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무침회. 맑은봄햇살과, 그리고 그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듯 보이네요. 멋진 사진은 유창우 기자의 작품입니다.
멸치라고 하면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국물을 우리거나 간장과 물엿에 조려진 딱딱하고 작은 생선을 떠올리는 한반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멸치회는 생소한 음식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경남 해안 지역 사람들에게 멸치회는 그리운 봄철 별미이다.
찬 기운이 누그러들고 따뜻한 바람이 파도 위를 살랑거리는 봄이 되면 부산 기장군 대변항이나 경남 통영 등 어항에는 멸치털이가 아침마다 펼쳐진다. 선원 넷이 둘씩 짝을 맞춰 “어기나 차야, 어기나 차야”를 외치며 그물을 털면 멸치 수천 마리가 하늘로 튕겨 올라가면서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는 장관이 펼쳐진다. 이때 그물에서 털려 떨어지는 멸치는 웬만한 남자 어른 손가락보다 굵고 길다. 거의 꽁치 만하다.
멸치철을 맞아 국내 멸치 유통량의 60%를 차지하는 대변항에서는 오는 19일~22일 ‘기장멸치축제’가 열린다. 축제 추진위원회 최용학(54) 본부장은 “2~6월에 잡는 멸치는 ‘봄멸치’라고 따로 부른다”고 했다. “마른 멸치는 대개 9~10월에 잡는 ‘가을멸치’입니다. 육질이 단단한 가을멸치는 말려서 육수용이나 조림용으로 쓰거나 육젓을 담급니다. 산란기를 앞두고 봄에 잡는 봄멸치는 육질이 부드럽고 기름이 올라서 감칠맛이 뛰어나죠. 회는 물론이고 어떻게 먹어도 맛있죠. 액젓을 담그기도 합니다.”
경골어류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멸치는 등은 암청색이고 배는 은백색이다. 세계적으로 멸치과에 속하는 생선은 100여 종쯤이다. 몸길이가 최대 13㎝정도까지 자란다. 이탈리아·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국가 사람들이 올리브오일에 절였다가 먹는 안초비(anchovy)도 멸치의 한 종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어도 조선 후기부터는 대량으로 잡은 것이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어찌나 많이 잡혔던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활동한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한 그물로 만선(滿船)하는데 즉시 말리지 못하면 썩으므로 이를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적었을 정도다.
한반도 연안 바다에서 두루 잡히다 보니 지역에 따라, 크기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경기·함경도에서는 ‘메루치’, 제주도에서는 ‘행어’, 전남에선 ‘멸’, 전북·경남에서는 ‘멸치’, 황해도에서는 ‘열치’라고 부른다. 크기에 따라서는 ‘잔사리’(새끼멸치), ‘순봉이’(큰멸치)라고 부르는데, 더 정확하게는 길이 77㎜ 이상이면 ‘대멸’, 76~46㎜이면 ‘중멸’, 45~31㎜이면 ‘소멸’, 30~16㎜이면 ‘자멸’, 15㎜ 이하를 ‘세멸’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봄멸치와일반 멸치 크기 비교. 봄멸치는 길이가
12cm쯤되네요. 마른멸치는 길이가 3-4cm쯤 되니
‘소멸’이겠네요. /사진=유창우 기자
서울 중구 다동 ‘충무집’ 사장 배진호(57)씨는 “고향인 통영에서는 봄멸치로 회·구이·조림·찌개 등 다양하게 즐기지만, 서울 사람들은 생멸치에 익숙하지 않아 비교적 맛이 무난한 초고추장 무침회와 구이만 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무침회가 인기다.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식초로 씻어 잡내를 제거한 멸치는 검붉은 색을 띤다. 씹을 필요가 없달 정도로 육질이 부드럽다. 고소하면서 기름진데 희미하게 씁쓸한 뒷맛이 입에 남는다. 새콤매콤달콤한 초고추장에 무치면 찰떡궁합. 여기에 미나리와 쑥갓이 향긋한 봄내음을 더하고, 고소한 참깨가 뒷마무리를 한다. 통영·남해 등지에서는 조려서 쌈밥으로도 즐겨 먹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비리달 수도 있다.
배진호 사장에게 좋은 멸치 고르는 법을 들어봤다. “생멸치는 등이 푸르고 배가 불룩 나온 놈이 맛있어요. 비늘이 벗겨지거나 상처가 나지 않아야 깔끔하고 텁텁한 맛이 나지 않아요. 볶음용 마른멸치는 흰색이나 파란색이 살짝 도는 투명한 것이 좋고, 조림용이나 국물용 마른멸치는 은빛이 나고 맑은 것이 좋아요. 기역자로 약간 구부러지고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하고 광택이 나면 상품(上品)입니다.”
/4월11일자 조선일보 본지에 연재 중인 ‘제철우리맛’의 봄멸치 기사 원본입니다. 그 고소하면서 살짝 비릿하면서 매콤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멸치회가 입안에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저녁 때 소주 곁들여 먹어야겠어요.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