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살과 이리로 끓인 대구탕. 거제 등 경남지역에선 대구탕을 이렇게 맑게 끓입니다. 곰탕못잖게 국물이 뽀얗고 시원합니다. 이리에서 우러나오는 맛과 색이랍니다. 사진은 유창우 기자의 작품입니다.
거제도와 마산, 진해를 끼고 있는 진해만(灣)에서는 지금 대구(大口) 잡이가 한창이다. 지난달 말 찾은 경남 거제도 외포항에는 배마다 길이가 1에 육박하는 대구를 수십마리씩 싣고 들어왔다. 포구는 생(生)대구를 사러 온 손님들로 북적댔고, 선창가·길가·지붕 등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김없이 내장을 빼고 나무꼬치로 꿴 대구가 널려 장관을 이뤘다.
대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동의보감’ 등 옛 문헌에 여러 차례 기록됐을 정도로 오랫동안 한민족이 즐겨 먹은 생선이다. 하지만 한때 잡히지 않기도 했다. 남획으로 씨가 마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외포수협 중매인 공경일씨는 “치어 방류사업을 30여 년 전부터 하다보니 대구가 다시 늘어났다”면서 “10년 전부터 어획량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외포항 어민들은 대구가 사라졌던 때를 잊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11월 말부터 3월 초로 대구잡이 기간을 제한하고, 45㎝ 이하 어린 대구는 도로 놔준다. 1월은 치어 방류를 하는 철이라 대부분 어선들이 조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요즘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등에선 대구가 풍어(豊漁)라면서 물량도 넘치고 가격도 떨어진걸까. 공경일씨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서해와 동해에서도 대구가 잡히고 있고, 이 대구가 서울 등 대도시에 나오면서 소비자 가격이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싱싱한 생대구. 큰 놈은 마리당으로, 작은 놈들은 1상자 2~3마리씩 팝니다. 사진=유창우 기자
대구는 명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 길이가 70~75㎝ 정도로 훨씬 크고, 몸 앞쪽이 더 두툼하고 뒤로 갈수록 납작해진다. 먹성이 좋고 그래선지 성장이 빠르다. 3년이면 어미가 되고 10년이 지나면 1 가량 자란다. 수명은 13~14년 정도다.
대구는 여름이면 여름이면 북쪽 차가운 바다로 올라갔다가 겨울이 되면 한류를 따라 동해에서 부산 앞바다 오륙도를 돌아 고향인 남해 연안으로 돌아온다. 산란을 위해서다. 진해만이 주요 산란지이다. 동해에서는 사철 대구가 잡히지만 작고 맛도 떨어진다.
대구는 산란기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산란기이고 가장 맛도 좋다. 요즘 잡히는 대구를 보면 배가 통통하게 불러있다. 대구는 겉모양만 봐서는 암수 구분이 어렵다. 배를 눌러봐서 하얀 이리(생선의 정액)가 삐져 나오면 수컷, 불그스름한 알이 삐져 나오면 암컷이다.
대구는 이례적으로 수컷을 더 쳐주는 생선이다. 공경일씨는 “대구를 탕으로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거제와 부산, 마산, 진해 등에서 즐겨 먹는 대구탕은 곰탕처럼 국물이 뽀얀데, 이것이 수컷 뱃속에 들어있는 곤 때문이란 것이다. “끓는 물에 대구 살하고 곤만 넣어도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요.”
대구는 저지방·저칼리 흰살생선이다. 담백해서 비린 생선을 꺼리는 이들도 어렵잖게 먹을 수 있다. 단백질과 인, 비타민B가 풍부하다. 맑은국이나 매운탕, 조림, 죽 등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뽈찜’은 대구 대가리로 만드는 부산 명물 음식이다. 거제 등 경남 바닷가 지역에선 대구로 떡국을 끓인다.
거제 외포항은 지금 건대구를 만들기 위해 널어놓은 대구 천지입니다. 사진=유창우 기자
진해에서는 알을 아가미를 통해 꺼내 소금에 절여 다시 뱃속에 넣고 그늘에 한두 달 말린 통대구를 ‘약대구’라 부르며 귀하게 대접한다. 알은 알대로, 대가리와 몸통은 물을 붓고 푹 끓여 보신용으로 먹는다. 아가미와 내장, 알 따위는 소금에 절였다가 양념에 버무려 젓갈로 가공한다. 간은 비타민A와 D를 추출하는 의약용 원료로 사용하니, 버릴 게 없는 알뜰한 생선이다.
대구를 회로 먹을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만한 맛은 아니다. 좋게 말하자면 담백하지만, 기름기 없이 퍼석하다. 거제 사람들은 대구를 사흘에서 보름 정도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회로 먹거나 탕을 끓인다. 공경일씨는 “이렇게 하면 육질이 찰져지고 감칠맛이 생겨난다”고 했다. 북어처럼 바싹 말렸다가 죽죽 찢어서 술안주로 먹거나 탕을 끓이기도 한다.
외포항은 국내 최대 대구 집산지이지만, 서울 등지에서 술안주로 흔히 나오는 대구포는 없다. 공경일씨는 “대구포는 여기서 만들지 않는다”며 “진해만에서 잡힌 대구가 아니라 원양어선에서 잡아서 가공한 것”이라고 했다.
대구는 클 수록 살이 많아 먹을 만하다. 체장 45㎝ 이상인 소(小) 대구가 3마리 1상자에 5만8000원, 55㎝ 이상 중소(中小) 대구가 2마리 1상자에 5만8000원, 65㎝ 이상 중대(中大) 대구 2마리 1상자 6만8000원, 75㎝ 이상 대(大) 대구 2마리 1상자 7만8000원, 85㎝ 특대(特大) 대구 1마리 6만8000원이 평균적이 가격이다. 하지만 그날그날의 날씨, 어획량 등에 따라서 시세가 1만원 이상 크게 차이 난다. 공경일씨는 “선물용으로는 중대 사이즈가 주로 나가지만, 식당에선 크기에 비해 곤이 많이 든 소 대구를 주로 쓴다”고 했다.
대구는 살이 물러서 다른 생선보다도 더 쉽게 상하니 신경 써야 한다. 빛깔이 푸르스름하고 배 부분이 단단해야 싱싱하다.
경남식 대구탕 끓이는 법
서울 등지에서 먹는 대구탕은 흔히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는다. 하지만 대구의 ‘본산지’랄 수 있는 거제 등 경남 진해만 인근 지역에선 대구를 맑은탕으로 즐긴다. 뽀얀 국물은 곤에서 우러나기에 대구 수컷을 더 선호한다.
재료: 대구 1/2마리(중간 크기 기준), 무 1토막, 대파 1/2대(3~4인분 기준), 소금(또는 조선간장) 약간
1. 대구를 먹음직한 크기로 토막낸다. 곤을 따로 둔다. 대파는 어슷썰기 한다.
2. 냄비에 물을 넉넉하게 붓는다. 납작하게 썬 무를 더해 끓인다.
3. 냄비 물이 끓으면 토막낸 대구와 곤을 넣는다.
4. 대구살이 하얗게 익고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소금으로 간 하고 대파를 넣어 마무리한다.
– 무와 함께 다시마를 넣어도 맛있다. 일부에서는 콩나물을 넣기도 한다.
/1월9일자 문화면에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시원한 대구탕 국물이 입안에 그득하네요. 빨리 다시 다녀와야겠습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