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 뒤에 숨은 폭발적인 힘… 이게 진짜 ‘섹시한 車’다
마세라티(Maserati) 콰트로포르테를 시승하면서 ‘진짜 섹시한 게 뭘까’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위는 깊이 파이고 아래는 짧은 옷으로 육감적인 몸매를 거리낌없이 드러낸 여성? 웃통을 벗어제끼고 이두·삼두박근을 울룩불룩 과시하는 남성? 이건 섹시한 게 아니라 야하고 천박하다. 진정한 섹시미는 ‘감춤’에 있지 않을까. 마세라티는 스포츠카의 성능과 감성을 타고났지만 그걸 굳이 드러내지 않는 여유와 우아함을 갖춘, 진정 섹시한 차였다.
시승용 마세타리티를 넘겨받았을 때의 첫인상은 몸에 잘 맞는 양복을 제대로 갖춰입은 점잖은 신사 같았다. 기다란 전면부를 거쳐 일체형 리어 스포일러까지 이어지는 사이드라인이 아주 우아했다. 상어 아가리를 형상화한 마세라티 특유의 타원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상어 옆구리 아가미구멍을 연상케하는 3개의 사이드 에어 아웃렛에서 언뜻 거친 맹수의 느낌이 묻어나기는 했지만, 세련된 세단의 모습이었다. 수작업으로 완성된 폴트로나 프라우 가죽 시트와 스티징, 고급 우드 대시보드로 완성된 차량 내부 역시 고풍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동을 걸고 천천히 마세라티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둔턱을 넘을 때의 부드러운 쿠션감이나 편안한 승차감은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고급 승용차의 전형 같았다. 그런데 가속을 하려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가 깜짝 놀랐다. 발끝을 아주 살짝 올렸을 뿐인데, 마세라티가 너무나 민첩하게 반응하며 앞으로 튀어나가려고 했다. 그래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자 역시 예상보다 훨씬 신속하게 속도가 줄어들었다. 양복을 점잖게 차려입기는 했지만, 넓고 탄탄한 가슴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 셔츠 아래에서 그 존재감을 은근히 드러내는 남성 같았다. 뛰어난 운동능력이랄까, 질주 본능을 애써 참느라 몸이 근질근질해 죽겠다는 듯했다.
마세라티에게 제대로 실력 발휘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막히는 시내 도로를 벗어나 남산순환도로로 갔다. 액셀러레이터에 올린 발끝을 살짝 기울이자 마세라티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웅~’ 기쁘게 울부짖었다. 그 유명한 마세라티의 엔진음이었다. 오케스트라에 흔히 비교되는, 가슴 뛰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도망치는 먹잇감을 향해 순식간에 방향을 트는 상어처럼, 마세라티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힘을 앞바퀴와 뒷바퀴에 자유자재로 배분하며 남산순환로의 굴곡과 모서리를 유연하면서도 맹렬하게 질주했다.
저속에서건 고속에서건 가리지 않고 힘이 넘쳤고, 내가 원하는대로 액셀을 밟는대로 튀어나갔고 브레이크를 밟는대로 멈춰섰다. 마세라티 수입사에서 보낸 보도자료를 읽다가 “1600rpm 이하에서 이미 최대 토크의 95%가 발휘되는 올 뉴 콰트로포르테 신형 V8 엔진은 어떠한 엔진 회전 구간대에서도 굴곡 업이 뛰어난 성능과 부드러운 구동을 이끌어낸다”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알 듯했다. 남산순환로를 빠져나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처음 넘겨받았을 때와 당연히 같은 모습이었지만, 전혀 다른 차처럼 보였다. 마세라티가 ‘이제 내 진짜 모습이 뭔지 알겠지?’라며 짓궂게 미소짓는 듯했다.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를 몰면서 생각난 레스토랑은 ‘나인스게이트그릴(Ninth Gate Grill)’이었다. 공교롭게도 마세라티와 이 레스토랑이 있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호텔 오픈 당시 있었던 ‘팜코트(Palm Court)’를 계승했다고 한다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당이랄 수도 있다.
식당을 들어서면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대한제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환구단(圜丘壇)이 보인다. 푸른 나무들이 둘러싼 전통 양식의 목조건물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이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아주 전통적이고 섬세한 프랑스음식을 내놓아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름에 ‘그릴’이 들어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식당의 주 메뉴는 그릴에 구운 스테이크다. 메뉴는 간결하다. 프랑스식 양파 수프, 시저샐러드 등 애피타이저는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몇 가지로 정리했다. 주요리인 스테이크는 고기 종류에 따라 구분됐다. 소고기는 한우·미국산·호주산으로 크게 나눠진다. 양고기와 닭고기도 있지만 한두 가지 정도로 구색 맞추기 수준이다. 역시 주력 메뉴는 소고기 스테이크이다.
나는 미국산 채끝등심을, 일행은 안심 스테이크를 미디엄레어로 주문했다. 잠시 후 두 스케이크가 함께 나왔다. 안심은 주문대로 완벽하게 미디엄레어로 나왔으나, 채끝등심은 미디엄레어를 심하게 벗어나 웰던에 가까웠다. 다시 구워달라고 요구하자 지체없이 새로 구운 스테이크를 가져다주었다. 겉은 살짝 탄듯 불맛이 확실하게 나면서도, 속은 붉고 육즙이 촉촉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미디엄레어였다. 야성적이랄까 남성적인, 스테이크다운 스테이크였다. 빈 스테이크 접시를 치우는데 어디선가 마세라티의 엔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인스게이트그릴 (02)317-0366
7월7일자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