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와 형태는 사라지고 맛과 향만 입안에 남는 관능적 경험을 선물한다
피아트 500. 알록달록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이 이 차와 마카롱의 공통점이기도 하죠.
한 입을 먹어도 만족스런 식사가 있고, 배 터지게 먹어도 뭔가 부족한 한 끼가 있다. 비싸고 건강에 좋지 않지만 꼭 먹고 싶은 요리가 있는가하면, 몸에 좋고 영양이 풍부하지만 그다지 입에서 당기지 않는 음식도 있다.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옳은 선택이 아님을 알면서도 먹게 되는 음식, 피아트 친퀘첸토가 나에겐 그런 자동차다.
친퀘첸토(cinquecento)는 이탈리아말로 숫자 500을 뜻한다. 그러니 ‘피아트 500’이라고 써도 된다. 하지만 굳이 친퀘첸토라고 이탈리아어로 써야만 될 것 같다. 그만큼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차다. 1957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 차체 무게가 500㎏ 정도에 500㏄ 2기통 엔진을 장착했다. 저렴한 친퀘첸토 덕분에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처음으로 ‘마이카’를 소유할 수 있었고, 덕분에 단종되던 1970년까지 500만대 이상 팔리며 ‘국민차’ 자리에 올랐다. 단종된 후에도 많은 이들이 친퀘첸토를 그리워했다. 결국 탄생 50주년을 맞은 2007년 새롭게 개발된 레트로 모델이 출시됐고, 돌아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라뒤레 마카롱. 피아트 친퀘첸토를 음식으로 만든다면 마카롱이 아닐까요. /사진=이신영 기자
현재의 친퀘첸토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그래도 여전히 작다. 길이너비높이가 354616271488㎜로 기아 모닝이나 한국지엠 스파크와 비슷한 크기다. 하지만 가격은 2400만~2700만원으로 현대 쏘나타·기아 K5 등 중형차 수준이다. 게다가 너비가 국내 경차 기준을 겨우 4㎝ 초과하는 바람에 소형차로 분류되면서 각종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한다. 앞좌석은 꽤 편안한 편이나 뒷좌석은 조금 큰 아이가 앉아도 불평할 정도로 좁다. 그러니까 머리로,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는 결코 사면 안될 차이다.
하지만 친퀘첸토는 논리나 합리를 뛰어넘는 감성적 매력으로 충만한 차이기도 하다. 그냥 갖고 싶다. 한눈에 반할 정도로 귀엽고 예쁘다. 헤드램프와 피아트 엠블럼, 좌우 크롬 몰딩, 그 아래 흡기구는 활기차게 할딱거리는 작은 강아지를 연상케한다. 차체 색깔은 강렬하게 화려하지만 날 티 나지 않는다. 이탈리아 사람만이 뽑아낼 수 있는 감각적인 색감이다. 10가지 외·내장 컬러와 시트 컬러를 조합하고 루프 랙·후드 그래픽·사이드 스트라이핑·데칼 등을 활용하면 50만 가지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만의 차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은 개성을 남들과 똑같은 차를 몰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무척 매력적이다.
시승용 친퀘첸토를 탔다. 친퀘첸토는 BMW 미니와 종종 비교되나, 몰아보니 두 차는 작은 사이즈를 빼면 매우 다르다. 친퀘첸토는 시트 포지션이 높아서 앉기 편하다. 미니는 시트가 낮다. 좀 과장하면 무릎을 세우고 앉아야 한다. 치마 입은 여성이라면 이 차이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승차감. 미니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밟는대로 나가며 짜릿한 운전경험을 선사한다. 친퀘첸토는 액셀을 밟고 좀 있어야 가속이 붙는다. 미니는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설정돼 도로를 움켜쥐고 달리고 코너를 도는 느낌인 반면, 친퀘첸토는 그만큼 민감하지 않다. 대신 미니는 노면을 엉덩이로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여서 오래 타고 있으면 피곤하단 느낌이 든다.
친퀘첸토는 훨씬 안락하다. 물론 친퀘첸토도 노면 정보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편이지만, 미니보다는 덜 직설적이다. 작은 요철을 넘을 때 충격을 아주 살짝 걸러내는 느낌이랄까. 미니가 매끈하게 포장된 독일 도로에 최적화됐다면, 돌 포장이 많은 이탈리아 길에 맞춰진 것일까. 도로 사정이 독일 같지는 않은 한국에선 미니보다 친퀘첸토가 나은 듯하다.
친퀘첸토를 운전하다보니 마카롱(macaron)이 떠올랐다. 마카롱은 고급 프랑스 과자다. 달걀 흰자와 설탕을 섞어 거품을 낸 머랭(meringue)에 고운 아몬드 가루를 섞어 오븐에 굽는다. 초콜릿, 산딸기, 홍차, 장미수 등 각종 재료로 만든 가나슈(ganache·크림)를 바른 마카롱 2개를 맞붙인 동그랗고 통통한 샌드위치 모양이 일반적이다. 이탈리아 메디치가(家)의 카트린느가 프랑스왕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마카롱 만드는 법이 전해졌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원래는 그냥 구운 바삭하게 구운 과자였는데, 20세기 초 파리의 라뒤레(Laduree)에서 필링을 바른 마카롱을 처음 만들었고, 이것이 인기를 끌면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마카롱은 작고 가볍다. 보통 지름 5㎝에 무게 85g이다. 설탕이 잔뜩 들어가 무척 달다. 굳이 성분분석을 해보지 않더라도 칼로리가 높고 건강에 이롭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고 한두 개 먹어서는 배부르기는커녕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격은 꽤 비싸다. 라뒤레 파리 본점에서 만든 마카롱을 냉동 공수해다가 파는 서울 지점에서는 이 작은 과자 1개 가격이 3500원이다. 서울의 어떤 식당에선 3500원이면 김치찌개나 비빔밥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도 있다. 영양이나 포만감, 가격을 따진다면 사먹어선 안될 음식이다.
그럼에도 라뒤레에는 마카롱을 먹으려는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선다. 일단 예쁘다. 분홍, 노랑, 아이보리, 초록, 보랓빛 등 색깔이 보석처럼 화려하다. 화려하되 천박하지 않고 고급스럽다. 그냥 집어서 입에 가져가고 싶다. 입술이 닿기만해도 바스락 부서질 정도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매끈하고 촉촉하다. 씹을 틈도 없이 녹는다. 부피와 형태는 사라지고 달콤한 맛과 향만 입안에 남는 관능적 경험을 선물한다. ‘라뒤레 클래식’이라고 해서 항상 판매하는카라멜·레몬·초콜릿·라즈베리·피스타치오·로즈·바닐라 외에 레몬바질·스트로베리 캔디 마시멜로·오렌지 블로섬 등 한시적으로 내놓는 ‘라뒤레 시즈널(seasonal)’ 덕분에 언제 가든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
배부르지 않지만 전혀 불만족스럽지 않다. 그게 마카롱을 먹는 맛이고, 피아트 친퀘첸토를 운전하는 즐거움이다. 라뒤레 서울 지점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본관 1층(02-3479-1648)과 신관 2층(02-3479-1689)에 있다.
/매주 1차례 발행되는 자동차 섹션에 ‘드라이브 & 다인’이라는 새로운 시리즈 기사를 씁니다. 차를 타보고, 그 차와 어울리는 음식이나 식당을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첫 회로 피아트 500과 마카롱을 비교해봤습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