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서울 숭의동 ‘우리동네 착한밥상’에서고등어무조림을 반찬으로 밥을 먹고 있다. /사진=성형주 기자
12일 저녁식사를 위해 박원순(58) 서울시장이 고른 밥집은 서울 숭인동 ‘우리동네 착한밥상’이었다. ‘착한’이란 말에 박시장 전매특허인 ‘아름다운’ ‘희망’ 등의 단어가 연상됐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들려준 선정의 이유는 ‘어머니 손맛’ 때문이었단다. “얼마 전 신설동 로터리 교통 문제를 직접 확인하러 왔었어요. 그때 동사무소 직원들이 여길 추천했어요. 동네 맛집이야 그곳의 동사무소 직원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겠어요? 와서 보니 제가 진짜 좋아하는 고등어무조림이 나온 거예요. 실은 고등어보단 무를 좋아해요.”
박 시장은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신 붕어무조림을 추억의 음식으로 꼽았다. “제가 낙동강변에서 자랐잖아요(그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다).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중요한 주식이었어요. 어머니가 늘 붕어를 무하고 조려서 주셨어요.” 그에게 나눔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그 어머니다. “여느 어머니들처럼 우리 어머니도 항상 ‘네 입에 밥이 들어갈 때 주변 사람들 입에도 밥이 들어가나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는 종중(宗中)이 소유한 논밭을 가난한 이들에게 소작 줘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했어요.”
약간 마른 편인 박 시장은 젓가락으로 밥을 큰 덩어리로 떼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곤 무조림 한 조각도 입에 넣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씹었다. 무조림은 간이 폭 배긴 했으나 조금 싱겁고 국물이 흥건했다. 일식집에서 나오는 무조림처럼 입에 짝짝 붙지는 않았다. 6000원짜리 백반에 나오는 반찬으로는 괜찮은 편이지만, 일부러 찾아올 정도는 아니다.
박 시장은 “구태여 따지자면 미식가라기보단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음식을 생각하는 편”이라며 “배가 고프더라도 참아가며 맛집을 찾기보단 일단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서 규칙적으로 먹는 편이다. 식사 시간 내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밥 한 그릇은 깨끗하게 비웠다.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는다”고 했지만 박 시장의 젓가락은 일정한 취향을 보여주었다. 시래기무침이나 버섯볶음, 애호박전처럼 심심한 반찬을 주로 찾았다. 아주 맛있게 익은 총각김치와 파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조심스레 관찰결과를 들려주자 이렇게 말했다. “김치도 옛날에는 잘 안 먹었는데, 나이 들면서 외국 나가면 찾게 됐어요.” 그의 말대로 미식가는 아니었다.
추억의 음식을 떠올리던 중 삶은 땅콩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릴 때 낙동강변에 땅콩밭이 많았어요. 중2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는데, 기차에서 먹으려고 땅콩 서리를 했어요.” 그때 본 빵모자를 쓴 서울의 여고생들을 보고서 가슴이 설레 ‘고등학교는 서울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단다. 원하는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박 시장은 재수 끝에 경기고에 입학했다. 재수 시절 그를 버티게 해준 음식은 단팥빵과 라면, 수제비였다. “버스 차비가 7원 하던 때인데, 단팥빵이 그 정도 가격이었어요. 그거 하나 먹고 하루를 견뎠어요. 아니면 하루 세 끼를 라면이나 수제비로 때웠고. 라면이나 수제비는 요즘도 안 질리는 것 같애.”
식사를 하던 중 문득 박 시장은 추억의 음식은 아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고 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그는 ‘폐통’을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꼽았다. “폐통은 누가 면회 왔다가 사주고 가는 사식(私食)이야. 어디서 나온 말인지도 몰라. ‘폐통 친다’고 해요. ‘닭 폐통’ ‘통닭 폐통’ ‘콩국수 폐통’, 끝내줬지. 그런데 교도소에서 주는 관식(官食)을 먹다가 폐통 치고나면 갑자기 피부병이 생기곤 했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음식은 할 줄 아느냐는 물음에 박시장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강의할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때 나 혼자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음식을 하게 됐지요. 매일 사 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 때 요리책 선물 받은게 있었어요. 가수 이현우씨가 쓴 ‘싱글들을 위한 이현우의 이지 쿠킹’인데 반조리된 제품을 사와서 만드는 것이었어요. 한인 마켓에서 냉동만두 사다가 멸치육수 내서 만둣국 끓여먹었지요. 신기하더라고. 우리 세대 남자들이 제일 걱정하는게 마누라가 곰국 끓여놓고 나가는거라는데. 이 두려움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에요. 하하.” 음식 못한다는 말을 참 재미있게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친 김에 요리책을 써볼까 생각도 했다니까요. 나같은 초보들을 위해서요.”
