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식당은 안주하기 쉽다. 더 나은 요리나 새로운 맛을 위해 애쓰기보다, 명성에 의존해 장사하면 평균은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현지인은 외면하는 ‘관광식당’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 있는 ‘르두아앵(Ledoyen)’은 이런 오래된 식당이 흔히 빠지는 유혹을 이겨낸 드문 경우이다. 파리에서 가장 역사가 긴 식당 중 하나면서도, 권위 있는 레스토랑가이드 미슐랭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아 유지하고 있다.
7개월에 걸친 개·보수를 마친 서울 신라호텔이 재개관 기념 행사(7~9일)를 위해 초청한 르두아앵 총주방장 크리스티앙 르스퀘르(Le Squer·50)를 5일 만나 이 식당이 2세기가 넘도록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인정 받는 비결을 물었다. 그는 “프랑스요리 전통을 고수하되 현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르두아앵’ 총주방장 크리스티앙 르스퀘르가 오른손검지 한 손가락만아가미에 넣어 광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르스퀘르는 “나는 언제나 생선을 이렇게 집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손가락 하나만 버리죠. 또 생선에 손이 닿는 걸 최소화해 선도를 유지하기 좋은 방법입니다.”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234년 된 유서 깊은 레스토랑
르두아앵은 프랑스대혁명(1789년) 10년 전인 1779년 ‘오 도팽(Au Dauphin)’이라는 작은 여관 겸 식당으로 문 열었다. 1791년 피에르 미셸 두아앵(Doyen)이 인수하면서 제대로 된 레스토랑으로 새출발한다. 르두아앵은 ‘두아앵이 운영하는 식당’이란 의미.
르스퀘르 총주방장은 “귀족 등 당시 상류층이 모이던 일종의 클럽이었다”면서 “프랑스혁명 땐 단두대 처형을 구경한 사람들이 모이곤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단두대를 도입한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에서 처형됐는데, 그가 죽기 이틀 전인 1794년 7월 26일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등 정치인은 물론 모네, 드가, 세잔, 플로베르, 모파상, 콕토 등 당대 문화계 인사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당시만해도 들판이던 샹젤리제에서는 총이나 칼을 이용한 결투가 자주 벌어졌는데, 르두아앵은 다행히 살아남은 결투자들이 화해의 식사를 하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1840년대 건축가 자크 이토르프(Hittorff)가 설계한 신고전주의 양식 식당 건물의 내·외관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르스퀘르 총주방장은 “프랑스 요리는 물론 역사가 깃들어있는 식당”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부 되려다 셰프가 된 남자
르스퀘르는 프랑스 서부 해안지역인 브뤼타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생선 등 해산물을 좋아해 어부가 되려 했다”고 했다. 12살 되던 해 처음으로 배 타고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 그런데 거기서 요리에 매료됐다. “어부들에겐 식사가 제일 중요한 시간입니다. 음식과 정을 나누는 즐겁고 따뜻한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요리사가 되기 위해 14살에 호텔조리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의 이력은 ‘전설’ 혹은 ‘레스토랑계의 미다스 손’이다. 타이유방(Taillevent), 리츠칼튼호텔 레스파동(L’Espadon) 등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던 르스퀘르는 1995년 인터컨티넨탈호텔 로페라(L’Opera) 총주방장을 맡은 지 1년만에 미슐랭 1스타를, 그리고 2년 뒤인 1998년 2스타를 획득한다. 미슐랭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승급으로 화제가 됐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음식·맛
르두아앵 경영진은 1999년 르스퀘르에게 총주방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는 “르두아앵 셰프라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했다. 역사는 깊지만 음식은 그저 괜찮다고 평가받던 르두아앵은 정상을 향해 빠르게 진격한다. 그가 맡고 1년 만인 2000년 별 하나를, 2년 뒤인 2002년 요리사 최고의 영예인 별 셋을 얻는다.
르스퀘르가 지휘하는 르두아앵의 음식은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라고 평가 받는다. 접시에 담긴 모양새는 최첨단·초현대적이지만, 맛을 보면 프랑스요리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르스퀘르는 “프랑스요리는 항상 변화하며 진화한다”며 패션에 비교했다.
보기엔 모던하지만 맛은 프랑스요리 전통을 벗어나지 않는 르스퀘르의 요리./서울 신라호텔제공
“샤넬의수트는 겉으로 보면 코코 샤넬이 디자인한 당시와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컷이라던가 피트가 완전히 달라졌지요.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입맛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에 맞춰 요리도 항상 움직여야 합니다. 전 세계 모든 요리기술을 받아들이되 프랑스요리만의 맛을 받아들여 진화하는 것이 전통의 보존이자 보호입니다.”
르스퀘르는 “프랑스요리는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라면서도 다른 나라의 맛과 요리기술에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일본과 대만을 자주 찾고 영감을 얻는다는 그에게 한국은 이번이 첫 방문이다. 그는 “아직 얼마 먹어보지 못했지만, 한국음식은 풍미가 깊고 풍성한 듯하다”고 했다. 이번에 맛본 한식이 그의 요리에 어떤 영감으로 작용할 지 기대된다.
/8월7일자 신문 문화면에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그의 음식은 아직 맛보지 못했는데, 무척 기대됩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