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굴 한 점. ‘거제도굴구이’에서 맛봤습니다. 싱싱한 단맛과 향긋한 바다향이 나더군요. 어른 넷이 먹어도 적지 않은 양인데, 둘이서 다 먹어치웠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유창우 기자와 함께 먹었습니다.
굴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말부터 먹기 시작하지만 굴 맛을 좀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12월 중순 지나 추위가 매서운 한겨울이 진짜 제철”이라고 한다. 굴은 바닷물이 1도라도 더 차가워야 탱탱하게 씹는 맛과 향긋한 감칠맛이 강해지니 말이다. 그러니까 굴을 제대로 맛보기에는 지금 1월이 가장 좋다는 뜻. 경남 거제와 통영, 전남 여수와 장흥, 충남 보령 천북 등 굴 양식을 많이 하는 지역에는 굴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몰려있다.
거제
스텐레스로 만든 굴 구이용 냄비/프라이팬을 거제도에서는 사용합니다.’원조굴구이’는 동그란 모양이지만 바닥이 납작하고옆면이 직각으로 오똑하다는 점은 같지요.
경남 거제도 남서쪽 거제면에 굴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여럿 있다.
구이라지만 ‘찜’에 가깝다. 주문하면 바닥이 납작하고 높은 테두리가 있는 스테인리스 냄비에 굴을 가득 담아 내온다. 불에 올리고 뚜껑을 덮어 10분쯤 지나면 종업원이 다가와 “이제 먹으라”면서 뚜껑을 연다. 허연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가운데 굴들이 보인다. 납작한 칼을 껍데기 사이에 넣고 살짝 비틀면 제 몸에서 나온 육즙에 촉촉이 익은 굴 속살이 드러난다.
힘을 살짝만 줘도 떨어지는 탱탱한 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찝찔하게 자체 간이 돼 있기 때문에 굳이 초고추장을 찍지 않아도 맛이 훌륭하다. 굴 자체의 싱그러운 단맛을 즐기고 싶다면 그냥 먹는 편이 오히려 낫다.
‘원조거제굴구이’(055-632-4200)와 ‘거제도굴구이’(055-632-9272)가 가장 이름났지만 굴 자체의 신선도에 의존하는 음식인지라 식당 간 맛 차이가 크지는 않다. 가격도 굴구이 2만2000원, 굴회·굴전·굴튀김 각 2만원, 굴세트메뉴 6만원(4인 기준), 굴죽 5000원(굴구이 주문 시 2000원), 굴떡국·굴국밥 각 7000원으로 대개 비슷하다.
천북
천북의 굴구이집./조선일보DB
충남 보령 천북면 장은리 굴단지에는 굴 구이 식당 20여 개가 모여있다. 굴은 우리가 흔히 아는 양식산 굴과 ‘자연산’이라고도 하는 ‘천북굴’ 두 종류가 있다.<아래 ‘자연산 굴 vs. 양식산 굴’ 참조> 양식산은 경남 통영과 전남 여수에서 주로 생산되고, 천북굴은 장은리 앞바다 갯벌에서 ‘자연스럽게’ 양식한 굴이다. 손님이 기호에 따라 원하는 굴을 선택하면 된다.
서로 덕지덕지 붙어 바위 같은 굴 덩어리를 석쇠에 통째로 얹어 번개탄이나 가스불에 굽는다. 굴이 익는 동안 껍데기가 깨지면서 탁탁 튀니 조심해야 한다. 한 광주리(3만원)면 넷이서 먹을 수 있다. 굴 구이를 실컷 먹었으면 굴밥(8000원), 칼국수(5000원), 굴물회(8000원) 중에서 골라 식사하면 된다. 굴물회를 추천한다. 싱싱한 굴을 잘게 썬 파, 배, 고춧가루, 식초, 참깨와 함께 동치미 국물에 말아 시원하게 후루룩 들이키면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마저 든다. 돌솥에 굴을 넣고 지은 굴밥도 맛있다. 밥 짓는 시간이 있으니 미리 주문해놓는 게 좋다.
