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5일자 사람들면에 실린 인터뷰 기사의 원본입니다. 지면 기사에는 특히 요리사들이 관심 있을만한 내용이 약간 잘렸는데, 여기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16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코리와의 대화(Conversation with Corey)’가 있습니다. 쑥스럽지만 제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제가 질문하면 그가 대답하는 형식입니다. 이후로 최근 영국 파이돈에서 발간된 그의 책 ‘베누’ 사인회가 있습니다. /구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스토랑 ‘베누(Benu)’가 지난해 발표된 2015년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 등급인 별 셋을 획득했다. 한국인 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이 세계적 권위의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으로부터 별 셋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3스타 식당이 나온 것도 처음이다.
베누를 총괄하는 요리사 코리 리(한국명 이동민·38)가 오는 16일부터 열리는 ‘TV조선 서울고메 2015’에 참가하는 한편 최근 영국 파이돈 출판사에서 발간된 자신의 요리책 ‘베누’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14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난 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가 미국 근무 발령이 나면서 뉴욕으로 이주해 성장했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한 일식당에서 웨이터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요리사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고단하면서 동시에 창의력과 예술적 감각을 요구하는 직업인지 보게 됐어요. 강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요리를 배우고 싶었던 리는 “돈을 안 받아도 괜찮으니 쉬는 날 식당에 나와 주방 보조로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뭘 하건 몰입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지독하게 일했다. 요리에 완전히 빠져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어머니는 상심했다. 전형적인 한국 엘리트인 아버지는 예상외로 그의 선택을 지지했다. “아버지는 평생 전통적인 출세 코스를 밟아온 분입니다. 하지만 본인 의지와 상관 없이 은퇴하게 되고, 가정이 흔들리는 주변 분들을 보면서 ‘기존 방식대로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뉴욕과 파리, 런던의 최고 레스토랑들을 거치며 단련된 그의 요리기술은 “섬뜩할 정도로 완벽하다”는 명성을 요리사들 사이에서 얻었다. 그는 2001년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로 꼽히는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에 스카우트됐고, 수석요리사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엄격하고 혹독하기로 ‘악명’ 높다.
뉴욕 모모푸쿠(Momofuku) 오너셰프 데이비드 장은 리의 요리책 서문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고 소개했다. ‘프렌치 론드리 수석요리사 시절, 코리는 부하 요리사들이 만들어낸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모두 일을 멈추고 조용히 물러서서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그날 저녁 프렌치 론드리를 찾은 수십 명 손님의 코스요리를 모두 만들어 냈다. 나는 이 스토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상관 안 한다. 그저 믿는다.’
이에대해 리는 “모든 이야기는 부풀려지게 마련”이라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무섭게 수하 요리사들을 대하지만, 그를 욕하거나 험담하는 요리사는 없다고 한다. “제가 요리사들을 몰아붙이는 건 그들이 최고의 노력을 쏟아 잠재력의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욕 먹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노력하기만 한다면 도달 가능한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겠죠.”
리는 요리사라면 누구나 탐낼 프렌치 론드리 수석요리사 자리에서 2009년 스스로 물러났다. “나만의 음식을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식당을 차려야 했죠.”
리는 2010년 베누를 열었다. 베누는 이집트어로 불사조(phoenix)란 뜻이다. 스스로를 불태워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리는 프렌치 론드리에서 익힌 요리를 불사르고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내놨다. 프렌치 론드리가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한 미국음식이라면, 베누는 다양한 문화·인종이 섞여 사는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를 맛으로 해석해 혀로 체험하게 한다.
아시아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시인만큼, 아시아 음식과 식재료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요리가 많다. 대표 메뉴인 ‘굴과 삼겹살, 김치(Oyster, Pork Belly and Kimchi)’는 한국요리 보쌈을 최첨단 요리기술로 재해석했다. 김치 국물에 퓨어코트 B790(Pure-Cote B790)이라는 최신 요리재료와 포도당, 물 등을 섞어 끓여 냉장고에 식히면 붉은빛이 감도는 투명한 유리처럼 된다. 이 ‘김치 유리’를 잘라 작은 컵 모양으로 굳힌다. 여기에 베이컨 가루를 뿌리고, 진공포장 상태에서 12시간 동안 저온숙성한 돼지 삼겹살과 김치를 잘게 다져 담은 다음, ‘김치거품’을 얹은 뒤 굴을 올려 손님에게 낸다. 바삭한 김치 유리, 고소한 삼겹살, 뜨겁고 매콤한 김치, 차갑고 바닷내음 물씬한 굴이 한입에 씹힌다. 크기는 작지만 여러 풍미가 진하게 농축된 ‘맛의 핵폭탄’이라 할 만하다.
그의 요리책에는 한식은 물론 한국 문화와 자연도 상당 부분이 할애됐다. “한국은 제 정체성의 핵심이니까요. 장아찌·김치처럼 발효하거나 절여 만드는 다양한 저장식품, 짜고 싱겁고 맵고 달고 새콤한 여러 맛의 음식을 한 상에 차려놓고 먹는 이가 조합하는 한국만의 먹는 방식은 세계 식문화에 큰 영감을 줄 거라고 봅니다.”
그는 ‘한식 세계화를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도 했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빠르고 쉬운 ‘응급약’은 없습니다. 한국문화를 알리고, 그 안에서 천천히 한식을 소개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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