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한국 음식이 외국에서 인기긴 인기인 모양이다. 뉴욕에 사는 미국인 친구 캐리가 얼마 전 “본고장에서 정통 한식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며 서울에 오겠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캐리의 이메일에 답하면서 “뭘 먹어보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캐리가 꼽은 음식 중 양념 치킨이 있었다. 한국에서 꼭 맛보고 싶은 한식이 ‘고작’ 양념 치킨이라니. 전혀 예상 못 한 음식이었다. 뉴욕에 있는 캐리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양념 치킨? 그게 먹고 싶어?”
“당연하지! 양념 치킨이 뉴욕에서 얼마나 난리인데! 한국 음식 중에서도 제일 인기일 걸?”
내가 놀란 건 양념 치킨을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대부분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여기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캐리를 포함한 외국 사람들에게 양념 치킨은 한식, 그것도 가장 맛보고 싶은 한국을 대표하는 맛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치킨이란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양념 치킨은 그 기원을 미국에 두고 있는 음식이다. 기름에 튀긴 닭은 1950년대 이후 미군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한식에는 튀김이란 전통이 없다. 당시만 해도 기름에 튀긴 닭 요리는 엄청나게 낯설고 이국적인, 그래서 닭이 아니라 치킨이라고 불러야 어색하지 않았으리라.
1960년대 전기구이 통닭과 쇼트닝에 튀긴 이른바 ‘시장 통닭’이 등장한다. 1970년대 프랜차이즈업체가 등장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은 ‘프라이드’를 떼고 그냥 ‘치킨’으로 통할 정도로 대중화된다. 양념 치킨은 1980년대 초 등장했다. 매콤달콤한 맛을 좋아하고 익숙한 한국인 입에 꼭 맞는 양념 치킨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치킨이 ‘국민 야식’으로 자리잡는 데 기여한다.
1980년대 등장해 1990년대부터 대중화됐으니, 양념 치킨의 역사는 길어야 30년 정도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계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 중 외국에서 들어왔거나 역사가 짧은 것들이 의외로 많다.
쌀국수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아서 웬만한 나라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07년 쌀국수를 뜻하는 베트남어 퍼(pho)를 영어 단어로 포함시켰다. 옥스퍼드사전은 퍼의 어원을 “아마도 프랑스 포토푀(pot-au-feu)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음식 포토푀에서 ‘푀’만 떨어져 나와 ‘퍼’로 변했다는 것이다.
대중적인 음식이 대개 그렇듯, 쌀국수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가 애매하다. 20세기 초 베트남 북부 하노이 주변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전부다. 지난 2007년 하노이에서 쌀국수의 탄생을 밝혀보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 참가한 음식 전문가들은 쌀국수가 포토푀에서 왔거나 최소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데 동의했다.
포토푀는 소·닭 등의 뼈와 고기를 여러 채소와 함께 푹 끓인 프랑스의 서민적인 음식이다. 부드럽게 삶아진 고기를 일품요리로 먹기도 하고, 국물만 떠서 수프로 먹거나 육수로 사용한다. 포토푀에 들어가는 양파 등 채소를 불에 그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쌀국수 국물도 포토푀와 만드는 방식이 같다. 소의 뼈와 고기를 각종 채소와 함께 끓인다. 양파, 파 등은 그슬려 사용하는데, 역시 포토푀와 같다. 향신료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덴푸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음식이다. 하지만 덴푸라는 17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외국인 거주가 유일하게 허용된 나가사키에 살던 포르투갈 사람이 튀김 요리를 하자, 이를 본 일본인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단다. 포르투갈 사람은 “템페랄(temperal)”이라고 답했다. 포르투갈어로 ‘조리하다’ 또는 ‘(약을) 조제하다’란 뜻이다. 일본 사람은 이 말을 요리 이름으로 잘못 알아들었고, 그때까지 일본에 없었던 이 튀김 요리를 덴푸라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 라멘 역시 우리는 일식이라고 여기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면 요리다. 한국의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들어와 일본의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식 세계화를 선도해온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한국 사람들은 퓨전 음식이라고 하면 대단히 노이로제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외국 식재료와 요리법을 얼마나 우리화하냐가 중요한 것이지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떳떳하게 소개해도 괜찮을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캐리가 서울에 오면 어느 치킨집을 데려가 양념 치킨을 맛보일지가 고민이다.
/3월21일자 오피니언면에 쓴 칼럼입니다. 마침 대구에서 치맥 페스티벌을 한다네요. 구름에
호세호세
2013년 3월 24일 at 3:44 오전
양념치킨… 한국 대표음식! 동의합니다.
구름에
2013년 3월 28일 at 1:35 오후
호세호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