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팜므파탈과 같다. 칼로리가 높아 몸매 관리에 부담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빵과의 ‘위험한 사랑’에 빠진 이들을 위해 ‘주말매거진+2’가 지난주 부터 시작한 ‘빵지순례’. 오랜 역사와 변함없는 맛을 자랑하는 전국의 유서 깊은 빵집을 찾는 이 여정이 이번주에는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펼쳐진다.
백구당(부산)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부산 중앙동 ‘40계단’ 근처에 있는 백구당(白鷗堂)은 부산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1959년 개점했으니 올해로 54년째. 백구(白鷗)는 ‘흰 갈매기’란 뜻이니, 부산을 대표하는 빵집다운 상호다.
오래된 빵집이라고 단팥빵이나 야채빵 등 옛날 빵만 기대했다면, 그 기대가 유쾌하게 깨지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빵이 맛있고 유명하냐”는 질문에 종업원이 조금도 망설임 없이 ‘크로이즌’(4000원)을 가장 먼저 꼽았다. 동그란 빵 다섯 개가 붙어 둥글넓적한 모양이다. 밤슈(옥수수 가루를 섞은 크림)를 바른 부드러운 빵 속에 옥수수샐러드가 톡톡 씹힌다. 심심한 듯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질리지 않고 계속 먹게 만든다.
‘군고구마’(2000원)는 빵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아이템이다. 오븐에 구운 고구마 속을 파내 크림치즈와 버터에 버무려 고구마에 다시 채운 다음 오븐에 구웠다.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겨울에만 판다니 그 맛이 궁금하다면 서둘러 찾아가야 할 듯하다. 부산 중구 중앙동 4가 31-1, (051)465-0109
비엔씨(B&C)(부산)
1983년 문을 열 때부터 드나들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과 남포동에 친구들과 쇼핑하러 나온 젊은이들로 매장이 가득하다. 달고 부드러운 빵과자 속에 크림이 들어 있는 ‘산도마드레느’(3500원)는 1980년대풍 주황색과 흰색으로 인쇄된 비닐포장만큼이나 맛도 그 시절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오래된 단골들에게 사랑받는다.
부산에 여행 온 외지인들이 꼭 들러서 사가는 건 ‘파이만주’(6000원·6개 1봉지)이다. 바삭하면서도 폭신한 파이 속에 달콤한 팥앙금과 함께 큼직한 호두와 밤 덩어리가 구수하게 씹힌다. 전병(센베)도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김·잣·아몬드 세 가지 맛이 있으며 1봉지 6000원.
한 부산 토박이는 “비엔씨 ‘사라다빵’(3500원)을 꼭 먹어보라”고 권했다. 길쭉한 롤빵에 감자샐러드를 터질 듯 채운 건 다른 빵집과 비슷한데, 감자샐러드에 사과를 얇게 썰어 넣은 게 색다르다. 사각사각 새콤달콤 씹혀 한결 산뜻하다. 부산 중구 창선동 1가24(남포동 본점), (051)245-2361
옵스(부산)
1989년 부산 남천동 동네빵집 ‘삼익제과’로 시작, 부산 내 7개 지점과 울산점에 이어 최근 롯데백화점 평촌점에도 입점하는 등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못잖다. 여기 빵을 맛보려고 부산에 온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한다. 냉동 생지(반죽)를 사용하지 않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알려졌다.
이 집만의 독특한 빵과자로 ‘카린트 도넛’(3500원)이 꼽힌다. 한입 크기로 빚은 반죽을 바삭하게 튀겨 설탕물을 입혔다. 기름이 남지 않게 잘 튀겨 느끼하지 않고, 좋은 바닐라를 썼는지 향이 기분 좋게 강렬하다. 팥소가 아닌 생크림과 달걀노른자로 만든 유과앙금을 넣은 ‘유과 앙금빵’(1300원)도 맛있다. 흑설탕과 건포도, 참깨로 맛을 낸 ‘오키나와’(2300원)는 빵이라기보다 증편에 가까운 맛이라 나이 지긋한 분들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을 듯하다.