굴 구이집들은 굴 양식과 판매도 같이 하고 있으니, 생굴이나 굴젓을 사와도 좋겠다.
장흥
전남 장흥 용산면 남포마을에는 굴 수확철인 겨울이면 굴 구이를 하는 ‘남포자연산굴구이’(061-863-6586)‘ ‘싱싱굴구이’(061-863-1744) 등 비닐하우스형 식당이 잔뜩 들어선다. 천북과 마찬가지로 갯벌에 종패를 뿌려서 키운 ‘자연스럽게 양식한’ 굴이다. 한 바가지에 2만원인데, 성인 남성 넷이서 먹어도 적지 않다. 장작불에 올려서 모락모락 김이 날 때 칼로 까서 먹으면 된다. 굴을 넣어 끓인 떡국도 별미다.
남포마을은 임권택 감독이 영화 ‘축제’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작은 등잔을 닮았다고 해서 소등섬이라 이름 붙은 섬이 앞바다에 있다. 굴 까먹으며 소주잔 기울이는 재미에 빠져있다가, 소등섬 뒤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돌아가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한다.
여수
조선일보DB
거제 굴 구이와 비슷하다. 스테인리스 굴 구이용 냄비에 굴을 잔뜩 담고 뚜껑을 덮어 화로에 올려 김이 오르면 먹으면 된다. 굴 구이집은 돌산도에 가장 많지만, ‘황토방’(061-644-9231), ‘소호동 원조굴구이’(061-686-2816) 등 시내에서도 맛볼 수 있다.
통영
국내 최대 굴 산지이지만, 의외로 굴 구이를 내는 식당은 찾기가 힘들다. 굴이 워낙 흔하고 자주 먹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대신 굴 요리 전문 식당이 있다. ‘굴향토집’(055-645-4808)은 굴찜, 굴전, 굴솥밥부터 굴라면까지 굴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낸다. 굴이 날 때는 생굴을, 나머지 철에는 냉동 보관해둔 굴을 사용한다. 굴회·굴전 각 1만원, 굴찜 1만6000·2만1000·2만6000원, 굴코스 1만1000·1만7000원.
자연산 굴 vs. 양식산 굴
천북 등지에선 자연산과 양식산으로 구분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둘 다 양식이다. 자연산이라는 ‘천북굴’도 종패를 갯벌에 뿌려 키운 것이기 때문이다. 종류도 참굴로 같고 영양 면에서도 거의 차이가 없다.
맛과 모양은 꽤 다르다. 자연산은 갯벌 바위에 붙어 살면서 밀물과 썰물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길쭉하고 물결무늬가 있는 반면, 양식산은 24시간 바닷물에 잠겨 영양을 섭취하기 때문에 둥그렇고 물결무늬가 없으면서 훨씬 크다. 자연산은 일반 조개와 굴이 섞인 듯한 맛이라면, 양식산은 그야말로 익숙한 굴 맛이다.
자연산과 양식산을 둘 다 내는 천북의 굴구이집 사장들은 “손님들은 대개 씨알이 굵어 먹기 편한 양식산을 선호하지만, 바닷물에 잠겼다가 공기에 드러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장한 자연산이 맛이 더 진하다”고 한다.
싱싱한 굴 고르기
껍데기를 벗기지 않은 굴은 입을 꽉 다물고 있어야 싱싱한 놈이다. 살은 통통하면서 탱탱하고, 전체적으로 우윳빛을 띠면서 테두리는 갈색 또는 검은색 빛깔이 선명해야 한다. 물론 굴 산지를 찾아가 먹을 때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1월17일자 주말매거진에 쓴 기사입니다. 싱싱한 바다향 물씬 나는 생굴, 굴튀김이 먹고 싶네요.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