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발단은 역시 서비스였다. 며칠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 서비스에 불만을 갖고 책임자를 항공기에서 내리게 했다. 견과류를 접시에 담아서 제공해야 하는데 승객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봉지째 갖다주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른바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태’가 촉발됐다.
서비스는 항공기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중요하다. 위대한 레스토랑은 요리사 혼자서 만들지 못한다. 뛰어난 음식 맛은 기본이지만, 여기에 훌륭한 서비스가 덧붙여져야 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요리사 미셸 루(Roux)는 “형편없는 음식 맛에 너그러운 손님도 형편없는 서비스는 용서 못 한다”고 말했다. 식당에서의 한 끼라는 총체적 경험에 미치는 영향은 어쩌면 서비스가 음식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지배인과 종업원은 매우 중요하다.
서비스 분야에서 전설로 꼽히는 이가 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자살한, 17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프랑수아 바텔(Vatel)이라는 남자다. 1671년 4월 24일 금요일 콩데(Conde) 공(公)은 자신의 영지인 샹티이(Chantilly)성(城)에서 프랑스왕 루이 14세와 3000명의 베르사유 궁전 사람들을 초청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루이 14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요리사 출신인 바텔은 콩데공의 궁정 음식 총감독인 ‘마조르도모(majordomo)’였다. 요즘 레스토랑 총지배인과 비슷한 자리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연회가 매우 중요했다. 연회를 얼마나 잘 차려내느냐에 따라서 연회 주최자의 명성이 높아지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기도 했다. 바텔은 콩데공 이전에도 여러 주인을 모시며 훌륭한 연회를 매끈하게 진행해 명성이 자자했다.
이 중요한 연회를 맡은 바텔은 2주 동안 밤낮 없이 연회를 준비했다. 연회 당일 예상보다 많은 손님이 참석한다는 연락이 왔다. 준비하는 데 며칠이 걸리는 로스트비프는 더 이상 추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2개 테이블에 로스트비프가 나가지 못하게 됐다. 바텔은 상심하기 시작했다. 연회 당일 새벽 기다리던 식재료 일부가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당황했다. 결정적으로 메인 요리의 주재료인 생선이 오지 않았다. 바텔은 절망했다. “이런 망신을 당하고도 살 수는 없다. 내 명예와 평판을 완전히 더럽혔다.”
바텔은 비통한 심정으로 주방에서 사라졌다. 때마침 기다리던 생선이 주방에 도착했다. 이 소식을 알리러 바텔의 방을 찾은 하인은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 자살한 그를 발견했다. 연회에 참석한 손님 누구도 바텔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생선요리에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바텔의 후예들도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들은 요리사만큼이나 서비스 인력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데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다. 뉴욕의 ‘다니엘(Daniel)’은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셋, 뉴욕타임스로부터 별 넷을 획득한 미국 최고 레스토랑 중 하나다. 최근 이곳을 찾은 지인은 “나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도 전에 종업원들이 먼저 알아서 서비스해 주는 듯했다”며 “태어나 받아본 최고의 서비스”라고 감탄했다. 손님이 요구하기 전에 제공하는 궁극의 서비스를 위해 이곳 종업원들은 현장 실습은 기본이고 세미나에 참석해 공부한다. 매일 영업 시간이 끝나면 마련되는 세미나에는 와인·치즈·리큐르 등 분야별로 전문가가 교육을 담당한다.
뉴욕의 또다른 고급 레스토랑인 ‘퍼세(Per Se)’의 신입 종업원은 125쪽에 달하는 서비스 매뉴얼을 달달 외워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퍼세는 발레 무용수를 불러 종업원들에게 기본 발레 동작을 가르친다. 지난 2012년 한국을 방문한 퍼세의 오너셰프(주인겸 주방장) 토머스 켈러(Keller)에게 “식당 종업원이 왜 발레까지 배워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는 종업원이 발레 무용수처럼 우아해 보이기를 원한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세와 손동작으로 서빙하는 것도 훌륭한 서비스의 일부”라고 대답했다.
뉴욕 명소인 ‘포시즌스(The Four Seasons)’는 세계를 움직이는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다. 이곳의 지배인 겸 공동 소유주인 줄리안 니콜리니는 최고의 서비스로 ‘즐거움’을 꼽았다. 그는 손님을 격의 없이 대하는 것을 넘어 짖궂은 농담과 장난까지 친다. 지난해 인터뷰 당시 그는 “아무리 단골이 요구해도 늘 같은 자리를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뭐든 원하는 대로 된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우리 손님들은 세상일을 뜻대로 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최상류층이죠. 그런 분들에게 원치 않았던 나쁜 자리를 드리면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그렇다고 손님이 기분 나빠할 정도로 선을 넘지는 않아요. 그러려면 손님과 친하고 잘 알아야 하죠.”
대한항공 사태를 계기로 ‘과연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만약 서비스가 매뉴얼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기내 서비스 담당 임원으로서 할 수 있는 지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항공기를 탑승구로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하는 바람에 항공기가 도착 예정 시간보다 11분 늦게 인천에 도착했다. 승객 250여 명이 11분씩 손해 봤다. 안내방송도 없이 항공기를 돌려 잠시지만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항공사가 탑승객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 아닌가. ‘작은 서비스’를 바로잡으려다 ‘큰 서비스’를 실수한 건 아닌가 싶다.
12월11일자 오피니언면 ‘맛세상’ 칼럼의 원본입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