다시 찾는 손님들도 강원도 보약 먹으로 온단대.”-김봉자 도사리 부녀회장(58세)
나물국죽
재료: 곤드레 나물 250, 쌀 500, 멸치 20, 감자 5개, 물 3컵, 고추장 1큰술, 소금 1/2작은술
1. 물에 고추장을 푼다. 감자는 반달 모양으로 납작하게 썬다.
2. 냄비에 1의 고추장과 감자, 멸치, 곤드레나물을 넣고 센불에서 눌어 붙지 않게 저어가며 끓인다. 감자가 익을 때쯤(약 10분) 쌀과 소금을 넣고 쌀이 퍼질 때까지 15~20분 더 끓인다.
“친정에선 입쌀(멥쌀) 구경은 했는데 시집 오니 감자 옥수수밖에 없어. 맏동서 아기 품고 낮잠 잘 때도 난 혼자 두루먹(짚으로 엮은 주머니) 등에 메고 산으로 산으로 나물 뜯으러 갔었어. 곤드레, 딱죽이, 개미취, 미역취, 곤달비. 나물을 뜯어다 감자랑 으깨 먹고 살았어. 한 끼에 감자 두 말씩 깎았는데 한 끼 지나면 다음 때거리가 없어. 산속에서 부스럭 큰 뱀에게 놀라고도 또 뜯으러 가야 해.”-권오정(80세)
취떡
재료: 찹쌀 3되, 떡취 500, 참팥(흰색 팥) 1되, 소금 1작은술
1. 찹쌀을 씻어 12시간 불린다. 떡취를 10분 삶아 씻어 물기를 짜놓는다. 팥은 1시간 정도 포슬포슬하게 삶아 소금 1작은술과 설탕 2작은술을 넣고 찧는다. 쟁반 따위에 펼쳐 놓는다.
2. 불린 찹쌀을 시루에 30~40분 쪄 떡판에 담는다. 준비한 떡취를 더해 떡메로 친다. 떡메가 없으면 반죽기를 사용하거나 인절미를 만들 때처럼 손으로 반죽해도 된다.
3. 떡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준비한 팥에 굴려 골고루 묻게 한다.
– 뒷면이 뽀향게 흰색이면 떡을 해먹는 ‘떡취’, 앞뒤가 다 푸르면 나물 해먹는 ‘나물취’이다.
– 1되는 약 1.8ℓ이다.
“옥수수밥 식으면 한 덩어리로 단단하게 굳어버려. 때마다 옥수수밥 먹기 싫어 몸서리가 나. 벼락 칠 때 죽었으면 해본 적도 있어. 윗대에서 물려받은 빚도 있었거든. 신랑 제대한 후 나는 산판(벌목)사람들을 위한 함바집(건설·작업 현장 식당)을 시작했어. 열댓 명 밥 해주니 우리 식구 쌀밥을 얻어먹을 수 있겠더라고. 그러니 밥 해주는 일, 힘 하나 들지 않더라고. 몇 년 지나 조상 빚 다 갚고 논 25마지기 사고는 그 일 그만뒀어.”-김남옥(60세)
강냉이밥
재료: 찰옥수수쌀 300, 맵쌀 500
1. 찰옥수수쌀을 8시간 정도 물에 불린다.
2. 쌀을 씻어 찰옥수수쌀과 섞어서 물을 맞춰 밥을 짓는다. 밥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반 쌀밥과 비슷한 30~40분쯤이다.
– 찰옥수수쌀은 옥수수를 맷돌에 굵게 간 것을 말한다. 따뜻할 때 먹으면 맵쌀로만 지은 밥과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지만, 식으면 딱딱하게 한 덩어리로 굳는 성질이 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구할 수 있다. 방앗간에 옥수수를 가져가면 빻아주기도 한다.
