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 돈가스-치킨 제치고 ‘국민안주’ 등극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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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돈가스 등 비싼 안주에 밀려 메뉴판 아래밀려 있던 노가리가 ‘주인공’으로 대접 받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않는 경제불황의 수혜자랄까요.사진은을지로3가 ‘노가리골목’에 있는 ‘만선호프’에서 이덕훈 기자가 찍었습니다.

노가리가 ‘국민 술안주’ 자리에 오를 조짐이 보이고 있다. 노가리를 내세운 술집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기존 맥주집들도 입간판에 눈에 띄게 표기하는 등 노가리를 부각시키고 있다. 노가리 유통업자들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행복한 비명이다. 노가리 전문 프랜차이즈(가맹점사업자)도 여럿 등장했다.

기존 노가리보다 크고 맛난 ‘왕노가리’

노가리는 2~3살 된 어린 명태를 말한다. 노가리는 예전부터 맥주집에서 내기는 했지만 치킨·돈가스 등 보다 비싼 안주에 밀렸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가게 이름에 노가리를 넣거나, 가게 앞에 세우는 입간판에 노가리를 적어 넣는 등 주인공 대접을 받고 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노가리는 그동안 나오던 작고 딱딱한 노가리와 다르다. 물론 종(種)은 같지만 크기가 훨씬 크고 살이 많다. 그래서 ‘왕노가리’라고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서울 중부시장 ‘푸른유통’ 사장 방철규씨는 “이때까지 술집에서 흔히 안주로 나오던 노가리는 길이가 10~15㎝인데 반해, 왕노가리는 25~30㎝”라고 말했다. 전국 최대 건어물 유통처인 중부시장은 다수의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터를 잡은 곳으로, 이곳 상인들과 강원도 동해안에 정착한 함경도 실향민들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노가리·명태 등을 전국으로 유통시켜왔다.

왕노가리는 가공방법도 다르다. 기존 노가리는 건조기에서 인위적으로 짧은 시간 말린다. 그래서 씹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하다. 왕노가리는 북어 또는 황태처럼 강원도 등 동해안 덕장에서 1개월 정도 해풍을 맞아가며 자연 건조시킨다. 훨씬 부드럽고 구수하다. 잡히는 곳은 기존 노가리나 왕노가리 모두 러시아 연해와 북태평양으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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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고 있는 노가리는 기존 노가리보다 훨씬 크고 부드럽죠. 그래서 ‘왕노가리’라고 부른답니다. 자연 건조한 왕노가리는 방망이로 두들겨 불에 구워서 냅니다. 원래 노가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왕노가리는 꽤 먹을 만하데요. /사진=이덕훈 기자

왕노가리를 처음 내놓은 건 을지로3가 ‘노가리골목’이다. 이곳에는 ‘만선호프’ ‘OB베어’ ‘뮌헨호프’ 등 맥주집 여럿이 몰려있는데, 30여 년 전부터 왕노가리를 판매해왔다. 왕노가리를 방망이로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 다음 불에 살짝 구워 내는 방식이나, 라면수프를 섞은 듯 자극적이고 얼얼한 매운맛이 나는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찍어 먹도록 함께 내는 것도 노가리골목에서 시작돼 퍼져나갔다.

먹기도 창업하기도 싸고 부담 적어


왕노가리가 뜨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경쟁력이다. 기존 노가리 안주는 작은 노가리 대여섯 마리가 한 접시에 나오고 7000~8000원을 받았다. 왕노가리는 1마리를 내주고 1000~1500원을 받는다. 둘이서 1마리 시키면 맥주 2~3잔 마시기 알맞다. 노가리골목에 있는 만선호프를 지난달 31일 오후 1시에 찾았을 때, 150석쯤 되는 매장이 3분의 1은 차 있었다.

만선호프 사장 김연수씨는 “왕노가리 한 마리(1000원) 시키고 맥주를 한 잔씩(3000원) 시키면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마시는 것보다 싸니까, 점심 때부터 많이들 온다”고 말했다. “하루에 40~50통이 팔려요. 통당 왕노가리 40장이 들었으니까 하루에 1600~2000마리가 팔리는 셈이죠. 워낙 싸서 왕노가리만 팔아서는 (이익이) 남지 않아요. 술이 워낙 나가니까 그나마 장사할 만하지요.”

가격이 최고 경쟁력인만큼, 왕노가리는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인기다. 만선호프 김연수 사장은 “IMF 때 특히 손님이 확 늘었고, 작년 하반기부터 손님이 다시 불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왕노가리가 먼저 유행한 지역도 비교적 소득이 떨어지는 지역이다. 중부시장 푸른유통 방철규 사장은 “올해 초부터 왕노가리가 많이 나간다”면서 “신촌, 마포, 공덕동, 신림동 등 싼 물건이 많이 팔리는 동네에 왕노가리 술집이 주로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업체들도 어려운 조리가 없어 주방장을 고용할 필요가 없고, 기존 술집이 업종전환할 경우 새로 인테리어 할 필요 없이 간판만 바꾸면 되는 등 창업 투자비용이 낮다는 점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경기가 갑자기 호전되지 않는 한, 왕노가리의 ‘안주계의 정상을 향한 질주’는 멈추지 않을 듯하다.

/8월2일자 문화면에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결국 노가리가 인기 높아진 건 불황 탓이니, 노가리 인기가 떨어지길 소원해야겠네요.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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