박시장은 평소 아침은 주스에 떡이나 빵으로 간단히 떼운다고 했다. 그나마도 조찬모임이 많아 대부분은 밖에서 먹는다. 대신 주말에는 가능하면 집밥을 먹는다고 했다. 아내 강난희씨가 직접 준비한다.
“집사람도 본래 고향은 충북 영동인데 대구에서 자라 우리 본가 음식과 비슷해요. 아내의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좋아합니다. 장모님이 잘 하셨던 것같아요.”
박 시장은 음식 맛을 즐기지 않는지는 몰라도 근사한 한 끼 식사의 힘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시민운동을 할 때 그만두려는 직원을 붙잡는 박원순식 만류법을 들려주었다. “꼭 필요한 직원이 있잖아요. 못 나가게 꼬시려면 그 사람의 아내를 초대해 당시 내 형편으로 쉽게 갈 수 없는 식당에 가서 밥을 사는 거예요. 그러면 몇 년은 못 나가요. 필운동 ‘더 소호(The SOHO)’, 삼청동 ‘더 레스토랑’ 이런 데 데려갔죠.”
남을 구속하고 벌 주는 게 힘들어서 검사를 그만뒀을 정도로, 박 시장은 남한테 싫은 소리 하거나 불편한 상황에 놓이기를 싫어하는 듯했다. 그는 “맛이 없거나 서비스가 나빠도 컴플레인을 거의 안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朴시장이 꼽은 식당-우리동네 착한밥상
숭인동 좁은 골목 안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다. 방에는 4인상이 7개 있고 주방 앞에는 간이 테이블 2개가 있다. 점심시간(오전 11시30분~오후 2시) 생선조림이나 구이와 찌개 또는 국, 여기에 일곱 가지 밑반찬이 딸려 나오는 백반이 6000원이다. 공기밥과 밑반찬은 ‘무한 리필’ 가능하고 생선은 추가시 1000원 더 받는다. 인공조미료를 아예 안 쓰지는 않는 듯하나 아주 적게 쓰는지, 식사를 마친 다음 입안이 텁텁하진 않다. 박원순 시장과 식사는 저녁이었지만 점심용 백반을 특별히 차려줬다. 저녁에는 김치찌개(1만2000원), 삼겹살편육(2만원), 오징어볶음(1만4000원), 달걀말이(5000원) 따위 안주를 찾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02)927-5066
/지난 2월25일 게재된 ‘밥으로 말하다’ 연쇄기획인터뷰의 1회 박원순 시장 편입니다. 한끼 식사를 함께 하는 것만큼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것입니다.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어떤 음식을 즐겨 먹고 음식에 관해 어떤 추억을 갖고 있으며 무엇을 특히 좋아하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정치권과 사법 행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 밥상을 함께 했습니다. 식당과 메뉴는 그들이 직접 골랐습니다. 테마는 오직 음식에만 한정했습니다. 음식을 통해 그들의 속을 들여다 보고 싶었습니다. 게재 순서는 섭외가 되는 순서를 따랐습니다. 구름에
charity
2014년 5월 5일 at 6:02 오후
"남을 구속하고 벌주는 게 힘들어서 검사를 그만뒀을 정도로, 박 시장은 남한테 싫은 소리 하거나 불편한 상황에 놓이기를 싫어하는 듯했다"…. 악역은 누구나 싫어할 뿐더러,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당연하다. 그래서 세상에 악이 판치는 것을 돕는 역설이 된다. 잘못을 일러주는 사람이 도리어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이지만 아무도 이역할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하지 않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위대한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를 인류의 재판관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런 역학을 흔들림 없이 끗끗하게 해 나가는 사람이 군자일 수밖에 없다. 아부와 아첨을 싫어하지 않는 세상 아니던가, 오죽하면 이솝도 네게 아부하는 자를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하고 갔겠는가… 그것도 고기 한 덩어리 얻어먹은 여우의 입을 통해서.
착한 척, 위인인 척 하는 것은 쉽다. 세상과 영합하는 자를 공자는 사이비(似而非)라 했다. 이런자가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파스칼도 거들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