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않고 갔는데 의외로 맛있었던 콩나물국밥, 황우여 대표 덕분에 맛봤습니다. /사진=허영한 기자
새누리당 황우여(67)대표는 “인천 송도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으로 올 수 있느냐”고 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인 인천 연수구 옥련동 ‘원조콩나물국밥’까지 가면서 ‘정치인과 국밥이라,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국밥을 그것도 자기 지역구에서 먹자는 건…’ 의심됐다. 황대표보다 먼저 도착한 김에 식당 주인 이옥진씨에게 “황 대표가 진짜 단골이냐”고 물었다. 배우 윤여정을 연상케하는 까칠한 외모의 이씨는 잘라말했다. “15년 다니셨어요.”
황대표는 인천 토박이다. 그가 꼽은 추억의 음식도 인천에서 탄생한 짜장면이다. “우리 어릴 때는 주말고사라는 게 있었어요. 우리 아버님은 80점만 넘으면 대만족이셨어요. 그럼 짜장면 사주셨어요. 또 선생님이 가정방문 오시면 탕수육이 더 나와요. ‘청요리점’이라고 불렀던 중국집에 배달을 시켜가지고. 그때는 짜장면이 손으로 면발을 뽑아서 두툼하고, 굵직한 돼지고기가 툭툭 들어가 아주 맛있어요. 요즘하고 달라요.” 공부를 잘해 서울대에 진학했고 사법고시에 붙어 판사까지 한 그이니, 매주 거르지 않고 짜장면을 먹었겠구나 싶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되지 않아 뚝배기에 펄펄 끓는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황 대표가 “뜨거우니까 이렇게 덜어서 식혀 먹어야 한다”며 젓가락으로 콩나물, 다진 김치, 김가루, 달걀 따위 건더기를 성큼 건져내 작은 개인접시에 옮겨담았다. 그러더니 “이걸 조금 넣어 간을 하세요”라며 종지에 담긴 새우젓을 건넸다. 달걀을 국물에 풀어서 진하게 먹지 않고, 새우젓도 조금만 넣는 걸 보면 심심한 음식을 선호하는 듯했다. 그는 “담백하고 깨끗하고 이런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음식을 먹을 때도 동작이 빠르고 컸다. 국물에 공기밥을 확 말더니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먹었다. “내가 칠남매 중 맏이에요. 부모님에 할머니 모셨고 또 시골에서 한두 명 조카들이 와요. 식구가 열하나, 열둘. 식구가 많으니까 천천히 먹으면 굶는거죠. 그래서 제가 음식을 빨리 먹고, 음식 탓이 없어요.”
음식 맛을 따지지 않는다지만 황 대표는 꽤 미식가였다. 우선 이 식당 콩나물국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황태와 바지락을 끓인 기본 육수에 사골 등 여러가지를 섞어 만든다는 국물이 맑고 시원하면서도 진했다. 직접 담근다는 깍두기도 아삭하니 잘 익었고,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넣은 조개젓도 얌전한 감칠맛이 났다. 국밥을 다 먹고나서도 맹물을 마신 것처럼 입이 깨끗했다.
황 대표의 미각은 부자는 아니었다지만 중산층이던 그의 가정 그리고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를 통해 길러진 결과로 보였다. 그는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중에서는 증편(술떡)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인천이 바닷가니까 생선을 많이 먹었어요. 구워서도 먹고 쪄서도 먹고. 말린 포도 많았죠. 여름이면 민어탕을 끓여서 복달음을 했고요. 우리 어렸을 때는 조기를 가마로 사다가 굴비로 만들었죠. 조기철이 되면 연평도에서 조기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는데, 소 달구지에다가 몇 가마를 사다가 말려요. 지붕도 담벼락도 조기로 다 덮였어요. 조기가 꼬득꼬득 말라 굴비가 되면 다락방에 잠겨놔요. 그랬다가 겨울내내 파먹는거야. 한 사람이 하나씩. 조기가 요새 같지 않고 커요. 팔뚝만한 조기들을 말려 먹었죠. 조기가 연평도에 올라왔을 때 잡아야하는데, 추자도부터 잡으니 자라질 못하죠.”
황 대표가 드물게 집에서 먹는 식사는 여태 어머니가 챙겨주고 있다. 그는 아내와 2006년 사별했다. 그는 “우리 집사람도 요리 솜씨가 뛰어났다”고 했다.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밤 꼬박 새면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줬어요. 집사람 고향이 마산이어서 원래 짜고 맵게 먹는데, 내 입맛에 맞게 싱겁게 요리해줬어요.” 부인의 휴대전화와 그 번호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는 그에게 더이상 아내의 음식에 대한 에피소드는 묻지 못했다.
사람 만나고 모임 갖는 게 일인 정치인들 중에는 미식가가 많은 편이다. 황 대표에게 “정치인 중에서 누가 가장 미식가냐”고 물었다. “여성의원들이 아닐까 싶네요. 나경원 전 의원과 조윤선장관 같은 경우는 예술적인 데가 있어요.”
“당대표란 주방의 총주방장과 비슷한 역할일 수 있겠다”고 묻자 황 대표는 동의했다. 그러면서 “당대표는 주방장 역할이 딱 맞다”고 했다. “당대표는 당을 추스려야 하는데, (당내 인사들의) 입맛과 역사가 다양해요. 지역도 다를뿐 아니라 어떻게 정계에 들어왔는지가 또 달라요. 당대표는 그런 걸 다 파악해야 하죠. (당원) 각자의 장점도 살려줘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당대표와 주방장은 유사하다고 봐요. 그런데 당대표는 대접 받는 게 아니라 대접을 해야 하죠.”
“주방에서는 총주방장이 절대권력자이기 때문에 다들 무서워한다”고 하자, 황 대표는 웃었다. “우리는 나를 좀 우습게 알아. 다른 당대표들은 위엄을 부리는데 나는 좀… 카리스마가 없다고 아우성이지. (보수강경파들이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벌인 집회에서) 내 화형식까지 했다니까.”
주방장이 무섭고 욕 잘한다고 반드시 요리가 잘 나오는 건 아니다. 황 대표에게 카리스마가 없을진 몰라도, 그가 당 대표를 맡은 이래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진 적은 없다. 그는 “후보들이 잘 한거지. 선거는 운이 많이 따른다”고 했다. 황우여. 스타 셰프는 아니지만 일정한 수준의 음식을 안정적으로 내는 식당의 총주방장이 아닐까.
黃대표가 식당은-원조콩나물국밥
새롭게 개발된 인천 송도에서 드물게 오래된 맛집이다. 개업한 지 30년쯤 되는데, 역사치고는 건물이 새 것이고 식당 내부가 깨끗하다. 황 대표는 “원래 무허가로 하다가 쫗겨나면서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고 알려줬다. 메뉴는 콩나물해장국(6000원)과 황태해장국(7000원), 콩나물해장국 국물에 밥 대신 라면을 넣고 끓여주는 뚝라면(4500원) 딱 세 가지다. 모든 음식을 국내산 재료로 직접 만든다는 주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延壽第一味(연수제일미)’라고 황 대표가 1999년 매직펜으로 쓴 종이가 다른 지역 유력인사들이 남긴 사인과 함께 벽에 붙어있다. (032)832-3042
/기획연재인터뷰 ‘밥으로 말하다’ 2편 주인공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였습니다. 실제 만나뵈니 콩나물국밥처럼 담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곧 대표 임기가 끝난다는데, 어떻게 되실 지 궁금하네요.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