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세계 정상급 와인으로 인정 받지만, 30여 년 전인 1980년대만 해도 이탈리아 와인은 “싸구려”란 이미지가 강했다. 그랬던 이탈리아 와인의 품질과 인식을 혁신한 인물이 바로 안젤로 가야(Gaja·74)이다. 가야 와인을 수입하는 신동와인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중인 가야를 30일 만났다. 그는 이탈리아 와인 이미지 재고에 나서게 된 계기로 “1960년대 영국인들의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평가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가야는 21살이 되던 1961년 가족의 와인사업에 참여한 직후 아버지 권유로 당시 가장 중요한 와인시장이었던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 가야 집안은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주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지역에서 대대로 와인을 생산해왔다.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프랑스 와인 일색일뿐 이탈리아 와인은 아예 들여놓지도 않았더군요. 대중 식당에서 간신히 찾았다 해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값싼(cheerful and cheap) 와인’으로 여겨졌고요.”
집에 돌아온 가야는 아버지에게 “토종 네비올로(Nebbiolo) 포도품종 대신 프랑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심어보자”고 주장했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꼭 좋아서가 아니었어요. 세계적으로 고급 와인으로 인정 받던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 사용되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이탈리아에서도 잘 된다면, 이탈리아 와인도 재평가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가야의 고향 바르바레스코에서 800년 넘게 심어온 네비올로가 아닌 다른 포도로 와인을 생산한다는 건 당시로선 ‘이단’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며 “절대 안된다”고 아들에게 고함친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버지를 설득해 가족 포도밭 일부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르마지(Darmagi)”라고 한숨 쉬듯 내뱉었다. 다르마지는 피에몬테 사투리로 ‘수치’ ‘유감’이란 뜻이다.
가야는 혁신을 계속했다. 그는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송이를 대폭 솎아냈다. 포도를 솎아내면 남은 포도의 당도가 높아져 이걸로 만든 와인의 품질이 향상된다. 대신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웃들은 그의 아버지를 찾아와 “이러다 당신네 집안 망한다”며 걱정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이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대형 떡갈나무통과 함께 프랑스제 소형 오크통에 와인을 숙성시켰다.
다행히 가야의 실험은 성공했고, 우수한 와인을 생산했다. 그는 이 와인을 ‘다르마지’라고 이름 붙였다. 가야는 “아버지가 화를 내긴 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걸 통감했고, 그래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떤 실험이건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 같다”며 웃었다. 가야 와인이 세계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비싸게 팔리는 걸 본 다른 이탈리아 와인생산자들도 가야의 혁신을 따랐고, 이탈리아 와인은 고급 와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스스로를 “장인(artisan)”이라고 자부하는 가야는 “장인에게는 무엇보다 열정(passion)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열정은 자동차 윈도와이퍼와 같아요. 비를 내리지 않게 하거나 멈출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자동차를 계속 운전할 수 있게 해주죠. 열정이 인생의 난관을 방지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난관이 닥쳤을 때 견디고 자신의 일을 계속하게 해주죠.”
가야는 “많은 이들이 나를 ‘혁신파(modernist)’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기후, 시장 등 와인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해서 변화하죠. 최고의 와인 생산이라는 변함 없는 목표를 위해서 시대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합니다. 전통과 혁신을 조화시켜야하죠.”
가야는 최근 혁신주의자보다는 전통수호자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웬만한 와인업체는 다 가지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만들지 않았고, 인터넷 판매도 하지 않는다. 수많은 제안에도 불구하고 미국·칠레·호주 등 신세계에 진출해 와이너리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는 “나 자신을 유럽인이라고 여긴다”며 “내 아이들이 어떻게 할 지는 그들의 결정이겠지만 앞으로도 유럽을 벗어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와인의 전설’이 된 그에게 막걸리, 청주 등 한국 전통주 세계화 조언을 구했다. “술처럼 땅과 문화를 반영할 수 있는 음료는 없습니다. 술이 생산되는 지역과 국가의 ‘영혼’이랄 수 있죠. 한국 전통주가 한국의 정체성을 담아낸다면, 세계시장에서 반드시 인정받을 겁니다.”
10월31일자 조선일보 사람들면에 실린 인터뷰 기사 원본입니다. 와인을 넘어 인생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분이었습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