명란과 버터를 듬뿍 넣은 ‘명란 바게트’(2500원)는 찝찔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빵이라기보다 술안주 같다. 맥주와 같이 먹어도 훌륭할 듯하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233(본점), (051)625-4300, www.ops.co.kr
성심당(대전)
기차에서 내려 대전역에 들어서자마자 긴 줄이 보였다. 역 안에 있는 빵집 성심당에서 ‘튀긴 소보로’를 사기 위해 늘어선 줄이다. 성심당은 1956년 대전역 앞 허름한 찐빵집에서 시작했다. 성심당이 하루에 판매하는 튀김소보로빵은 1만개, 부추빵은 3000개라고 한다.
빵을 사는 것도 성심당에선 경쟁이었다. 대흥동의 본점에선 부추빵(1800원)이 나오기 20~30분 전부터, 튀긴 소보로(1500원)는 언제나 줄을 서야 한다. 빵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시식용으로 내놓기 때문에 다들 빵을 기다리며 이것저것 집어먹는다. 튀긴 소보로는 말 그래도 소보로 빵을 튀긴 것으로, 느끼할 것 같지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다. 단골들은 차가운 우유나 커피를 곁들여 먹는단다.
부추빵은 나오자마자 다 팔리기 때문에 줄을 서는 것만 감수한다면 갓 나온 따끈한 빵을 손에 쥘 수 있다. 빵 속에 꽉 채운, 잘게 썬 부추는 푹 익히지 않아 풀이 죽지 않았다. 계란 으깬 것과 후추 등이 양념과 함께 아삭하게 씹힌다. 빵의 반죽은 두껍지 않고 보드라운 편. 한 번 먹고 나면 부추빵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온기마저 계속 생각날 정도다. 대전 중구 은행동 145, (042)256-4114
밀밭베이커리(대구)
대구 시내인 동성로 한가운데 있다는 지리적 강점 말고는 평범해 보인다. 들어가 보면 프렌차이즈 카페와 베이커리 사이에서 1982년서부터 버텨온 이유를 알 법하다.
다른 빵집에서 찾아보기 힘든 빵들이 많다. 일본에서 멜론소를 들여와 만든 ‘멜론빵’(2000원)과 고구마를 삶아 으깬 걸 바게트빵에 올린 ‘고구마 바게트’(2000원)가 요즘 인기다. ‘고구마 바게트’에 올려진 고구마는 실제 고구마보다 더 부드럽고, 단맛 외의 감칠맛이 났다. 사장에게 물어보니 “으깬 고구마를 다른 것과 섞는데, 그것이 뭔지는 말해주기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빵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1000원짜리 조각 케이크다. 폭신폭신한 빵에, 약간 느끼한 크림이 올라간 ‘옛날 케이크’의 맛을 내는 이 조각 케이크는 가격 대비 만족도가 아주 높다. 대구 중구 동성로2가 17-3, (053)427-1601
맘모스(안동)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임을 자부하는 안동에 그것도 39년 전인 1974년 문을 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고 세련된 빵집이다.
빵도 그렇다. 망고 맛 스폰지케이크 속에 딸기 무스케이크가 숨겨져 있는 ‘모가도르’(4500원·1쪽)는 과일의 새콤달콤함과 크림의 고소함이 진하면서도 동시에 산뜻한 모순적인 세련됨을 지녔다. 입속에서 바삭바삭 산산이 부서지는 ‘크로아상’(1500원)도 프랑스 본토 못잖다. 부드러운 빵을 베어 물면 크림치즈가 터질 듯 배어 나오는 ‘크림치즈빵’(1800원)이 인터넷에서 ‘꼭 맛봐야 하는 빵’으로 이름 높다.
가게 이름을 건 ‘맘모스빵’(2500원)은 팥과 완두콩을 넣은 찰떡을 빵으로 번안한 듯한 모양이다. 빵과 빵 사이에 크림과 단팥이 한 켜, 또 크림과 설탕에 졸인 완두콩이 또 한 켜 2중으로 들어 있다. 빵보다 ‘밀크셰이크’(2000원) 때문에 온다는 이들도 있다. 견과류를 갈아 넣어 미숫가루 같기도 하고 두유 같기도 한 특별한 맛이다. 경북 안동 남부동 164-1, (054)857-6000
/2월28일자 주말매거진에 쓴 기사입니다. 제가 부산에 다녀왔고, 변희원 기자가 대전과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사진은 이신영 기자가 찍었습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