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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밥도둑’ 마른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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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를 자린고비는 이렇게 밥상 위 천장에 매달아놓고

밥을 먹었을테지요? 그런 생각으로 연출한 사진입니다.

유창우 기자가 찍었습니다.

짭조름한 감칠맛이 기막힌 굴비는 ‘원조 밥도둑’이다. 구두쇠의 대명사 자린고비가 굴비 한 마리를 밥상머리 위 천장에 매달아놓고 밥 한술 풀 때마다 한번 올려다봤는데, 아들이 두 번 보자 “밥이 너무 많이 먹히지 않느냐”며 혼냈다는 이야기는 굴비의 ‘밥도둑질’ 솜씨를 증명하는 일화로 여태까지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굴비도 철이 있느냐’며 의아해할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굴비는 여름을 앞두고 있는 이맘때 가장 맛있다. 굴비의 원재료는 조기는 제주 남서쪽 수심 30 바다 밑 모래밭에서 겨울을 난다. 겨울이 끝날 무렵 조기떼는 황해로 이동을 시작한다. 5월 산란기에 맞춰 산란지인 연평도 주변 바다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조기 무리가 추자도와 흑산도 근처를 지나 전남 영광 법성포 앞 칠산바다를 지나는 음력 3월 중순 곡우사리 즈음 조기는 산란을 앞두고 살이 통통하고 알이 꽉 차 있다. 이때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는 특별히 ‘오사리굴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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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옛날식으로 바짝 짜게말린 굴비는 찾기 어렵죠. 그래서 굴비에서 굴비가 아니라 북어 맛이 난다고 하시는 분도 있더라구요. /사진=유창우 기자

요즘은 오사리굴비는커녕 법성포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로 만든 굴비도 만나기 쉽지 않다. 소위 ‘진품 영광굴비’는 국내 유통물량 중 5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영광굴비로 팔리는 대부분은 추자도나 목포, 제주도에서 잡혀 올라오는 조기로 만들어진다.

멀리서 잡은 조기를 굳이 영광까지 가져다 굴비로 만드는 까닭은 조기를 진정한 ‘밥도둑’으로 ‘조련’시키기에 영광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법성포만의 특수한 자연조건을 꼽는다. 봄 평균기온이 섭씨 10.5도인데다 서해에서 하늬바람(북서풍)이 불어와 조기를 말리기 알맞다. 습도는 평균 75.5퍼센트. 낮에는 습도가 45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조기가 서서히 마르고, 밤에는 96퍼센트 이상 올라가면서 수분이 몸 전체로 고루 퍼지며 숙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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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 법성포에 있는굴비 덕장. /사진=조선일보DB

영광굴비가 맛있는 두 번째 이유로는 이 지역 사람들의 ‘섭간’ 솜씨가 꼽힌다. 양쪽 아가미와 입, 몸통에 천일염을 뿌려 수분을 빼고 간이 적당하게 배도록 하는 기술을 섭간이라고 하는데,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다른 지역에서 따라오지 못한다. 다른 지역에선 대부분 섭간이 아닌 ‘물간’을 한다. 조기를 소금물에 담가 절이는 방식이다. 손이 덜가고 편하지만 맛은 아무래도 섭간만 못하다. 예전에는 항아리에 소금과 조기를 켜켜이 쌓는 ‘독간’을 하기도 했지만, 워낙 짜서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섭간하거나 물간한 조기는 한 두름(큰 것 10마리, 작은 것 20마리)씩 엮어 15~40시간 재웠다가 묽은 소금물로 네댓 차례 씻어서 걸대에 건조시킨다. 엮는 것도 쉽지 않다. 너무 힘 줘 엮으면 조기가 뒤틀리고, 헐거우면 빠진다. 어떻게 힘을 조절하고 매듭을 맺느냐가 노하우이다. 과거에는 짚으로만 엮었지만 요즘은 짚과 노란색 비닐노끈으로 함께 엮는다. 짚으로 엮어야 말리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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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아시겠지만 나트륨 그러니까 소금 햠량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덜 짜게 만드는

굴비가 유행하게 된 것이겠죠. 감칠맛을 내는 아스파르트산, 글루탐산 성분이 역시 풍부하네요.

“요즘 굴비는 맛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대개 어려서부터 굴비를 맛본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물에 밥 말아서 쪽쪽 찢은 굴비를 얹어 먹으면 입맛이 금새 돌아왔는데, 요즘 굴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광에선 “과거보다 굴비를 덜 짜고 더 촉촉하게 말리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요즘 굴비는 수분이 약 68퍼센트에 염도가 1.25~1.5퍼센트이다. 옛날에는 수분이 50퍼센트 미만이고 염도는 3~5퍼센트였다. 석달씩 꾸들꾸들 말리지 않고 7~14일 정도만 말려 물을 뺀 ‘물굴비’를 냉동시켜 보관하다가 유통시킨다. 과거 냉장·냉동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굴비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짜고 건조하게 말렸다. 냉장고가 흔해지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건강에 해롭다고 짠 음식을 꺼리게 됐고, 덜 말려 더 통통하고 촉촉한 굴비를 선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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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구이.먹어보면 역시 밥도둑이나 싶습니다. /사진=조선일보DB

굴비 본래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옛날식으로 짜고 딱딱하게 굴비를 말리는 업체가 영광에 몇 있다. 이를 다른 굴비와 구분해 ‘마른굴비’ 또는 ‘봄굴비’라고 부른다. 북어처럼 딱딱한 마른굴비를 쌀뜨물에 몇 시간 담갔다가 쪄서 먹거나, 결대로 쪽쪽 찢어서 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이 마른굴비를 먹어보면 ‘굴비의 밥도둑질 솜씨가 여전히 녹슬지 않았군’ 감탄하게 된다.

/5월 25일자 조선일보 문화면 ‘제철우리맛’ 기사입니다. 갑자기 날씨가 후텁지근해졌네요. 찬 찻물에 밥을 말아서 쪽쪽 찢은 마른굴비 엊어 먹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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