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산펠레그리노 쿠킹 컵(Sanpellegrino Cooking Cup)’은 요트 경주와 요리가 결합된 독특한 대회다. 이탈리아와 세계 10개 국가에서 모인 정상급 선원들과 요리사들이 대회에 포함된 다양한 상(賞)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한국팀 요트에서 본 다른 나라의 요트들. 우리가 꼴찌입니다. 요트경주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텐데, 아쉽더군요.
그중 세계 10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인사이드 쿠킹(Inside Cooking)’상은 요트 경주 성적과 요트에 탑승한 요리사가 만들어낸 요리 성적을 합산해 승자를 가리는 시합이다. 참가한 요리사는 30세 이하로 젊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해당 국가 음식 전문가들의 추천으로 선정됐다.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산펠레그리노 쿠킹 컵에 초대를 받았다. 한국을 대표한 요리사는 서울과 뉴욕에 있는 ‘정식당’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하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연수 중인 김호영(28)씨였다.
시합을 마친 뒤남은 재료들을 비벼서 한국팀원들에게 먹으라고 들고 나온 김호영 셰프. 출렁대는 갑판 아래서 배멀미와 싸우며 요리하느라 얼굴이 창백합니다.^
대회는 지난 13일 오전 7시 30분 요리사들이 리알토(Rialto) 시장에 장 보러 가기 위해 보트를 타고 호텔을 출발하면서 시작됐다. 베네치아의 대표 명소인 리알토 다리 옆에 있는 이 유서 깊은 시장은 이른 주말 아침임에도 장 보는 이들로 북적댔다. 김호영씨를 비롯해 세계 10개국에서 모인 요리사들은 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신선하고 맛있는 식재료를 골라내느라 바빴다.
리알토 시장에서 장 보느라 바쁜 김호영 셰프. 이때만 해도 얼굴이 괜찮죠?ㅎ
9시 장보기를 마친 요리사들을 태운 보트는 산마르코 광장이 바다 너머로 보이는 베네치아 요트 클럽으로 갔다. 여기서 요리사들은 자신의 국가에 배정된 요트에 탑승했다. 한국팀 요트는 길이 20m, 무게 1t 규모의 ‘아마로(Amaro)’호. 선장은 로마 출신 이탈리아인 에우제니오(Eugenio)씨였다.
아마로호를 포함한 요트 수십 척이 클럽 선착장을 빠져나와 리도(Lido) 섬 뒤편에 있는 출발선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30분쯤이었다. 요트 대회는 정오에 시작됐다. “오른쪽 닻줄을 감아! 왼쪽 닻줄은 풀고! 조금 더!” 갑판 위에서는 에우제니오 선장과 그의 지시에 따라 선원들이 요트를 운항하느라 긴박하게 움직였다.
갑판 아래서 바쁘게 요리하던 김호영씨가 갑자기 갑판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휴, 너무 어지러워요. 배가 출렁거릴 때마다 토할 것 같아요.” 에우제니오 선장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속을 진정시킨 김호영씨는 “알겠다”며 갑판 아래 주방으로 뛰어 내려갔다.
갑판 아래 주방에서 요리 중인 김호영 셰프.비좁고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데다 출렁거리기까지하니, 얼마나 요리하기 힘들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뾰족하게 치솟은 산 마르코 광장 종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승선에 가까워진다는 신호였다. 오후 1시, 아마로호가 조르조(Giorgio) 섬 앞 결승선을 통과했다. 10개 해외팀 중 10위, 꼴찌였다. 1위는 러시아. 도착 시각에 맞춰 김호영씨도 요리를 마무리했다.
아마로호가 요리 심사위원들이 탑승하고 있는 선박 옆에 정박하자, 김호영씨가 심사위원이 맛볼 요리 네 접시와 전시용 접시 하나를 갑판 위로 가지고 올라왔다. 베네치아 앞바다에 익숙한 참기름과 잘 익은 김치 냄새가 구수하게 퍼졌다. 성게 비빔밥, 경남 거제·통영의 전통 음식을 정식당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뉴욕의 정식당이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Michelin)의 호평을 받으며 별(스타) 2개(최고 3개)를 획득하는 데 기여한 음식이다.
정식당 뉴욕점의 ‘성게 비빔밥’. 베네치아에서 김호영 셰프가 만든 건모양이 약간 다릅니다만, 맛은 거의 같습니다. 간장과 참기름, 김가루에 비빔 밥에 성게를 푸짐히 올렸죠.
결과 발표 및 시상식은 이날 오후 8시 베네치아의 상징이자 대표적 건축물인 총독궁(Palazzo Ducale)에서 성대한 만찬과 함께 진행됐다. 최종 우승팀은 예상대로 러시아였다. 모스크바에 있는 레스토랑 ‘애즈 이트 이즈(As Eat Is)’의 셰프 세르게이 베레주트스키(Berezutskiy)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베네치아=김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