“얼려 만든 가루는 까만색 떡, 썩혀 만든 가루는 맑은색 떡. 요즘은 품값 안 나온다 밭에 버리지만, 예전엔 (감자를) (부스러기) 한 톨까지 주워담아 걸리고 썩히고 우리고 말리고 채로 쳐 내린 것이 감자녹말가루. 반드시 팔팔 끓는 물로 반죽하여 만드는 감자송편, 감자두덕, 감자 뭉그러기. 도랑 계곡 물가에서 감자녹말가루 만드는 일, 아녀자들의 연례행사였어. 감자녹말가루만 해 놓으면 손쉽게 별미 음식 만들 수 있어 든든하거든.”-손원남(82세)
감자투생이
재료: 감자 17개, 소금 1/2작은술
1. 감자 10개의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간다. 면포에 넣고 꼭 짜서 나오는 물을 그릇에 받쳐둔다. 20분 정도 전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윗물은 버리고 감자 전분만 남겨둔다.
2. 1의 감자 전분과 소금을 섞어 반죽을 만든다.
3. 나머지 감자 7개의 껍질을 벗겨 통째로 냄비에 20분 정도 찐다.
4. 2의 반죽을 수제비처럼 뚝뚝 뜯어서 3의 찐 감자에 올리고 20~30분 더 찐다. 반죽이 익으면 감자를 으깨가며 고루 섞어 뜨거울 때 먹는다.
닭반데기
재료: 닭 1마리, 두부 3모, 마늘 1큰술, 소금 2작은술, 파-후춧가루 약간씩
1. 닭은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통째로 간다. 대형마트나 정육점에서 닭을 살 때 부탁하면 갈아준다.
2. 두부를 물기가 없도록 꼭 짠다.
3. 간 닭고기와 물기를 뺀 두부, 마늘, 소금, 파, 후춧가루를 고루 섞는다.
4. 3의 반죽을 큼직한 완자 모양으로 빚어 솥에 넣고 20~30분 찐다.
– 도사리에서는 닭고기와 뼈, 껍질을 모두 함께 갈아서 만들지만, 곱게 잘라지지 않은 뼈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아이가 있다면 뼈는 제거하고 갈아서 준비하는 편이 안전하다.
코다리조림
재료: 코다리 3마리, 식용유 1큰술, 들기름 1작은술, 다진 마늘-파 1큰술씩, 간장 1컵, 물엿 2큰술
1. 코다리를 물에 깨끗이 씻고 물기를 닦는다. 길이 4㎝ 정도로 토막 낸다.
2. 냄비에 코다리를 넣고 식용유, 마늘, 파, 간장, 물엿을 더해 양념이 코다리에 고루 밸 때까지 20~30분 졸인다. 바닥에 깔린 양념을 계속 코다리에 끼얹어 가며 졸여야 맛있다.
코다리김치
재료: 코다리 1마리, 절인 배추 5포기, 무 1개, 고춧가루 500, 멸치액젓 1컵, 설탕 2큰술, 다진 생강·파 2큰술씩, 다진 마늘 5통 분량
1. 코다리를 멸치액젓과 설탕으로 양념해 하루 재운다.
2. 재워둔 코다리에 다진 생강·파·마늘, 멸치액젓을 버무려 김치속을 만든다.
3. 절인 배추에 2의 김치속을 넣어 김치를 담가 익힌다.
– 다진 마늘은 배추 1포기당 1통 분량으로 하면 된다.
/11월24일자 주말매거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소박한 음식도 좋았지만 푸근한 도사리 어르신들 만난 일이 더 기억에 남네요. 책으로라도 이분들의 인생과 음식이 남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구름에
아멜리에
2011년 11월 27일 at 10:26 오전
생태나 조기, 도루묵을 넣고 김치도 만드는 건 알아도 코다리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 코다리는 비린내가 안나는 생선이고 값도 싸서 집에서 코다리찜은 곧잘 만들어 먹거든요.
강원도 음식이나 제 부모님 고향인 함경도 음식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멜리에
2011년 11월 27일 at 10:28 오전
코다리김치 재료도 정말 심플하네요.
유머와 여행
2011년 12월 3일 at 2:38 오후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